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는 비어있다.
2014/02/16
지금의 「동아시아」는 미국의 시점에서의 동아시아인가, 아베씨와 시진핑씨와의 사이에 있어서의 동아시아인가, 보편적가치로부터의 동아시아인가, 아니면 중국인 일본인 혹은 한국인에게 있어서의 동아시아인가.
어떠한 입장에서 생각하는 경우라도, 이른바「동아시아」에 포함되는 지역과 문화를, 자신이 걸어본 적도 경험해본 적도 없는 사람은, 진실과는 거리가 먼 무지와 편견으로 스스로도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 모르는 논점을, 사람에게 피로(披露)하려고 한다. 그리고 그 논점을 위해 논거를 찾고, 때로는 스스로가 논거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그렇게되면 사람은 사물의 표면 밖에 보이지 않게 되어, 자신의 머리로 생각하는 힘이나 지혜를 잃어버리게 된다. 진짜의 세계를 보아도 보이지 않고,서커스의 개(犬)와 같이, 어떠한 훈련도 받아들인다.
지금의 세계는 글로벌화되어 있다는 것을 잊지 말기 바란다! 글로벌화가 문화에 가져다 준 큰 리스크 중의 하나는 우리들이 「노예」와 같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아직 인식하지 못한 채, 그 위에 독선적이 되어 있다는 것이다. 「정확성」의 가치는 조금씩 작아지고 있는데, 대다수의 사람은 그것에 대해 의문을 가지지 않는다. 그것은 자각도 하지 않는, 나른해져 있는 개구리와 같다.
동아시아와 관계없는 것을 기술(記述)하고 있을수도있다. 하지만, 먼저 이것에 대해 논의하지 않으면 진실의 문제에 도달할 수 없다. 다시말해, 혹시 우리들의 논의가 앞서 말한 것과 같은 상황이라면, 그 논의는 「학술」이라는 것으로 그럴싸하게 꾸민 가짜의 논의가 된다.
나는 한 사람의 「진심」을 가진 아티스트로서, 이러한 「학술논의」는 술안주 밖에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혹시 우리들의 논의를 형태만이 아닌 것으로 만들고 싶다면, 처음부터 계산 된 틀에 모든 문제를 집어넣어서는 안된다. 이것은 대다수의 사람에게 있어서는 어려운 것 일 수 도 있다. 왜냐하면 많은 사람이 요구하고 있는 것은 「안심감」으로, 진리를 추구하는 것은 결국 위험한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들이 정말 논의를 통해서 해야만 하는 것은 「동물원에서의 사냥」 이나 「공원에서의 탐험」이 아니다.
그럼 이제, 「동아시아」에 대해 이야기 해보자. 먼저, 고전주의와 정치는 시대에 뒤떨어진다. 지금의 세계는 아주 오랫 옛날에 그 게임을 끝냈다. 옛날에는 영토를 개척하고, 제국을 만들었지만, 지금은 전혀 룰이 다르다. 그렇기때문에, 좁은 도량의 민족주의와 애국주의는 시시하게 여겨지고 있고, 자신을 마취시키는 이외엔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 물론, 정치가들에게 있어서는 아직 사용되고 있지만, 그것은 「바보」같은 국민의 투표, 혹은 지지를 받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동아시아는 미국과 같이 자연스럽게 민족주의를 배척하고 있는 것이 아니며, 유럽과 같이 아픈 경험을 통한 교훈을 가지고도 있지 않다. 때문에, 민족주의는 아직 받아들이고 있다. 우리들이 「사랑스러운 동아시아」에 대해 논의한다면, 지금의 민족주의를 정리해 명확하게 하지 않으면 안된다. 지금의 민족주의는 내 입장에서 본다면, 어리석은 생각의 산물이며, 어제까지의 역사가 아니고 내일도 반드시 틀린다.
이 「민족주의」는 일/중/한을 죄다 없애버리고, 더욱이 대만까지 영향을 미쳐, 근대의 역사발전과 정치변국(変局)에 깊게 관계하고 있다. 그것을 위해, 사람들은 모르는 사이에 역사와 정치의 꼭두각시가 되어 있다. 하지만 그들은 아무도 자각하지 않고, 자신이 깊은 견식과 사상을 가지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다.
실은 우리들은 어떤 강대한, 그것에 대항하는 사람이 없을 것 같은 체계에 맹목적으로 종속되어 있다. 이 체계가 서양적인 것인가, 동양적인 것인가 혹은 고대 그리스 문명적인 것인가, 미국 문명적인 것인가 라는 판단은 할 수 없지만, 그것은 점점 흡수되어, 변화하고 있다. 단, 우리들이 지금 보고 있는 것은 서양의(명확하게 말하자면, 미국의) 문화를 중심으로 하고 있는 문명체계이다. 한가지 예로 들 수 있는 것은, 1달러 지폐의 뒷면에 있는 「new order」는 이제 아득한 옛날 이야기다. 미국사람이 세계에 대해 구상하기 시작한 것은「얄타협정」 보다 훨씬 빨랐다. 「얄타협정」의 정치흥정을 위해, 동아시아에서 「혼란」이 일어나도록 예전부터 절차를 밟고 있었다. 그리고 새로운 「나라」 마저 만들었다. 그 덕분에 동아시아의 몇 나라는 서로 얕보거나 증오하거나 한다. (정말이지 서커스단의 사육된 원숭이와 같지 않은가! 때문에 「민족주의」와 「애국주의」는 더없이 어리석은 것이다.) 동아시아의 「혼란」은 때마침 「세계의 질서」의 둘도 없는 부분이 된다. 중국의 공산주의와 혁명수출, 그 후의 냉전질서와 문명분단은 그칠 줄 모르는 폐해를 가져 왔다. 중국은 동아시아 문명의 근원, 동아시아 문명의 중심이었다. 일본은 청나라 시대때 부터 중국을 앞질러, 동아시아의 리더가 되었다. 이것은 실제로 서양문명이 동양문명을 이겨낸 것이다. 그리고 그때 우리들은 어쩔 수 없이 서양문명이 세계의 중심에 있다고 인정했다.
중국과 일본은 기본적으로 서로 배우고 있다. 옛날에는 일본은 중국으로부터 배운게 많았지만, 근대에 들어서는 중국이 일본으로부터 배우는 것이 많아졌다. 이 두 나라는 보통은 사이가 좋고, 때로는 의리가 굳다. 하지만, 일정의 균형이 잡히면 반드시 싸우게 된다. 당나라때 한번, 원나라때 두번(두번의 간격이 짧았기에 한번으로 계산해도 좋다. 물론 이것은 몽골인에 의해 세워진 당시의 원나라가 중국으로 계산되어지는 경우의 이야기이긴하지만), 명나라때 한번, 청나라때 한번 (제2차세계대전은 어떤 의미로는 이 싸움의 연장이라고 생각된다). 이렇게 정기적으로 일어나는 싸움은, 부부싸움과도 같다.(덩샤오핑시대의 일본과 중국은 아직 사랑스러운 연애기간으로, 일본은 당시 거의 전 재산을 다 써버렸다고 말해도 좋을 만큼, 힘을 다하여 중국을 원조했다. 중국도 일본에 대해 놀라울 정도로 시장개방을 했지만,) 지금은 이별이야기로 시끄럽다. 고집을 부리고 있지만, 실은 마음 속으로 아직 서로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 이것에 대해서는 매일 신문을 읽는다면 알 수 있다. 실제로 일/중의 수뇌(首脳)는 바보가 아니고, 불쌍할 뿐 이다. 「민주」가 화를 초래한다. 민주에 의해 모든 것을 정하면 안된다. 다수의 사람에 의해, 어떤 하나의 사건에 대한 판단은 간단하게 개념화 된다. 그것은 윌 스트릿의 금융에 관한 이야기를 아티스트와 논의하는 것을 상상할 수 없는 것과 같은 것이다.
한국은 쓰라린 기억을 가지고 있다. 일본과 중국이 전쟁을 시작할 때 마다, 항상 먼저 피해를 입고 마는 것이 조선반도이다. 냉전시대때도, 조선반도를 분리하여 전쟁의 최전선으로 이용했다. 지금도 이 상황은 아직 변하지 않았다. 때문에, 한국의 민족주의는 굉장히 강하고, 이해하기가 어렵다. 그리고 많은 고난을 가졌던 국가가 지금과 같이 성숙되어 있는 것에 경복(敬服)할 만하다고 생각한다. 한국사람에게 있어서 중국과 일본은, 두 사람의 「이 빌어먹을 자식」이라고 생각되고 있는 지도 모른다. 그 위에, 세계의 몇몇 큰 세력을 가지고 있는 나라도 모두「이 빌어먹을 자식」이라고 생각되고 있는 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언제나 한국사람 집에서 싸움을 하고, 조선반도는 거기에 대해 참혹한 대가를 취뤄야만 했다. 실은 나도 그것에 대해 분노를 느끼고 있다. 그 때문에 한국은 문자도 바꿔, 독자의 세계를 만들었다. 단, 객관적으로 보자면 이 부분은 한국 문화 안에서도 애매한 부분이 있다. 정치와 문화는 관계가 없기 때문이다. 짧은 역사관으로 보자면 분명히 관계가 있는 것 같지만, 길게 보면 실은 관계가 없다. 이것은 어느쪽이냐면, 역사에 대한 정서적인 반응으로, 백년 후의 것은 아무도 알지 못하지 않는가.
대만사람은 중국사람이지만, 일본사람에게 감사하고 있다. 청정부가 대만에서 건전한 통화시스템을 세우지 못하고 있을 동안, 일본사람이 대만사람에게 근대문명의 발전을 가져다 주었다. 청정부가 대만을 일본에게 넘겨준 것 (당시 「바칸조약(馬関条約)(시모노세키조약(下関条約))」에서, 일본
의 산동반도의 일부 점령을 인정하고 대만을 할여하였다)과, 대만민주공화국 성립 후에 국민당이 대만에 들어온 것은, 대만의 민중에게 「중국문화가 최고다라는 생각을 잊자」라는 감정을 심어주었다. 그들의 반응을 보아도 이것은 확실하다.
이들 문제는, 모두 역사와 정치 분야에 속해, 역사와 정치는 쌍둥이 형제와 같이 분리하여 취급할 수 없다. 정치는 눈 앞의 역사와 같은 것이다. 하지만, 역사는 이전의 정치에 속해 있다. 그것들은 두개의 거대한 좌표축과 같은 것으로, 모든 것을 정의 한다. 세계의 모든 것이 그 좌표축에 종속되어 있다. 예를들어 부모형제, 국가성립기념일, 사전(辞書)등 한개만이 아니다. 이 좌표계통 안에서 우리들은 「내가 누구인가?」라는 것을 확실히 이해할 수 있다. 이것도 이번 프로젝트의 궁극적 목적이라고 생각되어진다.
어떠한 전쟁변혁이나 역사변천이 있던지, 우리들은 역사의 긴 흐름 속에 있는, 이상한 일관성을 본다. 예를들어 유럽의 히틀러와 나폴레옹 두사람은 유럽의 대륙을 주도한 후에 두가지의 같은 것을 했다. 한가지는 영국에 진격한 것, 다른 한가지는 러시아에 패한 것. 이것이 근대의 구주(欧州)문명의 구성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고 누가 말할 수 있었는가. (영국은 유로권에 참가하지 않는다.) 그들은 기독교의 문명체계에 속한다.
서로 닮은 데가 있는 역사적 관계를 확대해 보면, 우리들의 과거는 전부 기독교 문명, 이슬람 문명, (실은 기독교 문명에서 갈라져 만들어진)그리스 문명 및 동아시아의 유학 문명, 유대 문명의 사이를 둘러싸고 있다. 이들 문명의 발전은 「문명」과 「전국(戦国)」의 관계와 같다. 때로는 연합하며, 때로는 저항하며, 비틀거리면서 오늘날에 이른다. 그것은 지금도 변하지 않고 세계 문제의 열쇠가 되고 있다. 어떤 사정(事情)의 발생과 발전은, 다시말해 문명의 충돌이다. 가장 핵심에 있는 원인을 구명하는 것은 어렵다.
그렇기에 문명은 역사와 정치에 버금가는 세번째의 죄표축이 된다. 각각의 문명 배경은 세계에 대해 다른 인식과 판단을 가져다 준다. 이 세번째의 좌표축은 서로 주요한 것과 부차적인 것을 담당한다. 대부분의 경우, 정치와 역사는 실용적이다. 예를들어, 일/중의 댜오위 다오(釣魚島) (센카쿠쇼토우(尖閣諸島)),일/한의 타케시마(독도)의 분쟁, 그리고 일본의 북방사도(北方四島)의 분쟁, 모든게 이 두 좌표축의 중간에 속한다. 하지만 문명은 현실의 실용성을 준비하고 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 길게 보면 그것은 제일 중요한 것임에 틀림없다. 때문에 정치, 역사와 문명, 세개의 척도로, 세계의 「존재」라는 좌표계통을 정의하고, 동시에 서로 견제하며 만난다. 그러니만큼 우리들의 세계는 붕괴하지 않는다. 이것은 우리들이 예술과 예술가를 필요로 하는 요인일 수 도 있다. 물론 음악이나 철학, 시도 마찬가지다.
이상의 것에 입각하여, 우리들은 「동아시아라는 것은 도대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가까워 질 수 있다. 문명에는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힘과, 무지를 줄이는 힘이 있다. 우리들의 문명은 후자의 경향이 강하다. 혁신적인 창조는 여러가지 문제를 해결하지만, 동시에 많은 새로운 문제를 초래한다. 한개의 체계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혁신을 가속화시키는 것만으로, 일정 정도까지 가속하면 새로이 본질적인 문제가 발생한다. 그리고 거기에서 새로운 가능성이 태어나는 것은 무지가 없어질 때이다. 이것은 바로 우리들 동방 문명의 특별한 매력 중 하나이다.
컵의 가치는 재질이나 모양이 아니라, 비어 있는 것에 있다. 물 혹은 와인이 가득 부어지고 나면 컵은 가치를 잃는다. 단, 컵의 내용이 끊기지 않고 갱신되는 것에, 컵은 영원의 가치를 가지게 된다. 하지만 「갱신」과 「혁신」은 다르다. 둘 다 성장과 발전이지만, 다른 부분이 있다.
「동아시아」의 문제에 대해, 우리들이 문명의 관점에서 검토한다면 적극적인 사건을 촉진하는 의의가 있다. 정치와 편협된 역사는 유한(有限)이며 불완전함에 틀림없다. 문명의 관점에서 중요한 것은 우리들의 철학문화관과 세계관이 「텅 빈」것과「가능성의 무한」에 놓여 있다는 것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