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내와 구분: 동아시아의 식민과 언어
안소현
구약성경 사사기에는 ‘쉬볼렛(shibboleth)’ 이야기가 나온다. 길르앗인들이 에브라임인들과의 전쟁에서 이기고 난 후, 외양으로 구별되지 않는 패배한 도망자들을 가려내기 위해 요단강 길목을 지키고 있다가 히브리어의 “쉬볼렛”이라는 단어를 발음하게 했고, “쉬” 발음을 다르게 하는 에브라임 사람(혹은 그저 발음을 다르게 한 사람) 4만2천명이 죽임을 당했다는 이야기다. 쉬볼렛, 즉 국적, 계급, 이념 등을 판별하기 위해 ‘시험하는 말’의 예는 침략과 전쟁이 있는 곳, 특히 복잡한 식민의 역사를 가진 동아시아에서는 흔히 발견된다. 관동대지진 당시 조선인을 구별하기 위한 일본어(“10엔 50전”의 발음)나, 태평양 전쟁 때 중국인으로 위장한 일본인을 구별하기 위한 영어(중국인이 R을 L에 가깝게 발음하는 것) 등이 있었다. 이렇게 상이한 문화가 접촉하는 곳에서는 언어가 규범이 되어 잔인한 배제의 원리로 작동하기도 한다.
우리가 제4회 r:ead에서 다루려고 하는 것은 바로 이런 문화 접촉에서 나타나는 언어의 배타성이다. 그런데 모든 문화 접촉에서 언어가 배타성을 띤 것은 아니었다. 동아시아에서는 이미 고대부터 중국의 한자를 글말(文語)로 사용하고 있었고, 그것이 서로 다른 입말(口語)의 소통을 보조할 때는 특별한 배제나 저항을 일으키지 않았다. 가라타니 고진에 따르면 언어의 배타성은 근대적 의미의 국가(nation)가 형성되고, 단일한 ‘국어’ 또는 ‘표준어’의 개념이 만들어지면서 생겨났다. 근대 국가에서는 다양한 입말들을 ‘비규범적인 것’으로 간주하여 밀어내고 ‘문자와 일치시킬 수 있는(言文一致)’ 특정한 언어만을 인정하며 단일성을 내세웠다. 그리고 많은 국가들이 그런 내적 단일성을 유지, 강화하기 위해 ‘바깥’을 강조하기 시작했으며, 제국주의적 식민침탈은 그 바깥의 이미지를 만드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서구의 언어에 대한 이미지와 소수민족의 언어에 대한 이미지가 다른 것은 그런 식민의 역사와 무관하지 않다. 언어의 배타성을 논하기 위해 식민을 언급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러나 우리가 다루려는 식민이 역사적 사건으로서의 식민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일반적인 국가의 언어들은 직접적인 식민의 경험과 관계 없이 배제와 위계의 논리를 포함하고 있다. 고진에 따르면 대부분의 언어에서 추상적인 개념이나 관념들은 입말보다는 글말로, 토착어보다는 외래어로 표기되는 경향이 있다. 반면 일상에서 사용하는 입말들은 매우 생생하고 구체적이고 미묘한 정서나 뉘앙스를 담당하는 경우가 많다. 한국어나 일본어 같은 교착어에서는 한자어나 외래어에 토착어의 어미를 붙여 의미를 ‘보조’하게 하였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입말보다는 글말이, 토속어보다는 한자어나 서구어가 우위에 놓이게 되었고, 대중의 언어와 지식인의 언어 사이의 간극은 점점 더 커지게 되었다. 이렇게 형성된 위계는 식민에서 나타나는 현상과 흡사한 배제의 근거가 된다. 어떤 언어를 쓰는 자는 동경의 대상이, 다른 언어를 쓰는 자는 멸시의 대상이 된다. 그렇게 언어로 인해 밀려난 사람들은 ‘안’의 말을 흉내내며 동화되려고 하지만, 언어는 끊임없이 구분을 짓는다. 그렇게 언어는 다양하고 구체적이고 생생한 것들을 소거하거나 폄하하면서 근대 국가의 언어가 되어갔고 식민의 논리를 품게 되었다. 무엇보다 언어가 식민과 닮은 것은 그것이 점차 내면화되어 끈질기게 우리의 사유 안에 자리잡는다는 점이다.
이것이 우리가 제4회 r:ead의 주제로 언어와 식민을 선택한 이유이다. 언어학이나 역사학의 연구대상이 될 법한 이 주제를 예술의 영역에서 다루고자 하는 것은 이것이 뚜렷한 인과관계나 영향관계로 설명되지 않는 깊고 오랜 내면화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국가와 단일한 언어 형성이라는 과정에 개입한 오래된 이데올로기가 왜 이토록 질기게 남아 우리의 생각과 행동을 지배하고 있는지를 물어야 하며, 그것은 질긴 만큼 섬광같은 해명보다는 잔광 같은 반복적 수행을 필요로 하는 예술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는 동아시아 다이얼로그 레지던시의 주제로서 더할나위가 없다. 우리의 관심이 ‘식민시대에 사용된 언어’가 아니라 ‘식민의 관성을 내포한 언어’라면, 그것은 다른 말에 대한 연구보다는 우리가 직접 서로 다른 말을 섞는 과정에서 드러날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필자가 2014년 제3회 r:ead 프로그램에 참여했을 때, 참여자들이 각자의 모국어로 말하고 그 언어를 다른 언어로 통역하는 과정에서, 여러가지 식민의 흔적들이 흘러나왔다. 그것은 때로는 아직도 생생한 조부모의 일화이고, 때로는 모호하게 남은 발음이고, 때로는 요즘은 잘 쓰지 않는 어휘들이었다.
이번 제4회 리:드에서는 각자의 언어는 대화의 주제이면서 동시에 관찰의 대상이 될 것이다. 동아시아의 예술가, 기획자, 통역자가 직접 만나 각자의 모국어로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우리는 서로의 해묵은 습관을 당겨내어 그 습관에 매달인 역사와 이데올로기와 정서들을 끌어올리려고 한다. 우리는 우리의 말이 쉬볼렛과 반대되는 시험의 말들이 되기를 희망한다. 그것들은 통일된 기호로 남지 못한 흔적들, 규범이 되지 못한 말들, 그 말들이 길어올리는 역사의 이야기들과 그 안의 생생한 감각들을 시험하는 잣대가 될 것이다. 그 말들을 통해 우리는 배제된 것들을 끌어안고 닮지 않은 것들을 살려놓고 언어가 가진 본래의 소통의 힘을 되찾으려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