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를 초월한 역사의 실천을 향하여
2013/06/10
나는 당초, 이 프로젝트가 목적으로 하는 ‘동아시아에서의 예술과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의 공유’가, 참가자들이 모국의 구체적인 상황과 대치함에 있어 어떠한 새로운 시점을 만들어내는지에 대해 흥미를 갖고 있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상호간에 복잡한 관계성을 갖는 동아시아의 역사와 정치가, 대화의 플랫폼에 어떠한 영향을 줄지에 대해서 약간의 염려도 있었다. ‘국가’라는 틀이 이 프로젝트가 의도하는 플랫폼 구축의 동기와 관계되어 있는 이상, 참가자들은 자신의 국적과 국가와의 관계에 대해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한 상황에서 개인의 주관이 ‘국가’의 그것과 동일시되면, 개인과 개인의 대화는 곧 국가간의 이해관계와 맞물리게 되거나 답이 없는 정의끼리의 부딪힘이 되어버릴 것이다. 그러나 참가자들은 지금 바로 그러한 충돌이 이곳저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가운데, 정치적인 역학관계에 휘말리지 않고 한사람의 문화생산자로서 무엇이 가능할 것인가를 신중하게 모색했다고 생각한다.
두 번으로 나누어진 체재에서는, 우선 자신들의 활동에 있어서 축이 되는 관심사와 문제들을 이야기했고, 다음으로 각자가 도쿄에서 실시한 리서치 내용을 영상과 프리젠테이션, 또는 식사 와 이동중의 대화 등 여러 방법과 상황을 통해 공유했다. 이 과정에서 흥미로웠던 것은, 짦은 체재기간을 통해 각자가 얻은 경험을 공유함으로써스스로의 일본에 대한 해석과 내적 반응을 상대화하고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장이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물론 일본에 거주하는 고이즈미와 나도 마찬가지였다. 그것에는 마지막 날의 프리젠테이션에서 김진주가 이야기 한 것처럼,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상대를 ‘얼마나 모르고 있는지’ 에 대한 인식을, 서로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경험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부연하자면, 내면화되어 있는 일본에 대한 언설과 감정을 스스로의 주관성으로부터 일단 떨쳐내고, 그것들이 자신의 정체성과 깊이 결부되어 있는 국가의 언설-역사와 애국심, 민주주의, 그 모든 것이 겹쳐져 만들어지는 배타성-과 얼마나 연결되어 있는가를 인식하는 계기가 된 것이 아닐까.
고이즈미는 리서치 기간에 영상을 이용해 한 가지 실험을 했다. 그것은 도쿄의 다양한 장소에서 일본의 전쟁의 역사에 대해 사람들을 인터뷰하고, 그것을 말하는 사람들의 입만을 촬영해서 모으는 작업이었다. 익명성을 유지함으로써, 각각의 기억에 있는 ‘역사’의 형태-이야기, 정보, 신조, 감정, 혹은 무관심과 무지와 같은 부재-가 있는 그대로 구술되는 모습이 포착되었다. 랜덤하게 말하는 입을 줄곧 바라보고 있는 중에, 역사란 무엇일까 라는 물음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국가간에는 영토문제로부터 교과서 문제에 이르기까지 역사를 둘러싼 치열한 부딪힘이 있고, 그것은 분명히 역사가 이 글로벌 시대에 있어서 국가라는 상상의 공동체를 유지하는데 필요한 중요한 도구가 되어 왔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개인의 시장주의적인 생활에 있어서 역사라는 과거와 대치해야 할 필연성은 거의 없다고 말해도 이상하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미디어를 통해 역사에 관계된 여러 언설이 만들어지고, 그중 일부는 직접적인 경험 없이도 개인에게서 타자에 대한 강한 증오와 배타성을 이끌어 내는 힘을 발휘하고 있다는 것도 간과할 수 없다.
고이즈미의 실험은, 이 레지던시 프로젝트가 앞으로 생각해 나가야 할 중요한 문제 한가지를 제시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동아시아에서의 예술과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의 공유’가, 앞으로 이 지역에 있어서의 연결고리를 만들어나가기 위해서, 예를 들어 국가간의 정치라는 영역을 넘어선 새로운 지성의 실천으로서의 역사를 위해, 타자와 자신의 언설과 주관성을 함께 검증할 수 있는 공간을 구축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동아시아 뿐만 아니라 세계가 더 유동적으로 변해갈 미래를 생각할 때, 타자와 자신의 내적인 교섭을 가능하게 하는 공간의 창조는, 이 프로젝트 뿐만 아니라 문화생산에 관계하는 이들이 생각해야만 하는 문제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