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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을 통한 이해와 생각

2013/06/10

2013년 3월, 2주간에 걸쳐 r:ead에 참가할 수 있었던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 평소 전시준비로 바쁜 나로서는 이번 레지던시가 대단히 얻기 힘든 기회였다. 소규모이지만 치밀하고 계획성 있는 이 레지던시 프로그램은, 그동안의 레지던시보다 훨씬 더 인상적인 ‘만남’의 기회와 실질적인 교류를 만들어냈다. 분명히 나는 현대미술 큐레이터라는 내 일의 특성과 지난 10년간의 경력때문에 아티스트나 다른 큐레이터와 만날 기회는 많지만, 장기간에 걸쳐 양질의 교류가 가능한 장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특히 일이 한 가지 방식으로 정형화되면 되기 시작하면 더욱 그렇다.

일반적으로 말해서, 큐레이터와 아티스트의 만남은 주로 작품에서 시작된다. 그러나 이번 레지던시 프로그램은, 그러한 ‘큐레이터 – 예술가 – 예술생산과정’이라는 모델을 의도적이고 계획적으로 반전시켰다. 그것은 내 자신에게 특별한 의의가 있었을 뿐만 아니라, 내가 지금 운영하는 대안공간(더 큐브 프로젝트 스페이스)의 실험과 발전의 방향과도 분명히 일치했다. 그것은 다시 말하자면, ‘어떻게 아티스트와 장기적으로 협력관계를 발전시킬 수 있을까’라는 모색이라고도 할 수 있다.

나와 라오 치아엔은, 이러한 기회를 제공해준 r:ead에 참가했다. 한국, 일본, 중국, 그리고 대만이라는 아시아 4개 지역의 ‘대화’가 이루어졌고, 기존의 지리적인 이해 및 근린 지역의 역사와 문화에 관한 지식의 교류 이외에도, 유일무이한 사람과 사람 간의 교류가 이루어진다는 느낌을 실감했다. 첫 대면을 거쳐 서서히 이해해 가는 과정에서는 대화와 토론을 통해 문화적 관점을 발전시킬 수 있었다. 이러한 관점들은 평소에 당연하게 생각하던 인식과 행위들에 대한 사고를 ‘활성화’ 시켜 주었다.

이러한 ‘대화’는, 현재 우리들의 일과 창작과정에서 가장 결여되어 있는 ‘실제 체험’을 상당히 보충해 주는 것이었다. 우리들은 2주간에 걸쳐 제2차 세계대전과 아시아의 냉전의 역사, 그리고 지역경제가 글로벌화되는 작금의 현실에 대해 다양한 관점에서 생각했다. 그 안에는 무수한 역사적 기억들이 포함되어 있기에, 우리들은 한 사람의 현대인 또는 생존하는 하나의 개체로서 바라보는 다양한 각도에서, 각각의 경험을 공유했다. 또한 이 특별한 기회를 통해, 소위 글로벌화시대에 ‘지구는 정말 국경을 초월해 평탄해졌는가’를 생각함으로써, 또 다른 세계관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었다.

라오가 도쿄에서 한 작업은 앞에서 언급한 경험과 사고에 대한 구체적인 반응으로도 느껴졌다. 일본의 역사와 민주주의에 대한 고찰을 통해, 그는 일종의 비선형적이기도 한 상호간의 연결과 대화의 방식으로, 프로젝트의 참가자들이 던진 물음에 마주했다. (3월11일의 최종 프리젠테이션에서 그는 참가자들에게 5년전 3월11일의 신문기사 중 하나를 선택해서 낭독하도록 함으로써, 그들의 역사관과 체험을 드러냈다.) 또한 이 방법을 통해 일본국적이 아닌 다른 참가자들도, 자신들의 민주주의에 관한 체험, 혹은 아시아의 다른 지역과의 관계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장이 만들어졌다. 라오가 행한 프로젝트의 테마는, 2012년의 총선거결과 및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사고 이후에 변화된 일본사회의 내재적 인식을 고찰함으로써 ‘민주’와 ‘역사의 반복’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었는데, 그러나 실제로 그것은 일본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더 폭넓게 현대사회가 직면하는 공동의 문제와 위기를 반영하는 것이었다. 즉, 우리들의 관계 또한 끊임없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볼 수 있었고, 과거의 역사 뿐 아니라, 오늘날 자본경제에 의해 우리들이 얼마나 상호의존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었다.

라오는 이번 작업에서 시각화된 소재(과거의 신문기사)를 늘어놓고 확장성을 동반하는 시간들을 구성하여 질문들을 자세히 풀어놓는 방식을 택했다. ‘민주주의에 의해 역사는 반복된다’가 고찰에 대한 하나의 결론이 됨과 동시에, 라오가 우리들에게 던진 질문, 즉, 다시 생각하도록 만드는 테마에 의해 참가자 각각이 그와 함께 고민하게 함으로써, 더 깊이 있는 사고와 반응을 이끌어냈다. 이 프리젠테이션에서 참가자들은 처음에 왜 과거의 신문을 보게 하는지 몰랐을 것이다. 그러나 순서대로 이루어진 낭독과 사고의 교환을 통해, 라오가 의도했던 다시 생각하는 공간이 인식되고 느껴졌을 것이다.

라오의 프로젝트는 ‘프롤로그’같은 것이기도 하다. 나는2주간 도쿄에서 벌인 토론과 교류를 통해, 동일본 대지진 이후 사회가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가를 잠재적으로 의식하면서 사고하게 되었다. 체류 중에 오사카와 교토, 요코하마를 짧게 다녀오면서도, ‘사회에 대한 적극적인 사고’가 일본에서 큰 폭으로 늘어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예를 들면, 고이즈미 메이로의 작업 또한 그렇다. 그리고 더 많은 젊은이들이 문화예술의 창조와 관련된 많은 사회적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이번 참가와 고찰을 통한 최대의 수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리드라는 이 레지던시 프로그램은 새로운 예술생산의 모델이 가지는 의의와 그것이 실천될 가능성을 나에게 제시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