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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분절(非分節) 대화의 힘

2015/01/21

서로 다른 언어로, 완성되지 않은 작업계획에 대해 대화를 한다는R:ead의 목표는 처음에는 그저 불가능해보였다. 소통은 일치와 투명함을 기반으로 한다는 선입견을 여전히 붙들고 있던 나로서는 그 불투명한 조건 하에 짧지 않은 대화를 나누는 것에 대해 좀처럼 확신이 들지 않았다. 예술에 대해 고민한다는 최소한의 공통점만으로 낯선 사람, 낯선 언어, 낯선 분야의 사람들과 무엇을 나눌 수 있을 것인가. 그러나 “아시아 도시와 노마드”를 주제로 한 이번 r:ead#3의 프로그램은 다양한 언어의 혼재 속에 불투명한 소통방식의 풍부함을 있는 그대로 “겪어보게” 해주었다.

액체 상태의 이미지 읽기: 믹스라이스(mixrice)와의 태평양전쟁 이주민들에 대한 대화

나는 완성된 (혹은 완성된 상태를 가정하고) 작품에 대해 글을 쓸 때마다 늘 무언가가 불편했다. 작품이 만들어진 과정에 대한 간단한 설명과 눈에 보이는 결과만으로 그 의미를 읽어내야 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것은 언제나 고체가 된 작품 위에 딱딱한 프레임을 덧씌우는 느낌이었다. 또 그 프레임이 어쩐지 작품에 정확히 맞지 않는다는 자책감이 들곤 했다. 하지만 리드에 참여한 믹스라이스는 아직 완성하지 않은 작업의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해주었고, 나는 그것이 어떤 형태로 완성될 지 예측하는 일에 집중하지 않았다. 그저 그 이야기에서 떠오르는 이미지들과 지식들을 논리적 연관성 없이 늘어놓았다. 그것은 마치 액체상태에 조용히 미끄러져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믹스라이스는 r:ead 프로그램에 참여하기 전 태평양 전쟁의 이주민에 대한 리서치를 할 기회를 얻게 되었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이주(移住)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주로 “누가 어느 지역에서 어느 지역으로 얼마나 많이 이동하였는가”라는 수평적인 움직임에 주목한다. r:ead 프로그램에 참여하여 믹스라이스와 대화를 나누기 전에는 나 역시 그런 움직임에만 주목하였다. 하지만 이주에는 또 다른 움직임이 있는데, 바로 이주한 지역에서 정착(定着)을 하고 뿌리를 내리려는 수직적인 움직임이다. 이런 관점에서 디아스포라(diaspora, 離散)라는 단어의 어원을 찾아보니, 사실 이 단어는 이미 두 가지 움직임을 모두 내포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단어는 씨를 “흩어서” + “심는다”(dia+spora)는 어원을 가지고 있어서, 널리 퍼뜨리는 수평의 이동과 땅에 심는다는 수직의 움직임을 모두 포함하고 있었다. 믹스라이스가 진행하고 있는 태평양 전쟁의 이주민에 대한 리서치는 수평적 움직임뿐만 아니라 수직적 움직임에도 주목하고 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예술가 믹스라이스는 리서치를 하면서 역사학자의 태도로 객관적 자료를 수집하는 것이 아니라, 지극히 신체적이고 물리적인 행위인 땅을 파고, 묻고, 캐내는 행위에 주목했다는 점이다.
무언가를 파묻고 캐내는 행위는 그 자체는 매우 원초적(原初的)이고 단순한 행위이지만, 우리는 거기에서 여러 가지 이미지를 읽어낼 수 있다. 묻고 캐내는 행위는 일단 한 지역에 일정 시간동안 머무르는 것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이 행위에서 정착(定着)의 이미지를 읽을 수 있다. 또한 이런 행위는 때로 사회적으로 빼앗기기 쉬운 것, 허락되지 않은 것, 심지어 불법적인 것을 감추는 행위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런 허락되지 않은 행위 역시 뿌리를 내리는 한 방법이기도 하다. 이렇게 믹스라이스가 읽어낸 구체적인 이미지들에 대해, 아직 작업으로 완성되기 이전 단계에서 이야기하면서, 역사에 대한 예술가의 리서치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되었다.

예술가의 리서치

앞에서 말한 이주의 두 가지 움직임, 즉 수평과 수직이 이미지로 표현되는 방식을 찾아보니 두 가지 움직임은 아주 다르게 재현되었다. 이주의 수평적 움직임들은 대부분 객관적인 통계에 근거한 지도나 다이어그램으로 표현되는 경우가 많았다(구글에서 “Korean Diaspora”를 검색하면 대부분 지도 이미지가 나온다). 반면에 수직적 움직임, 즉 정착에 관한 이야기들은 대체로 구체적이고 생생한 개인적 경험에 의존한 것이기 때문에 매우 주관적인 이미지들이 많았다.
믹스라이스가 수집한 자료들은 대부분 공식적이고 객관적인 통계자료들이 아니라 주로 만화, 소설, 일기, 영화 등 개인이 기록한 것, 기억에 의존한 이미지들, 허구(虛構)를 가미한 것들, 심지어 누군가 재현(再現) 한 것을 다시 재현한 이중적 재현(二重的 再現, double representation)의 이미지들이다. 이런 이미지들은 객관적 자료가 아니기 때문에 역사학적 연구의 보충자료는 될 수 있지만 사실여부를 확인할 수 없기 때문에 사료(史料)는 되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미지를 예민하게 읽어내는 예술가에게는 역사에 접근하는 중요한 자료가 될 수 있다. 이런 객관화되지 않은 재현된 이미지들에서 다시 이미지를 읽어내는 것, 그것이 바로 예술가가 역사를 리서치 하는 하나의 중요한 방식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분절되지 않은 역사와 언어

믹스라이스가 주목한 이주의 이야기들은 정확한 역사적 사실들로만 구성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명확한 마디로 나누기 어렵다. 그것들은 생생하고 흥미로운 이야기들이지만 어떤 역사적 사실들을 변형한 이미지로 표현된 것들이다. 그런데 이런 분절되기 어려운 성격은 바로 이주의 역사와 긴밀하게 얽힌 언어에서도 마찬가지로 나타난다. 프로그램에 참여한 일본작가 온유주는 일본어가 모국어인 대만인으로, 할아버지에게 배운 대만어로 쓴 시를 낭독했고 오오카와 케이코는 그녀가 언어와 지역의 경계를 차분히 되짚는 장면을 절제된 영상에 담았다. 나는 대만어를 알아듣지 못하지만, 그녀의 낭독과 인터뷰에는 분명 일본어가 모국어인 그녀의 독특한 발음이 전달하는 울림이 있었고, 아마도 표준 중국어로는 표현할 수 없었을 역사적 특수성에 의한 묘한 정서가 압축되어 있었다. 그것들은 흔히 말하는 분절언어의 소통에서 고려되지 않는 부분으로, 명확한 마디로 나누어 설명하기 힘든 요소였다.
다시 말해 이들 예술가들은 분절되지 않은 역사와 분절되지 않은 언어에서 강렬한 이미지를 포착하려 했다. 이런 이미지들은 객관적이고 규범화된 역사나 언어와는 거리가 멀지만 실제로 적지 않은 아시아의 이주의 이야기들은 바로 이런 분절되지 않은 차원에서 쓰여졌고, 또 역사와 언어가 그런 차원에서 긴밀하게 결합되기도 하였다. 성서에 등장하는 시볼레트 이야기처럼 아시아에서도 이주민들이 현지의 언어를 사용하지만 다르게 발음하면서 차별이나 학살의 희생자가 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이번 r:ead 프로그램을 통해 새삼 주목하게 된 것이 바로 이런 분절되지 않은 대상들을 예술가들이 읽어내는 과정이었다. 아시아 예술가의 눈으로, 목소리로 기록한 이런 대상들은 아마도 정통적인 역사학 연구에서는 간과되기 쉽거나, 또는 섬세하게 설명하기 힘든 부분들이다. 예술가들이 이 분절되지 않는 언어와 역사들을 어떻게 시각적, 청각적 이미지를 통해 기록하는지를 또 다른 R:ead 프로그램에서 지속적으로 논의했으면 하고, 나 역시 좀더 장기적인 연구 과제로 삼으려 한다.

에필로그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동안 많은 참여자들이 홍콩의 시위와 그를 지지하는 상징인 노란 리본을 매달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한국에서도 이 노란 리본이 세월호 침몰사고의 원인규명을 위한 연대의 상징으로 사용되고 있다. 각국의 시위대가 서로를 지지하고, 서로의 민주주의를 기원했다는 점에서 작은 상징을 통한 큰 연대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었다.
짧지 않은 프로그램 내내 세심하게 일정을 기획하고 엄청난 집중과 시간을 요하는 통역을 담당한 스태프들의 노력은 그 자체로 감동인 동시에, 이 프로그램에서 단순한 조력자의 역할이 아니라 핵심적인 부분이었다. 물론 모든 내용이 원활하게 전달된 것은 아니었지만, 동아시아에서 각자의 모국어를 사용하면서 통역이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서양 언어로 번역될 때는 소실되었던 언어의 정서들을 간직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각 나라의 예술과 전문용어들에 익숙한 2개 언어 이상을 사용하는 예술전문 통역 및 기획자들이 프로젝트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면서 언어와 연관된 예술적 주제들을 발전시키는 데 핵심적인 촉매 역할을 했다. 리드 프로그램이 아시아의 다른 나라로 계속 이어지면서 새로운 연대와 예술적 상상력이 플랫폼이 되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