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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프레임을 향하여

2013/02/21

12월에 있었던 r:ead의 1차 기간을 통해, 참가 아티스트 김지선, 라오 치아엔, 리 닝, 그리고 소마 치아키 디렉터를 포함한 스탭들의 여러 의견과 작품을 접하고, 예술과 정치의 관계에 대한 뜨거운 토론의 시간을 가졌다. 이 어려운 문제에 대해 다양한 각도에서 도전한 각각의 작품들을 보면서, 큰 자극과 용기를 얻음과 동시에, 그 다음 단계로 무엇이 가능할까 하는 과제도 내 안에서 세워졌다. 우리들이 갖고 있는 창조력을 통해, 정말로 무엇인가를 구체적으로 바꾸려고 할 때, 우리 앞에 있는 기존의 예술활동의 프레임이 불충분한 것은 분명하다. ‘돈과 권력이 움직이는’ 실전 정치 세계에 들어가지 않고서는 사회를 구체적이고 실질적으로 바꿀 수 없다, 라는 생각이 과격한 의견이라는 사실은 물론 이해하고 있다. 그러나 사회를 바꿔야 한다고 진지하게 생각한다면, 예술가로서는 가장 마음 편하게 할 수 있는 개인적인 미시정치 수준에서의 저항이 결국은 한계를 갖는다는 사실을 인식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사회를 정말 실질적으로 바꾸고 싶다는 의사가 있고, 이를 위해 필요한 창조력과 상상력을 발휘하고자 한다면, 새로운 프레임의 창조가 요구된다.

그 첫걸음으로, 미시마 유키오가 세운 ‘문학(예술)=무책임, 비윤리, 생(삶)’, ‘행동(정치)=책임, 도덕, 사(죽음)’이라는 명제를 재구성하여, 예술에 책임을 지도록 해 보는 것은 어떨까? ‘정치=책임’, ‘예술=무책임’이라는 명제를 버리고, ‘예술=책임’, ‘정치=무책임’이라는 가정을 세워 보는 것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은 가능할까? 예술의 정치성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정치의 예술성에 초점을 맞추어 보는, 그러한 프레임과 관점은 가능한 것일까?

하나의 출발점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예술을 표현으로 다루는 것이 아닌, 테크놀로지로서 취급하는 것일지 모른다. 과학적이고 기계공학적인 테크놀로지는 분명히 인간과 사회를 (또는 인간과 사회라는 개념 자체를) 바꾸는 힘이 있다. 그와 같이 예술을, 창조력을 통해 사회를 바꾸는 테크놀로지로서 취급하는 것은 가능할까? 그리고 그 연구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지식을 예술가의 표현을 통해 결과물을 만드는 대신에, 또한 기존의 프레임안에서 작품이라는 상징적인 형태로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실천적으로 일상에 침투하여 이용해 나가는 공간을 만드는 것은 불가능할까. 즉, 감상용/비평용 예술을 버리고, 도구주의를 철저하게 실천해 보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실천의 결과물이 ‘작품’으로서 평가되는 것이 아니라, 실제의 ‘사회적 변화’로서 평가되어야 한다는 점에 있다. ‘비평적이다’, ‘흥미롭다’라는 평가기준은 더이상 없으며, 보다 실질적으로 ‘효과가 있다/효과가 없다’라는 평가만이 존재할 뿐이다. 또한, ‘보다 효과적’이기 위해서는, 장르의 울타리는 처음부터 집어 치우지 않으면 안 된다. 오피니언을 움직이는 노하우를 이미 보유하고 연구하는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광고회사/ 정치가/ 사업가/ 방송제작자/ 이론가/ 건축가/ 디자이너/ 출판업자 등)과 함께, 고찰하고 실천하며 협동하는 공간을 구축해 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지금 가정한 새로운 프레임을 어떻게 확립하는 것이 가능할지, 그에 대한 고찰과 케이스 스터디를 2~3월의 레지던시 기간 동안 실행하려고 생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