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관의 재구축 아라카와센 이야기
2014/07/18
요즘 시대에서는 신자유주의 하에 국가관리, 언어정치, 자본주의가 섬세하게 발전해 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아시아지역은 얼마나 국가민족, 이데올로기, 소비모델을 넘어서서 세계관을 구축한 위에, 현대 아트에 연결할 수 있는가, 끊임없는 모델 사막을 극복하는 것이야 말로 지역의 잠재능력을 끄집어 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최근의 예로, 2014년 3월 8일, 갤러리 도쿄 원더 사이트의 「아시아・아나키・얼라이언스」전시가 시부야, 홍고의 전시장에서 공개되었다. 이 시점은 대만 폐핵데모와 동일본대재해 후쿠시마원자력사고 삼주년과 겹친다. 전람회에서 유엔곽민(袁廣鳴)이 공개한 신작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그의 작품은 높은 각도에서 가랑비(鵝鑾鼻)의 원자력발전소 및 랑쇼(蘭嶼)의 방사성 폐물처리장
을 찍은 것이다. 작품안에서는 용두암의 언덕에 조용히 바다를 향해 있는 산양들과 모랫사장에 있는 사람들이 찍혀있다. 이러한 경치를 보고 산양들과 우리들은, 원자력발전소와 방사성 폐물처리장하고 이렇게 가까이 가까웠나 라고 나는 생각했다. 한편으로는 랑따오(朗島)초등학교, 바다와 파도, 녹색의 언덕이 사람없는 조정실을 에워싸고 있다. 마치 유령의 집처럼, 소름이 돋는다.
이 작품은 원자력 반대의 많은 목소리와는 달리 굉장히 조용하다고 말 할 수 있다. 이러한 순수한 목소리는 지금 동경의 한쪽에서 원자력 반대에 대해 커다란 움직임이 보여지고 있다.
쳉제렌(陳界仁)의 『로경도』에서는 대만 고웅 하바의 스트라키 노동자가 「세계의 노동자들은 우리들의 동료다」라는 것을 주장하고 있다. 이번에 쳉씨의 작품도 바다를 건너 일본에 와서, 전시장에서 주목을 받았다. 작품에서 아시아・아나키・얼라이언스의 구체적인 이미지가 느껴졌다. 개념상으로는 세계관의 예술성을 재구축하고, 대만이 최근 수십년간에 현대 아트에 있어서 세계관 재구축의 대처방법과 연관된다. 그 반면, 행동상에서는 아시아민족의 벽을 부수고, 대만에서 한발 나아가고 있다. 이번 이벤트는 우다쿠엔(吳達坤)씨가 큐레이터를 담당하고, 2년간에 걸쳐 드디어 현대아시아와의 연계를 지었다.
나아가, 중년세대의 야오주이청(姚瑞中) 및 젊은 세대의 창리엔(張立人), 쳉징얀(陳敬元), 쳉찡야오(陳擎耀), 투페이신(투페이신), 예쳉유(葉振宇)라고 하는 아티스트도 각광을 받았다. 그 중에서 창리엔씨의 『전쟁의 성』은 도시시스템을 그리는 세세한 양상을 사용해, 세계의 경찰인 미국에 콘트롤되고 있는 대만제국을 비판했다. 이러한 세계관에 대한 생각은 정말이지 「애니메 세대」의 대만에 있어서 그레이드 업된 버젼이다. 더욱이, 갤러리 도쿄 원더 사이트의 홍고 전시장에서는 투페이신씨의 신작 『세계의 박람회』(World Expositions)은1970년의 오오사카, 1975년의 오키나와, 1985년의 츠쿠바, 1990년의 오오사카, 2005년의 아이치에서 사용한 일본만국박람회의 선전 포스터를 원고로 한 것이다. 인터넷에서 모은 세꼐의 대사건의 문장과 사진을 프린트아웃해서, 배경을 투명화하게 해서, A4의 원고에 붙혀서 만든 작품이다.
신작에 대해서, 투페이신씨의 전작 『옥산미로』애니메시리즈는 과거의 박람회사진을 축소해서, 세계의 정보를 모아 플랫폼으로 한다. 여기에서는 카세르에서 개최된 13번째의 『다큐멘터』에 있어서, Geoffrey Farmer가 1935년부터 1985년까지의 잡지 『Life』에 실은 『잡초의 잎』(Leaves of Grass)의 사진을 도려내는 것과 같은 수법을 사용했다. 새로운 조합으로 인해, 원래의 미국 라이프 스타일이 뒤집혀, 일본이 만든 동아시아를 기본으로 한 세계관이 이루어졌다. 미국에 있는 신전위나 팝아트 대신에, 대만과 동아시아에서의 세계관의 에피소드가 대신했다. 물론 냉전의 역사에서는 미국의 요소도 번번히 등장했다.
투페이신씨의 박람회시리즈 작품이 3월 12일「r:ead:동아시아와의 대화」에서 발표되었다. 「도상의 표상」에 뛰어났으며, 색의 배치도 산뜻한 작품이었다. 일본 종래의 소박한 미학을 바탕으로, 새로운 현대의 요소가 들어가 있다. 페이신씨의 이 작품은 Anselm Kiefer의 독일 낭만주의에 넘쳐나, 차가움과 허무함에 넘쳐난 2차세계대전에의 반성을 그린 회화와의 사이에 큰 아시아식의 콘트라스트가 생성되었다.
이번 기획에 참가한 덕분에, 투페이신씨를 비롯해 일・한・중의 아티스트, 큐레이터와 동경에서 이야기 할 수 있었다. 이것을 계기로, 비평가로서 어떻게 아티스트의 기존 작품에 영향받지 않고, 자신만의 세계관을 재구축 할 수 있는가 하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세계관의 재구축은 특정 예술문화를 바탕으로 해서, 세계사의 관점에서 새로운 인스필레이션을 끌어낼 필요가 있다.
대만에서의 종래의 예술문화에대해서, 이러한 아드바이스를 했다. 1980년대의 대만영화는 아시아 및 사구의 평론가에게 주목받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가운데, 이 시대의 대만영화를 세계관 재구축의 양식으로 생각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동경에 오기 전에, 인터넷에서 허우샤오시엔(蕭菊貞)감독이 만든 다큐멘터리
「백합기획-대만 신영화 20주년」(2002)을 보았다. 그것을 계기로 대만의 신영화세계에 들어섰다. 그 시대를 돌아보면 그 시절의 시대감, 그 시대의 제작공정, 정치 심사와 문화 투쟁이 상세하게 남아 있다. 450만 TWD보조금으로 만든 「광음의 이야기」(1982)를 시작으로 1987년 대만 신영화 감독선언 발표까지, 오념진(吳念真), 소야(小野),호우샤오센(侯孝賢), 에드워드양(楊德昌),
증상상(曾狀祥), 쵸유키(張毅), 테첸타오(陶德辰), 가일정(柯一正), 주톈원(朱天文)은 훌륭한 문화를 만들어 내었다. 그들은 제한된 환경안에서, 당시 국민당의 노동조합시스템과 등급평가시스템에 직면하여, 그리고 명기(明驥)(당시 대만중앙영화회사의 제너럴매니저, 대만신영화의 아버지)의 노력에 의해 그들을 통합니켜, 이러한 문화의 기적을 일으켰다. 그래도, 아시아나나 세계의 시점에서 한번 더 대만 신영화를 검증해보면, 또 새로운 평가가 나올 것이다.
대만 신영화가 시작되고 30년후, 다큐멘터리 감독 왕경유(王耿瑜)는 한번 더 신영화를 검증해보았다. 다른 대만 신예 아티스트처럼 그녀가 편집중인 필름을 보면, 거리를 두지 않으면 새로운 관점으로 사물을 볼 수 없다는 것을 나는 새삼스럽게 발견한다. 신영화에 관련된 논쟁을 20년후에 한번 더 검증해 보면, 『OUR TIME OUR STORY – 20 YEARS’ NEW TAIWAN CINEMA 』이라는 다큐멘터리와 같이, 굉장히 우리들을 다른 결론으로 안내한다. 그러나 혹시 이 시간은 30년이 지나면, 신영화의 미학가치는 객관시점의 변화 혹은 신영화 안에서 나타난 아시아 의식과 세계의식의 특이점이 될 것이다.
왕경유가 편집한 최초 버젼의 영상 중에, 일본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是枝裕
和), 프랑스감독 올리비에・아사야스, 중국감독 왕샤오빙(王小兵)과 지아장커
(賈樟柯), 이탈리아 큐레이터 뮬라, 일본영화대학학장 사토우타다오(佐藤忠
男), 홍콩감독 슈치(舒琪), 아티스트 아이웨이웨이(艾未未), 그리고 아르헨티
나의 영화 관계자까지, 모든 사람들은 이 대만 신영화가 시작된지 30년 후, 신영화가 그들과 아시아에 대해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인정, 신영화 안에서 의 세계의식에 대해 긍정적으로 인정했다. 이 세계 중, 어떤 한 세대의 문화인은 대만 신영화를 접촉하고 영향을 받아, 당대 화인의 생명을 보였다.
대만영화 조성금 시스템, 비지니스 가치, 혹은 비지니스 밸런스 등의 외부 인자의 시점에서 보면, 대만신영화의 내부가치를 읽을 수 가 있다. 이것은 내가 아시아와 세계의 시점에서 대만신영화를 검증 할 때 발견 한 것이다. 과거, 우리들은 그러한 외부인자를 둘러싼 논쟁 중에, 마켓 동향에 대한 주목은 결코 결여되지 않았다. 우리들이 결여되어 있는 것은 세계관 일 것이다. 그 결과, 아시아 역사, 혹은 세계사의 시점에서 한번 더 1980년대의 대만신영화를 검증하는 것이, 최근 나에게 있어 재미있는 과제였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왕경유와의 대화 중에, 자신의 어린시절에 대해 이야기를 하였다. 당시, 가족전원이 바나나나 파인애플을 먹을 때, 그의 아버지는 언제나 「역시 대만 것이 더 달구나」라고 말씀했다고 한다. 그때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아버지의 기분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어른이 된 어느 날, 우연한 기회로 허우 샤오시엔 감독의 작품 『A Time To Live, A Time To Die』를 보고, 그는 드디어 이해했다고 했다. 그의 아버지의 말씀 중에는, 자신이 태어나서 청년시대까지 대만에서 살았던 기억, 행복, 그리고 대만이라는 고향에 대해 그리워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아버지는 태평양전쟁 중에, 중국 동북으로 가서 일본에 돌아 온 경력에 대해,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이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이야기를 따르면, 아시아성이라는 것은 영화 안에 나타난 패션 프루트에도 잠재되어 있을 수 도 있다고 한다.
인터뷰 중에, 지아장커는 이렇게 말했다. 「신영화는 확실하게 끝이다. 그리워하며 떠올리는 것은 아무 것도 남기지 않았다. 그러나, 어떤 영화에 속해 있는 생활 스타일까지도 신영화와 함께 없어져버리는 것은 아쉽다.」 이 이야기는 「신영화는 이제 죽었다, 신영화는 이제 끝이다」라고 중얼거리고 있는 우리들에게, 한번 더 생각해 볼 수 있는 찬스를 제공한다. 도대체, 「영화에 속해 있는 생활 스타일」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영화 생산방식의 갱신, 허우 샤우시엔(侯孝賢) 감독이 영화를 위해 땅을 팔고, 에드워드 양 감독이 차륜 소리를 위해 심야 양명산에 가서, 롱테이크로 온몸으로 연기하지 않으면 안되는 특이한 상황 등 이다. 또, 에드워드 양감독이 『Boys from Fengkuei』라는 허우 샤우시엔감독 영화를 보고, BGM을 재제작을 결심한 것도 그 생활 스타일의 한 가지이다. 당시 도시와 시골의 현실상황을 충실하게 재현, 촬영 주변의 환경소리를 충실하게 수록, 일본어, 대만어, 그리고 객가어(대만방언의 한가지)를 대사로 사용하는 등. 이러한 것 중, 「현재를 주목하면서 현실에서 벗어나, 영상시점에서 세계를 보다」는 것을 할 수 있다 라는 영화적인 생활스타일이 보였다. 말을 바꾸면, 이 생활스타일은 일종의 강렬한, 개인적인, 창조적인 세계를 만드는 스타일이다.
고레에다 히로카즈감독은, 허우 샤우시엔감독과 오즈 야스지로우감독의 사이에 있던 미학 대화를 계승하고 있다. 프랑스감독 올리비에・아사야스는 에드워드 양 작품 중에, 런던, 파리, 혹은 뉴욕등에서, 인간세계에서의 공통의 것을 읽을 수 있다. 이러한 깊고 창조적인 대화와 현대인간이 공진하는 것은, 진실한 새로운 아시아관과 세계관일 것이다. 밤에 나는 아라카와센(荒川線) 안에서, 이러한 것을 생각했다. 그와 동시에, 나 또한 허우 샤우시엔감독이 2003년 오즈 야스지로우 백년명복을 기념하기 위해 만든 영화『Café Lumière』의 내용을 생각했다. 영화 안에서, 히토토 요우(一青窈)가 연기한 이오누에 요우코(井上陽子)는, 이름도 모르는 대만인의 아이를 임신하였다. 그녀는 전철 안에서 도대체 어떤 고독을 느끼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