얽힌 실을 조금 풀어보려고 한다
2014/07/18
r:ead는 기본적으로 전시회장이 아니기에, 완성된 작품을 타인에게 보여 줄 필요도 없다. 이것은 작가에게 있어서 「체제기간 중, 억지로 작품을 만들어 보여 줄」필요가 없이, 각자가 실험하는 것에 있어서는 굉장히 흥미로운 기획이었다.(반대로, 억지로 제작하는 과정에 있어서 생겨나는 것도 있지만)
통상 레지던스 체재제작의 경우, 어떤 테마가 정해져 있고 수년 혹은 수개월 에 걸쳐, 그 장소에서 리서치나 필드워크를 통해 토지나 장소의 특성을 이해하면서, 그곳에서 전시하는 경우가 많다. 단기간에 작품의 완성을 요구하면서, 언제나 자신이 해오던 수법과 연결지어 제작하는 경우를 말한다. 이 기획의 경우, 공유할 수 있는 테마를 발견하기 위해 투어가 이루어지거나, 자신들이 여행을 기획 할 수도 있다. 단, 4주간이라는 짧은 시간이다. 대화를 하는 곳은 교실 같은 곳. 공유하는 많은 시간은 여기에서 보내도록 설정되어 있다. 좋든 싫든, 교실안에 있을때에는, 여기가 일본의 동경이라고 의식하는 경우가 별로 없다. 대화는 교실안에서 책상을 원형으로 셋팅하고, 한, 중, 일, 대만의 작은서미트와 같은 분위기.
처음에는 나 자신도, 눈앞에 있는 그들도, 각국의 대표자로서 모여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천천히 한사람 한사람 마음 속에 각자가 복잡하게 뒤얽힌 세계를, 다른 방법으로 배우거나 느끼고 자라 온 동시대의 개인 개인이 그곳에 있는 것 뿐이다, 라고 느껴지게 된다. 한, 중, 일, 대만은 4면이 아니라, 언제나 다면체(多面体).
마지막날 다 같이 식사를 하러간 이케부쿠로의 중화「연변」요리는, 북한의 국경 근처에 있는 중국북동부의 조선족이 많이 살고 있는 지역. 중화요리집 이지만, 매운 양고기에 “가벼운 안주”로 김치나 땅콩이 나오는, 중국, 한국 어디든지 혹은 그렇지 않은 부분을 가지고 있다. 맛도 그렇지만, 사람도 다면(多面)적으로 깊이가 있는 그러데이션 안에 있다.
이 기획의 특별한 포인트로서는, 한, 중, 일, 대만 사람이 모여 있지만, 각 집단에서 조금 떨어진 장소에서, 한사람 한사람의 작가가 마주보고 이야기하고 생각하는 장소, 일 수 도 있다.
예를들자면, 여행지에서 우연히 만난 사람들이 국경을 넘어서 성장이나 일,가족에 대해 이야기하고, 각자의 생활이나 놓여있는 상황의 다른 점에 대해 느끼면서 한때 시간을 공유하고 헤어지는, 그런 경험. 얼마 전, 우연히 비행기 안에서 영화「로스트인트렌스레이션」을 보고 생각난게 있다. 어떤 만남이, 각각의 생활권이 아닌, 서로에게 있어서「어디도 아닌 장소」에서 일어나는 해프닝성(性). 이 r:ead는, 그런 장소일 수 도 있다. 그리고 그런 장소이기에 입장을 넘어서서 만나고, 한사람의 인간으로서 각자의 차이점을 받아들이면서 접근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이번에 나는 작가들과 될 수 있는 한 같이 먹고, 술을 마시며 여러가지 이야기를 했다. 물론 그것은 의무감이 아니고 그냥 좋아서이다. 언제나 그렇듯이 갑작이 자신의 제작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작품을 요구하지 않는 이러한 기회이기에, 만남에서 무언가가 생성하는 타이밍을 기다리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특히, 슌순(孫遜/중국인작가)과는 밤마다 미팅이라는 빌미로 빈번히 술을 마셨다. 마치 자취하는 대학생처럼 서로 웃으며 아주 재밌는 시간이었다.
마지막날 우리들의 프레젠테이션이 끝난 후, 슌순은 그 감상으로서 오래된 중국의 시를 우리들에게 읽어주었다. 그것은 진자앙《등유주태가(登幽州台歌)》라는 것으로, 「하늘과 땅을 눈앞에 두고, 사람은 자신이 가지고있는 존재나 시간의 작음을 느낀다」라는 슬픈 시. 중국 당나라때 만들어진 시로, 이번 r:ead에서의 한달간의 교류를 생각하게 한 멋진 시였다. 최종 공개프레젠테이션 장소에서 일어난 갑작스러운 시낭독으로, 그 장소가 조금 떠들석 해졌다. 다음 날, 나는 그가 읽어준 시에 대한 답으로 동물사진가인 호시노미치오(星野道夫)씨의 엣세이「또 다른 시간」을, 교실에서 모두 앞에서 읽어주었다.「대자연을 앞에 두고 감동받았을때 사람이 남기는 것은, 자신이 바뀌는 것이다」라는 문장. 낭독은 첫 경험.
이번에 같이 페어를 한 큐레이터 핫토리(服部)씨는, 아티스트인레지던스에서 10년정도 일을하고 더욱이 스스로가 작은 공간도 운영하며, 작가와 공동작업이나 체제제작의 노하우와 의문을 하지고 있는 사람으로서, 이번 r:ead에 추천을 한것은 적임이었다. 그와는 둘이서 몇군데의 장소를 방문하며, 자신들의 과거뿐만 아니라, 각자의 미래에 대해서도 이야기 할 수 있었다.
나는, 작년말에 6년에 걸쳐서 해오던 시리즈가 막 끝난 상태로, 자신이 제작해 오던 소재나 수법, 테마에 대해 의심을 품으며, 새로운 도전을 해보고 싶다고 생각하던 찰나였다. 여기에서 내가 얻은 것은, 우연히 누군가와의 대화 안에서나, 지금부터 시작하는 몇개의 프로젝트 기획회의, 여기저기에서 시작되고 있지만, 얻은 것을 눈에 보이는 형태로 만들고, 의심없는 말로 발신하기 위해서 조금 더 시간이 걸리것 같다.
이 기획에 의해, 가장 성과가 나타나는 장소는 아마도 참가자 각자의 내면의 변화이지 싶다. 그것을 외부의 사람이 볼 수 있는 장소/때는 조금 미래의 것일 수 도 있다. 그리고 여기서 말하는 참가자라는 것은 작가 그리고 큐레이터 뿐만아니라, 통역가, 스탭, 디렉터, 이 기획(대화)의 모든 장소에 있던 사람들이다.
어떤 기획이라도 기획자나 지원자(국가나 지역, 기업)등의 제한 혹은 컨트롤은 발생하고, 그것을 인지하고 참가하지 않으면 스스로가 그 일부로 휩쓸리고 만다. r:ead는 “제작환경”으로서의 레지던스임에 틀림없다. 단, 모든 말은 우선 일본어로 통역되는 시스템이나, 이 “동아시아”라는 말처럼 대동아내제국주의적(서구중심으로의 반사로서의 제국주의)인가 라거, 처음부터 스스로가 몇번이나 의문을 품은 것은 사실이다. 단, 이r:ead는 어디에도 없는 떠다니는 배와 같은 장소로, 존재하는 가능성을 많이 가지고 있다. 조타수를 참가자 전원의 대화에서 정하는 것도 재밌다. 아직 시작한지 얼마안되기는 하지만.
이러한 기획이 계속 진행되는 것, 더욱 발전된 형태로 변화해 가는 것, 예를들어 이러한 기획이 이웃나라에서 같이 개최되어 일본인이 참가하는 것, 그러한 것이 계속 축적되어 가는 것으로, 이웃나라 사람들과의 관계성이 부정이나 배제가 아니라 존중을 베이스로 한 관계가 축적되어 갈 수 있을 것이다. 이 교류의 형태를 발전시키기 위한 하나의 과정으로서 내가 여기에 참가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라고도 느낀다.
오늘에는 복잡한 국가 간의 상황이 있다. 정부나 미디어에 의해 국민의 감정은 오셀로처럼 하얀과 검정으로 바뀐다. 얽힌 실을 의도적으로 다시 뒤얽히게 만드는 자들도 있다. 단, r:ead와 같은 기회로 인해 생성된 개개인의 안에서의 밸런스감각은 이후에도 자극해가면서 어떠한 폭풍이 부는 시대가 와도, 조금씩 모국에 뿌리를 두고 행하는 것이 아닌가.
나 개인으로서는 손때가 묻은 스스로의 수법에 대한 의문의 시작, 그리고 이웃나라의 작가들과의 교류, 그것은 뒤얽힌 실을 조금 풀어보는 시간이었다.
가까운 시일내에 재회하길 바란다.

滞在時東京に降った記録的大雪を固めた雪碑(冷凍庫に保存中)

服部さんと制作した冊子[不在のかたちーモニュメント再考ー]

服部さんと制作した冊子[不在のかたちーモニュメント再考ー]

服部さんと制作した冊子[不在のかたちーモニュメント再考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