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소

r:ead의 제2기 체재기간에서는 예술의 힘을 한층 더 느낄 수 있었다. 제1기에서는 일본에 대해 지극히 표면적인 인상만 받을 수 있었지만, 지금은 깊게 느껴지는 부분도 있다. 그러나 물론 아직 표면적으로밖에 느낄 수 없는 부분도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내 자신이 변했다는 것이다. 이 점을 예리하게 포착해서, 스스로의 변화 과정을 영상작품으로 만들기로 했다. 마음의 변화를 그리는 영화인 것이다.

프로젝트의 제1기를 마치고 중국에 돌아갔을 때는, 중국과 일본의 긴장이 고조된 시기이기도 했다. 야심찬 한명의 아티스트로서 이러한 정세를 활용하여 퍼포먼스를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역사와 예술사에 흔적을 남기고 싶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 때 나는 조금 미쳐있었다! 그 생각이 옳은지 그른지, 혹은 결과가 어떤지에 관계없이,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키면 그걸로 괜찮다고까지 생각하고 있었다. 영상의 처음 부분은 실제 나의 내면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중국의 ‘애국심을 가진 한 젊은이’인 ‘나’는, 야스쿠니신사에서 퍼포먼스를 함으로써 ‘일본’을 자극하고 공격하기를 원했다.

그러나 일본에 와서 내가 본 것은, 예의바르고 헌신적으로 일하며 생활을 즐기는 일본인과 깨끗한 거리였다. 게다가 많은 일본인은 정부에 대해 반감을 갖고 있어서, 일본에 대한 호감이 생길 정도였다. 막연하고 포괄적으로 갖고 있던 ‘일본’이라는 추상적인 개념은 점점 사라지고, 구체적인 개인에 대한 흥미가 생겨났다. ‘나’는 점점 목적을 상실해 갔다. 전쟁을 체험한 세대부터 순진한 소년들에 이르기까지, 보다 많은 일본인들과 접하면서 각자가 강렬한 생각들을 갖고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교육의 힘에 의한 것이었다. 내용은 서로 다를지언정, 전쟁 중이든 지금이든 변함없이, 교육은 정부와 국가에 의해 의식적으로 통제되고 있다. 88세의 노인은 중국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것은 어렸을 때 학교에서 중국은 나쁜 나라이고 중국인은 악인이며 천하다고 배웠기 때문이었다. 13세의 소년은 중일전쟁에 대해 잘 모른다고 했다. 교육의 배후에는 통제하는 국가가 있는 것이다. ‘나’는 점점 눈을 떴다. 일본인이 잔인한 것이 아니라, 인간 그 자체가 잔인하고 광기어린 일면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국가에 의해 통제되고 인간성의 연약한 부분이 이용되어, 무수한 국민이 전쟁이라는 지옥으로 밀려떨어지는 것이다….

부토의 거장 다나카 민의 작품을 보았을 때, 몇 번이고 멍한 채로 있었다. 마치 내가 무대 위에 있는 것처럼, 다나카의 신체와 나의 신체가 너무나도 닮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20년 후의 내 모습으로 보였던 것이다.

문화대혁명 시절의 홍위병은, 일본군과 전혀 다를 바 없다. 어머니에게 그 시절에 대해 물어보았을 때, 당시 홍위병의 한사람으로 천안문에서 모택동주석과 만난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우리들의 부모 또한 모택동 사상을 열렬히 따르면서 잔인한 짓을 한 것이다). 자료를 읽어나가면서 중국정부에 의해 감춰진 많은 역사적 사실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예를 들어 중일 전쟁은 국민당군이 전쟁을 일으켜 희생을 불러온 것이지만, 최근 중국의 텔레비전에서 줄줄이 방영되고 있는 항일 드라마에서는, 팔로군과 게릴라 부대가 일본인을 공격하는 내용으로 변해 있는 것이다…. 지금의 중국정부는 중국인들에게 무엇을 제공하고 있는 것일까? 오염, 강제철거, 사기, 세뇌……. 그 때, ‘나’의 유명해지고 싶다는 야심과 욕망은 이미 무너져 버렸다……. 나는 국가의 어떠한 악행에 조금이라도 가담하고 싶지 않고, 국가의 꼭두각시 인형이 되고 싶지 않다. 우선, 야스쿠니 신사에서의 계획을 그만두기로 했다. 그 장소를 선택한다는 것은, 자기표현이 아닌 정치의 도구로 전락할 뿐이기 때문이었다. 평범한 거리에서 다른 방법과 주제로 일반인들을 향해 퍼포먼스를 하자. 그것이야말로, 내가 가진 예술의 힘이자, 아티스트로서의 방법과 선택인 것이다.

“중국인도 일본인도 꼭두각시 인형이 되지 말자!”

마지막으로, 자유의 상징을 의미하는 날개를 달고, 도쿄의 고층빌딩 위에 서서 하늘과 거리를 내려다본다.
“분명히 나는 ‘역사’에 이름을 남기지 못할 것이다. 그렇지만, ‘역사’가 대체 뭐지? 그것은 언제나 승자가 남겨온 것이다. 우리들은 그것보다도, 깨끗한 공기과 식량이 필요하다”

이 1인칭으로 만들어진 영화는, 나의 리얼한 정신적 변화이기도 하고, 또한 감상자도 간단히 ‘나’와 동화될 수 있을 것이다. 중국과 일본의 현재 정세하에서, 이런 작품을 제작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국민의 편견과 오해의 해소, 개인 간의 교류, 인간성 안에 있는 자성과 양심의 탐구에 작은 기여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전쟁의 발소리가 들리는 “예술의 집”

4개국의 아티스트가 모여, 그 안에서 상호작용이 발생한다. r:ead프로젝트는 대단히 흥미롭고 기분을 들뜨게 한다. 예를 들어 타이완에서 참가한 라오 치아엔과 나는 같은 중국인이기 때문에, 선조, 문화, 과거의 국공내전, 현재 양쪽의 민주화 과정에 이르기까지 공통의 화제가 많다. 우리들은 서로의 환경, 그리고 개인과 사회에 의해 야기된 현재의 괴로운 상황들을 이해하려 하고 있다. 한국의 아티스트 김지선의 작품에는 굉장히 끌리는 부분이 있는데, 그녀의 진정한 동기가 무엇인지 알고 싶어졌다. 보다 좋은 사회를 위해서? 아니면, 국가라는 거대한 조직에 대해, 쥐가 코끼리를 쓰러뜨리는 것과 같은 힘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일본의 아티스트 고이즈미 메이로는, 공통의 인식과 곤혹스러움을 가지고 있는 것이 느껴져서 친근감을 느꼈다. 그의 작품으로부터는 자극과 영감을 얻을 수 있었다.

레지던시의 제2단계에서는, 한층 더 깊이있는 교류와 토론이 이루어졌으면 한다. 그리고 교류의 과정에서는 다양한 문제들이 제기될 필요가 있다. 중요한 시기와 눈앞에 닥친 환경앞에서 인간에게는 어떤 인격이 나타날 것인가. 나는 전쟁에서 사람을 죽일 수 있을 것인가, 지진이 발생해도 모두가 신사적인 태도를 취할 수 있을 것인가, 등등. 공허한 ‘정의’와 ‘인간성’ 보다는, 나는 ‘생생히 살아있는 존재’를 선택할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예술이란, 살아있는 생명체험과 같은 것이며, 타자와 나의 이성이 전쟁에 대하여 얼마나 나쁜 것이고 인간성을 말살하는 것이라고 나에게 말할지라도, 나는 참전할 것이다. 물론 나는, 자신들이 평화와 정의를 지키고 있다고 믿고 있는 듯한 미국인들처럼, 타국에 전쟁을 일으키는 짓은 하지 않을 것이다.

일본과 중국 양국 정부의 대립이 심화되고 있는 민감한 시기에, 우리들과 같은 순수한 아티스트들은, 마치 학생들처럼 예술이 전쟁을 저지할 수 있는가에 대해 진지하게 토론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우리들 자신이 모두 개인이며, 국가의 대표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우리들에게는 ‘예술’이라는 하나의 ‘국가’ 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이제 우리들은 예술의 법칙과 규율만을 의존하면서, 개인과 개인이 성의있게 교류하는 것이다.

12월의 귀국후, 내 자신이 느낀 것을 기록한 단편을 편집했다. 그리고, r:ead에 대한 다큐멘터리 필름을 제작하려고 생각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