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소리들의 이미지: 듣고 말하기

사회의 견고한 시스템의 경계를 넘나들며, 그 사이에 생겨나는 빈틈에 일종의 대항적 제스처를 구사하고자 하는 김지선 작가는 도쿄와 서울의 두 공간 모두에서 공교롭게도 대의(제도) 민주주의 꽃, ‘선거’라는 경험을 목격하고 겪었고, 이는 그간 천착해온 ‘가상’ 공간에 ‘새로운 민주주의 플랫폼’이라는 화두를 던졌다. 여기에 덧붙여 일본의 사상가 아즈마 히로키가 <일반의지 2.0>에서 말하는 의사소통의 바깥에서 발현되는 새로운 민주주의 플랫폼의 가능성은 2차 리서치의 주요한 키워드들을 생성시켰다. 한편 동아시아 4개국에서 온 r:ead 참여자들은 서로의 민주주의의 위기에 관해 입을 모아 얘기하곤 했다. 그 때문에 이 이론가의 기획은 언어와 국가를 넘어서, 분명 또 다른 정치화의 매력적인 가능성으로 다가왔었다. 최근 하시모토 도루 오사카 시장의 “위안부는 필요했다”는 발언과 관련해 문제는 특정 국가가 아닌 인류 전체에 해당하는 폭력성 아닌가 하는 취지의 아즈마 히로키 트위터 멘션이 한국에서 ‘아즈마 히로키의 망발’로 반짝 공론화되었다. 그는 이것을 어떻게 생각할까? 의사소통의 불가능성을 전제하고 시작하는, 소위 국제적 행사에서는 대체로 영어를 공용어로 하는 반면 r:ead는 참가자들이 각자의 모국어를 고수하게 했다. 불완전한 소통은 장벽이라기보다는 월경을 시도할 틈을 열어 줬다. 그 덕에 서로의 차이를 독해한(read) 이후에 도래할 대화(dialogue)가 가능하지 않았을까 싶다. 실제로 <일반의지 2.0>의 한국어 번역자였던 안천과의 만남을 비롯한 여러 사람의 지적 성과에 기대어 기존 인식을 깨고 일본 사회를 읽어내려갈 수 있었다. 언어 표기, 지정학적 위치 등을 고려하면 일본이 다른 아시아 국가들과 비교하여 대 중국화, 대 냉전 체제라는 제국으로부터 거리 두기가 어느 정도 가능했던 것으로 보인다. 때문에 혹자는 일본을 외부로부터의 억압 없거나 약한 주변부에서는 생성이 자연 발생했고 그것은 하나의 사회적 원리로 포획되지 않고 각각 따로따로 공존하는 사회로 보기도 한다. 이는 아즈마 히로키가 운영하는 겐론 까페 인터넷 패스워드인 ‘bunriyugo’, 서로 상반된 뜻을 지닌 분리와 융합의 공존에서도 발견된다.

도쿄에 도착해서 첫 발표 자리에 나는 이번 리서치를 염두에 두고 작가와 함께 고민했던 익명성에 관해 말했고, 김지선 작가는 한국의 웹 포털 사이트를 차용해 생각의 전개도를 그렸다. 발표 뒤에 그 익명성 때문에 벌어질 부작용에 관해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일본의 넷우익이나 한국의 일베처럼 파시즘적 징후를 보이는 예들도 있고, 애런 스워츠의 안타까운 죽음이나 어노니머스의 핵티비즘 활동은 웹 상에서 공유와 소유, 자립과 공격, 저항과 범법의 경계에 대한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 문제에 관해서는 갈등이나 위기를 관리하는 차원보다 세계를 구축하는 차원에서 필요를 말해 봤으면 한다. 한국에서 현실에서 존재감 없음, 패배자를 뜻하기도 하는 ‘잉여’ 또는 ‘듣보잡’은 웹에서 시작된 용어이다. 배제가 현실이라는 ‘의식’ 차원에서 벌어지는 지식의 전문성, 권위의 제한, 비용의 증가 때문이었다면, 새로운 민주주의의 플랫폼을 고민할 때 당연히 이 무의식적 존재들의 데이터베이스를 기존 민주주의를 보완할 배지로 삼아야 하지 않을까? 한국 문학평론가 복도훈의 <묵시록의 네 기사>에서는 뒤러의 동명의 작품을 바탕으로 파국에 직면한 지금 세계에 관한 네 가지 분석을 내놓고 있다. 그의 분석을 따르면 그 네 명의 기사는 각각 자기 파괴를 향한 자본주의의 진보 서사, 적과 동지로 나뉘는 정치적 상상력의 위기, 평등과 불평등의 피투성이 투쟁, 삶과 죽음의 가치가 상실된 생존 유일의 생명정치 이데올로기를 상징한다. 김지선 작가가 잘 훔치는 것(웰-스틸링)으로 전복하고자 했던 ‘웰-빙’이라는 한국 사회의 단면은 이 가운데 세 번째 묵시록의 기사 손에 들린 저울에 닿아있다. 남과 비교했을 때 더 우위에 있어야 하고, 또 남들에 뒤처지지 않아야 한다는 이 강박적 명제는 삶을 저해하는 요소들을 삭제하면서 삶을 삭제한다. 그래서 웰빙은 목숨이라는 수단 그 자체가 목적이 된 생존의 다른 얼굴이다. 아마도 이 생존의 굴레 바깥으로 탈락한 이들이 그 듣보잡일 것이다. 다시 그 묵시록의 비유에 기댄다면, 이들이 봉건 ‘신민’도 근대 ‘주체’도 아닌 탈근대 ‘생명’으로도 호명되지 않은 누군가이다. 이들을 아즈마 히로키가 말하는 동물로서의 인간, 김지선의 ‘잉여’와 연결지어 본다. 작가는 웹을 넘어서 이 얼굴을 찾아보려 했다. 고엔지에서 재활용가게를 운영하는 마쓰모토 하지메와 그의 이웃들에서도, 겐론 까페에 모인 손님에게서도. 결국 그녀는 이 연약한 이름들과의 접촉을 거쳐 겐론까페에서 퀴즈를 훔쳤다. 퀴즈는 질문과 답으로 구성된 담화 형식이고, 자기 각성 혹은 계몽과 깊은 연관을 가진 존재를 주체로 만드는 주체화 장치로 볼 수 있다. 작가는 실패를 뻔히 알면서도 답이 나올 수 없는, 해답으로 향하는 의식을 교란하는 내용으로 퀴즈를 채웠다. 공교롭게도 최종 발표날은 동아시아 전체에 파국을 가시화했던 2년 전 3.11 동일본 대지진이 일어난 그날이었다. 동아시아 각국은 이 묵시록의 과거, 현재, 미래 어느 한 부분이든 차지하고 있다. 동아시아는 새로운 낙원을 찾을 수 있을까? 그 답 또한 여전히 불안하다.

인터뷰에서 아즈마 히로키는 “한국이든 어디든 원전을 비롯한 여러 이슈들을 두고 일본 사회의 우경화에 관해 비판하는 외부의 목소리는 내정 간섭 논란을 일으키며 적대를 부채질할 뿐”이라 우려하기도, “문제(問題, 일본어 발음 ‘몬다이’)가 없는 것이 일본사회의 문제”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 두 문장은 내게 그에게서 혐의를 지울 수 없었던 일본 지식인의 특정한 순진한(naive) 태도와 일본 사회 내 탈정치화 경향을 동시에 연상케 했다. 한정된 이 글에서 정치의식이나 민주화 경험 차원에서 문제를 논하고 싶지 않다. 정치는 서로 다른 가치가 갈등하고 경합하며 서로를 인식하는 시간이자 장소이다. 오늘날 그 장에서 만들어진 가장 총체적인 결과물을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부른다. 회피하지 않고 적에 관해 끊임없이 말하고 그 적대를 이웃에 대한 우애로 바꾸는 낙원은 어디 없을까? 고엔지 이웃이 모이는 ‘난또까’ 바에서 들은 목소리들을 떠올린다. 그래, 난또까, 어찌하든, 어쨌든, 결국 민주주의, 정치, 사회 언저리를 맴돌고 있다. 왜? 민주주의 뿐만이 아니라 모더니즘, 동시대 예술 또한 제대로된 비용을 치르지 않고 단기간에 이식된 탓일까? 그래서 몇 두드러지는 예술가들은 부채를 갚으려는 듯 정치적 올바름에 따라 활동하는 것일까? 치르지 못한 비용은 이런 사회적 개입으로만 지불할 수 있는 것일까? 공연예술기획자 오자와 야스오는 인터뷰에서 “극장에 더 이상 공공성은 없다”고 진단하며 “웹상에서 공연예술의 새로운 공공적 플랫폼을 찾고자 한다” 말했다. 웹이든 다른 어떤 곳이든, 어쨌든, 예술이 분명 사회를 필요로 하는 것 아닐까? 대가를 치루는 방식은 아직도 모호하지만, 이 결론 내릴 수 없음을 낭만화하지 말고 끊임없이 문제를 기억해 낼 수 있길 바란다. 다시 만나자고 말했던 5년 뒤에도.

<오럴 히스토리>에 대하여

이번 r:ead에서 <오럴 히스토리>라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이것은 거리에서 만난 사람들을 대상으로, 제2차세계대전 및 그 당시 일본의 역사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을 구술하도록 부탁하는 인터뷰 형식의 프로젝트이다. 우에노 공원, 아메요코 시장, 요요기 공원, 신주쿠, 도쿄타워, 신오쿠보, 아사쿠사 등지에서 약 70명의 길가는 사람들에게 협조를 받았다. 인터뷰 협력자 개인을 알아볼 수 없도록 입 주변만을 비디오 카메라로 촬영해서, <오럴 히스토리>라는 타이틀처럼 ‘입이 역사를 말하는’영상작품으로 발전시키고자 했다.

최종 프리젠테이션에서는 우선 인터뷰 협력자의 입에서 발화되는 ‘역사’를 실제 연도순으로 맞춰나가는 편집을 시도한 영상을 발표했다. 70인 각각의 기억에 기록되어 있는 역사를 하나의 타임라인에 올려놓음으로써, 어떠한 공통인식이 존재하고, 또한 어떤 팩트가 빠져있는지 그 모습을 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편집을 했다. 그 결과, 예를들어 보다 많은 사람들이 말한 ‘원폭투하’와 ‘진주만공격’이라는 단어가 타임라인 위에서 복수의 ‘입’에 의해 반복됨으로써, 이 두 역사적 사실이 다른 사실보다 더 많이 인식되고 있는 모습이 그려지게 되었다. 또한 몇몇 사람이‘원폭’이라는 단어를‘원전’으로 잘못 말하는 것도 대단히 흥미로웠는데, 이러한 말실수와 기억의 오류들이 복수에 의해 발화될 때 집단적인 무의식의 모습이 떠오르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러한 무의식이 떠오르는 순간을 영상으로 표현하는 것 자체가, 이 프로젝트의 핵심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러나 이번에 시도한 것과 같이 실제의 연표에 맞춰나가는 편집으로는, 그러한 말실수나 기억의 오류를 효과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어렵다는 것 또한 깨달았다. 이 프로젝트는 정확히 기억된 역사를 전달하는 작품이 아니라, 집단적 기억과 역사인식에 얼마나 많은 오류와 공백이 존재하는지, 그 왜곡된 모습을 영상으로 담아내는 것에 그 의미가 있다. 따라서 대다수의 사람들의 입에서 발화된 “잘 모르겠어요…”, “역사쪽은 약해서…”라는 중얼거림이나 얼토당토 않은 발언을, 어떻게 편집을 통해 체계적이고 효과적으로 타임라인에 올려 놓을 수 있을지가 중요한 포인트가 된다. 일단 그 체계를 발견하게 되면, 그 이후에는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인터뷰를 시도하여 더 많은 소재를 얻음으로써, 작품에 무게를 더하고 표현을 풍부하게 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프로젝트의 최종적인 결과물의 형태는 아직 결정하지 않았지만, 현재의 바람으로는 멀티채널의 비디오 인스톨레이션이나 아카이브로서 이 작품을 선보이는 것이 아니라, 모든 소재를 어디까지나 하나의 타임라인에 올려놓는 것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싱글채널의 영상작품을 보통의 영화관에서 상영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60분간 ‘입’이 모순과 왜곡, 그리고 무지로 가득찬 역사를 집요할 만큼 일방적으로 관객들에게 강요하게 될 것이다. 그러한 모습이야말로, 오늘날 일본의 현실에 의해 만들어지는 충실한 ‘오럴 히스토리’가 아닐까 생각한다.

2013년 4월 26일.

해소

r:ead의 제2기 체재기간에서는 예술의 힘을 한층 더 느낄 수 있었다. 제1기에서는 일본에 대해 지극히 표면적인 인상만 받을 수 있었지만, 지금은 깊게 느껴지는 부분도 있다. 그러나 물론 아직 표면적으로밖에 느낄 수 없는 부분도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내 자신이 변했다는 것이다. 이 점을 예리하게 포착해서, 스스로의 변화 과정을 영상작품으로 만들기로 했다. 마음의 변화를 그리는 영화인 것이다.

프로젝트의 제1기를 마치고 중국에 돌아갔을 때는, 중국과 일본의 긴장이 고조된 시기이기도 했다. 야심찬 한명의 아티스트로서 이러한 정세를 활용하여 퍼포먼스를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역사와 예술사에 흔적을 남기고 싶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 때 나는 조금 미쳐있었다! 그 생각이 옳은지 그른지, 혹은 결과가 어떤지에 관계없이,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키면 그걸로 괜찮다고까지 생각하고 있었다. 영상의 처음 부분은 실제 나의 내면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중국의 ‘애국심을 가진 한 젊은이’인 ‘나’는, 야스쿠니신사에서 퍼포먼스를 함으로써 ‘일본’을 자극하고 공격하기를 원했다.

그러나 일본에 와서 내가 본 것은, 예의바르고 헌신적으로 일하며 생활을 즐기는 일본인과 깨끗한 거리였다. 게다가 많은 일본인은 정부에 대해 반감을 갖고 있어서, 일본에 대한 호감이 생길 정도였다. 막연하고 포괄적으로 갖고 있던 ‘일본’이라는 추상적인 개념은 점점 사라지고, 구체적인 개인에 대한 흥미가 생겨났다. ‘나’는 점점 목적을 상실해 갔다. 전쟁을 체험한 세대부터 순진한 소년들에 이르기까지, 보다 많은 일본인들과 접하면서 각자가 강렬한 생각들을 갖고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교육의 힘에 의한 것이었다. 내용은 서로 다를지언정, 전쟁 중이든 지금이든 변함없이, 교육은 정부와 국가에 의해 의식적으로 통제되고 있다. 88세의 노인은 중국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것은 어렸을 때 학교에서 중국은 나쁜 나라이고 중국인은 악인이며 천하다고 배웠기 때문이었다. 13세의 소년은 중일전쟁에 대해 잘 모른다고 했다. 교육의 배후에는 통제하는 국가가 있는 것이다. ‘나’는 점점 눈을 떴다. 일본인이 잔인한 것이 아니라, 인간 그 자체가 잔인하고 광기어린 일면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국가에 의해 통제되고 인간성의 연약한 부분이 이용되어, 무수한 국민이 전쟁이라는 지옥으로 밀려떨어지는 것이다….

부토의 거장 다나카 민의 작품을 보았을 때, 몇 번이고 멍한 채로 있었다. 마치 내가 무대 위에 있는 것처럼, 다나카의 신체와 나의 신체가 너무나도 닮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20년 후의 내 모습으로 보였던 것이다.

문화대혁명 시절의 홍위병은, 일본군과 전혀 다를 바 없다. 어머니에게 그 시절에 대해 물어보았을 때, 당시 홍위병의 한사람으로 천안문에서 모택동주석과 만난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우리들의 부모 또한 모택동 사상을 열렬히 따르면서 잔인한 짓을 한 것이다). 자료를 읽어나가면서 중국정부에 의해 감춰진 많은 역사적 사실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예를 들어 중일 전쟁은 국민당군이 전쟁을 일으켜 희생을 불러온 것이지만, 최근 중국의 텔레비전에서 줄줄이 방영되고 있는 항일 드라마에서는, 팔로군과 게릴라 부대가 일본인을 공격하는 내용으로 변해 있는 것이다…. 지금의 중국정부는 중국인들에게 무엇을 제공하고 있는 것일까? 오염, 강제철거, 사기, 세뇌……. 그 때, ‘나’의 유명해지고 싶다는 야심과 욕망은 이미 무너져 버렸다……. 나는 국가의 어떠한 악행에 조금이라도 가담하고 싶지 않고, 국가의 꼭두각시 인형이 되고 싶지 않다. 우선, 야스쿠니 신사에서의 계획을 그만두기로 했다. 그 장소를 선택한다는 것은, 자기표현이 아닌 정치의 도구로 전락할 뿐이기 때문이었다. 평범한 거리에서 다른 방법과 주제로 일반인들을 향해 퍼포먼스를 하자. 그것이야말로, 내가 가진 예술의 힘이자, 아티스트로서의 방법과 선택인 것이다.

“중국인도 일본인도 꼭두각시 인형이 되지 말자!”

마지막으로, 자유의 상징을 의미하는 날개를 달고, 도쿄의 고층빌딩 위에 서서 하늘과 거리를 내려다본다.
“분명히 나는 ‘역사’에 이름을 남기지 못할 것이다. 그렇지만, ‘역사’가 대체 뭐지? 그것은 언제나 승자가 남겨온 것이다. 우리들은 그것보다도, 깨끗한 공기과 식량이 필요하다”

이 1인칭으로 만들어진 영화는, 나의 리얼한 정신적 변화이기도 하고, 또한 감상자도 간단히 ‘나’와 동화될 수 있을 것이다. 중국과 일본의 현재 정세하에서, 이런 작품을 제작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국민의 편견과 오해의 해소, 개인 간의 교류, 인간성 안에 있는 자성과 양심의 탐구에 작은 기여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첫 체험 ―― 리닝, 도쿄에서 ‘구이즈’찾기

아티스트 리닝은, 고향인 지난시 특유의 먼지투성이 공기와 현대중국의 특수한 정치체재 하에서 받은 정신적 스트레스와 낙담, 울분과 절망을 가지고 도쿄로 왔다.
현대 중국인에게 있어서, ‘일본’이란 분명히 가장 익숙한 기호다. ‘일본’에 대한 중국인의 생각을 간단히 말하면, 1937년부터 1945년 사이에 벌어진 전쟁일 것이다. 영화와 드라마에서의 ‘구이즈’(역주. 일본인에 대한 차별적 호칭)는, (예전에는 중국인 배우가 상스러운 말라깽이를 연기했지만, 최근에는 중국에서 생활하는 젊은 일본인 배우가 ‘구이즈 배우’로 등장한다), 틀에 박힌 이미지를 끊임없이 주입시키며 나라 전체를 장악하고 있다. 리닝은 일본에서 ‘구이즈’를 찾고자 했지만, 그가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은 그와 동일하게 희로애락을 느끼고 개성과 감정 또한 서로 다른 일본인들 뿐이었다. 결국 그가 갖고 있던 정형화된 이미지는 무너졌고, 그 지점에서 그는 <해소>를 구상하게 된 것이다.

물론 작품의 구상으로서는 비교적 단순한 것이지만, 중국과 일본의 현 상황에 있어서 이러한 작품은 대단히 특별하게 느껴진다. 리닝은 (작품의 오프닝에서 보여주는 것처럼) 알맹이가 없고 폐쇄적인 중국의 민족주의를 비꼬는데, 그 시점은 아이다 마코토가 보여주는 일본 민족주의에 대한 풍자와 비슷하면서도 서로 다르다.

국가, 민족, 인종의 개념이 ‘해소’되고 개인의 지위가 향상되면, 개인은 두번 다시 ‘집단’에 휘말리지 않을 것이다.

유행하는 우스개소리중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어느 영어시험의 작문 주제가, ‘식량부족 문제에 대해 당신 개인의 견해를 기술하여라’였다. 아프리카의 학생은 작문을 하지 않고 되물었다. “식량이 뭐죠?” 미국의 학생도 되물었다. “부족이라는게 뭐죠?” 중국의 학생은 “개인의 견해가 뭐지?” 라고 했다는.
집단주의가 숭배되는 중국에서 개인의 개념은 교육시스템과 이데올로기, 관습에 의해 교묘하게 파괴된다. 이 중압적인 체제 아래서 살아가고 있는 아티스트로서, 리닝이 중국의 문화에 대해 반기를 드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그의 초기 작품은 그 구상이 비교적 단순하고 표면적이지만, 활동의 시간과 규모 등에서 제한이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보다 중요한 것은, 그의 주제가 집단의 와해이고 틀에 박힌 이미지와 범주화의 불식이기는 하나, 리서치와 창작의 방법론은 기본적으로 아직 범주화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그는 인터뷰의 대상자의 연령을 정하면서 그 개인이 그 연령대의 대표이기를 기대하고 있다. 예를 들어, “당신들 일본인은 이 문제를 어떻게 생각합니까?”, “너희 일본의 중학생들은 무엇을 좋아해?”와 같이 질문을 할 때, 대상자에게 그들이 속하는 그룹의 대표로서의 대답을 바라고 있는 것이다. 또한, 그 내용에는 명백한 유도질문들도 포함되어 있다. 이렇게 해서는 귀중한 개인과 개인의 진짜 교류가 불가능해지고 인터뷰는 표면적인 것에서 그치고 마는데, 이는 그의 작품 ‘해소’가 애초에 의도한 목적과는 모순되는 것이다. 시간 등의 제약이 없었더라면 리닝의 인터뷰는 더 질이 높고 깊이있는 것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사실 80년대 이후 중국의 아티스트는 개인을 부각시키고 집단을 와해시키려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문화대혁명에서 있었던 민중운동의 어두운 그림자가, 사람들의 마음을 아직도 뒤덮고 있다. 체제하의 주류 발언들에 의한 압력에 대한 반동으로, 최근 30년간 중국 현대예술은 사회적 책임, 예술의 정치화에 저항해 왔다. 리닝의 생각 또한, 기본적으로는 이러한 큰 흐름에 접해 있다. 이것은 서양에서 1968년 학생운동이 끼친 영향과도 유사하지만, 중국의 특수한 상황에 비추어 볼 때 이러한 류의 저항은 아직도 가치가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이번 r:ead 프로그램의 목적은 교류에 있다. 문화교류에서는 틀에 박힌 이미지로부터 벗어나 민족에 대한 편견을 던져 버리고 ‘개인과 개인’이 마주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첫걸음이 될 것이다. 개인간의 교류가 깊어져야 그제서야 점차 깊이 있는 사상이 생겨날 수 있다. 개혁개방정책이 시작된지 30년이 지났지만, 중국은 상대적으로는 여전히 폐쇄적인 국가다. 따라서 이번 r:ead는, 중국의 아티스트에게 있어서 매우 특별한 의미를 갖는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민주주의에 의해 역사는 반복된다II – 역사를 리셋하기

나는 레지던시의 두번째 체재기간에도, ‘민주주의에 의해 역사는 반복된다’는 테마를 이어나갔다. 왜냐하면 r:ead의 최종 발표일이 2013년 3월11일이었기 때문이다. 2011년의 그날, 일본의 일부 역사가 리셋되고, 많은 것들이 3월12일부터 새롭게 계획되고 평가되었다. 그리고 2012년 선거에서 아베씨가 두번째로 일본의 총리가 되었다. 5년전에, 즉 그가 총리였던 2007년 3월11일은 평범한 날이었다.

그래서 나는 2007년 3월11일자의 아사히신문, 마이니치신문, 요미우리신문, 니혼경제신문을 찾아 보았다. 그리고 그 신문들을 전시하고, 발표를 들으러 온 사람들이 낭독하도록 하는 두 파트로 나누어 발표를 진행했다. 이를 통해 2007년 3월11일이 반복되어 강조되고, 시대에 따른 차이가 하나둘씩 드러나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당시의 국제정치에서는 미국이 아직 부시정권이었고, 휴대전화는 지금과 비교해서 구식이었으며, 건설회사의 광고에는 아직 희망이 넘치고 있었다. 그리고, 종군위안부 문제의 결의안이 어떻다든가, 중국의 태도가 어떻다든가…

낭독을 듣고 있으면 일종의 향수를 느끼게 될 뿐만 아니라, 자신이 얼마나 많은 것들을 잊어버리고 있는가에 대해서 놀라게 된다. 우리들은 현재의 상황들을 판단할 때 자신의 기억이 완벽하다고 느끼기 십상이지만, 그것은 전혀 얼토당토 않은 것이다. 누구도 5년전의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기억하지 못할테니까.

2011년 3월11일, 일본의 어느 부분의 역사는 리셋되었지만, 이러한 종류의 리셋은 바로 예술을 하는 창작자들이 작품 안에서 시도하는 것이기도 하다. 작품을 통해 관람자를 새로운 계획과 평가가 이루어지는 상태로 이끌어가고, 창작자 자신도 매번 리셋되어 새로운 자료를 수집하고 다음 작업에 임하게 되는 것이다. 이번 레지던시를 통해 아티스트와 큐레이터는 어느 정도 리셋 되었다. 따라서 나는 각자의 다음 작품을 통해 야기될 대화들을 기대하고 있다.

정치를 초월한 역사의 실천을 향하여

나는 당초, 이 프로젝트가 목적으로 하는 ‘동아시아에서의 예술과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의 공유’가, 참가자들이 모국의 구체적인 상황과 대치함에 있어 어떠한 새로운 시점을 만들어내는지에 대해 흥미를 갖고 있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상호간에 복잡한 관계성을 갖는 동아시아의 역사와 정치가, 대화의 플랫폼에 어떠한 영향을 줄지에 대해서 약간의 염려도 있었다. ‘국가’라는 틀이 이 프로젝트가 의도하는 플랫폼 구축의 동기와 관계되어 있는 이상, 참가자들은 자신의 국적과 국가와의 관계에 대해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한 상황에서 개인의 주관이 ‘국가’의 그것과 동일시되면, 개인과 개인의 대화는 곧 국가간의 이해관계와 맞물리게 되거나 답이 없는 정의끼리의 부딪힘이 되어버릴 것이다. 그러나 참가자들은 지금 바로 그러한 충돌이 이곳저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가운데, 정치적인 역학관계에 휘말리지 않고 한사람의 문화생산자로서 무엇이 가능할 것인가를 신중하게 모색했다고 생각한다.

두 번으로 나누어진 체재에서는, 우선 자신들의 활동에 있어서 축이 되는 관심사와 문제들을 이야기했고, 다음으로 각자가 도쿄에서 실시한 리서치 내용을 영상과 프리젠테이션, 또는 식사 와 이동중의 대화 등 여러 방법과 상황을 통해 공유했다. 이 과정에서 흥미로웠던 것은, 짦은 체재기간을 통해 각자가 얻은 경험을 공유함으로써스스로의 일본에 대한 해석과 내적 반응을 상대화하고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장이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물론 일본에 거주하는 고이즈미와 나도 마찬가지였다. 그것에는 마지막 날의 프리젠테이션에서 김진주가 이야기 한 것처럼,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상대를 ‘얼마나 모르고 있는지’ 에 대한 인식을, 서로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경험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부연하자면, 내면화되어 있는 일본에 대한 언설과 감정을 스스로의 주관성으로부터 일단 떨쳐내고, 그것들이 자신의 정체성과 깊이 결부되어 있는 국가의 언설-역사와 애국심, 민주주의, 그 모든 것이 겹쳐져 만들어지는 배타성-과 얼마나 연결되어 있는가를 인식하는 계기가 된 것이 아닐까.

고이즈미는 리서치 기간에 영상을 이용해 한 가지 실험을 했다. 그것은 도쿄의 다양한 장소에서 일본의 전쟁의 역사에 대해 사람들을 인터뷰하고, 그것을 말하는 사람들의 입만을 촬영해서 모으는 작업이었다. 익명성을 유지함으로써, 각각의 기억에 있는 ‘역사’의 형태-이야기, 정보, 신조, 감정, 혹은 무관심과 무지와 같은 부재-가 있는 그대로 구술되는 모습이 포착되었다. 랜덤하게 말하는 입을 줄곧 바라보고 있는 중에, 역사란 무엇일까 라는 물음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국가간에는 영토문제로부터 교과서 문제에 이르기까지 역사를 둘러싼 치열한 부딪힘이 있고, 그것은 분명히 역사가 이 글로벌 시대에 있어서 국가라는 상상의 공동체를 유지하는데 필요한 중요한 도구가 되어 왔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개인의 시장주의적인 생활에 있어서 역사라는 과거와 대치해야 할 필연성은 거의 없다고 말해도 이상하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미디어를 통해 역사에 관계된 여러 언설이 만들어지고, 그중 일부는 직접적인 경험 없이도 개인에게서 타자에 대한 강한 증오와 배타성을 이끌어 내는 힘을 발휘하고 있다는 것도 간과할 수 없다.

고이즈미의 실험은, 이 레지던시 프로젝트가 앞으로 생각해 나가야 할 중요한 문제 한가지를 제시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동아시아에서의 예술과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의 공유’가, 앞으로 이 지역에 있어서의 연결고리를 만들어나가기 위해서, 예를 들어 국가간의 정치라는 영역을 넘어선 새로운 지성의 실천으로서의 역사를 위해, 타자와 자신의 언설과 주관성을 함께 검증할 수 있는 공간을 구축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동아시아 뿐만 아니라 세계가 더 유동적으로 변해갈 미래를 생각할 때, 타자와 자신의 내적인 교섭을 가능하게 하는 공간의 창조는, 이 프로젝트 뿐만 아니라 문화생산에 관계하는 이들이 생각해야만 하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이후

어떤 것에 대해 명확히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위험할 수 있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렇다. 장 뤽 고다르 감독의 영화 ‘필름 소셜리즘’에는 be동사를 쓰는 사람과는 말하지 않겠다고 have 동사를 선호하는 아이들이 등장하는데, 나 또한 레지던시 프로그램 동안 여러 가지 키워드를 두고 그것들에 대해, 혹은 일본에 대해 be동사의 언어로 단정짓지 않고 새로운 조합의 가능성으로 남겨 두기 위해 노력했다.

단어들
가장 큰 공간을 차지하고 있던 생각은 민주주의, 가상성, 익명, 마음의 코스프레, 오타쿠와 잉여, 파국(破局) 등이었다. 그 이유는 전에도 언급했듯이 대통령 선거와 마야력 멸망 이벤트 같은 작년 말의 상황들을 거치며 시스템에 대한 심각한 불신과 재고, 묘한 상상력이 있었던 한편, 남아도는 에너지 등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연구
처음엔 키워드를 염두하며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리서치를 진행했는데 인터뷰이로는 마쓰모토 하지메(松本哉), 오자와 야수오(小沢康夫), 아즈마 히로키(東浩紀), 안천(安天)씨가 있었다. 그 밖에도 겐론카페 이벤트에 참가하거나 공연을 보고, 도쿄 여기 저기를 어슬렁거리며 리서치를 했는데 진행을 하면 할수록 원래 가지고 있던 키워드들이 모두 분해되어 큰 쓸모가 없게 되었다(고 당시엔 생각했다.).

발표
작업을 하는 초기단계에 있었고 나조차 정리가 안 된 것을 과정 중에 공개함에 있어 어떠한 형식으로 풀어나가야 할 지 고민이 많았다. 심지어 프로그램을 위해 사전조사 했던 것들도 현지에 와서 상당 부분 와해된 상태였다. 궁여지책으로 일전에 겐론카페에 갔을 때 흥미롭게 보았던 이벤트에 착안해 퀴즈쇼의 형식으로 나의 질문들을 콜라쥬같이 늘어놓긴 했는데 그것이 어떠한 의미가 있었는진 솔직히 모르겠다.

이후
각각 1주와 3주의 레지던시 기간 동안 했던 것들이 이후 무엇이 될 수 있을지 당시엔 조금 모호해 보였으나 한국에 돌아온 후 몇몇 계기로 말미암아 따로따로 섬처럼 존재하던 아이디어들이 이제야 말이 되는 무언가가 되었다. 이를 바탕으로 현재 움직이지 않고 유목하는 여행사의 사업과 더불어 새로운 프로젝트를 함께 진행 중에 있다. r:ead 프로그램을 통해 나온 새 프로젝트에 대해선 따로 설명하지 않겠다. 언어보단 이미지를 제시하고 싶다. 퀴즈………?

만남을 통한 이해와 생각

2013년 3월, 2주간에 걸쳐 r:ead에 참가할 수 있었던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 평소 전시준비로 바쁜 나로서는 이번 레지던시가 대단히 얻기 힘든 기회였다. 소규모이지만 치밀하고 계획성 있는 이 레지던시 프로그램은, 그동안의 레지던시보다 훨씬 더 인상적인 ‘만남’의 기회와 실질적인 교류를 만들어냈다. 분명히 나는 현대미술 큐레이터라는 내 일의 특성과 지난 10년간의 경력때문에 아티스트나 다른 큐레이터와 만날 기회는 많지만, 장기간에 걸쳐 양질의 교류가 가능한 장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특히 일이 한 가지 방식으로 정형화되면 되기 시작하면 더욱 그렇다.

일반적으로 말해서, 큐레이터와 아티스트의 만남은 주로 작품에서 시작된다. 그러나 이번 레지던시 프로그램은, 그러한 ‘큐레이터 – 예술가 – 예술생산과정’이라는 모델을 의도적이고 계획적으로 반전시켰다. 그것은 내 자신에게 특별한 의의가 있었을 뿐만 아니라, 내가 지금 운영하는 대안공간(더 큐브 프로젝트 스페이스)의 실험과 발전의 방향과도 분명히 일치했다. 그것은 다시 말하자면, ‘어떻게 아티스트와 장기적으로 협력관계를 발전시킬 수 있을까’라는 모색이라고도 할 수 있다.

나와 라오 치아엔은, 이러한 기회를 제공해준 r:ead에 참가했다. 한국, 일본, 중국, 그리고 대만이라는 아시아 4개 지역의 ‘대화’가 이루어졌고, 기존의 지리적인 이해 및 근린 지역의 역사와 문화에 관한 지식의 교류 이외에도, 유일무이한 사람과 사람 간의 교류가 이루어진다는 느낌을 실감했다. 첫 대면을 거쳐 서서히 이해해 가는 과정에서는 대화와 토론을 통해 문화적 관점을 발전시킬 수 있었다. 이러한 관점들은 평소에 당연하게 생각하던 인식과 행위들에 대한 사고를 ‘활성화’ 시켜 주었다.

이러한 ‘대화’는, 현재 우리들의 일과 창작과정에서 가장 결여되어 있는 ‘실제 체험’을 상당히 보충해 주는 것이었다. 우리들은 2주간에 걸쳐 제2차 세계대전과 아시아의 냉전의 역사, 그리고 지역경제가 글로벌화되는 작금의 현실에 대해 다양한 관점에서 생각했다. 그 안에는 무수한 역사적 기억들이 포함되어 있기에, 우리들은 한 사람의 현대인 또는 생존하는 하나의 개체로서 바라보는 다양한 각도에서, 각각의 경험을 공유했다. 또한 이 특별한 기회를 통해, 소위 글로벌화시대에 ‘지구는 정말 국경을 초월해 평탄해졌는가’를 생각함으로써, 또 다른 세계관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었다.

라오가 도쿄에서 한 작업은 앞에서 언급한 경험과 사고에 대한 구체적인 반응으로도 느껴졌다. 일본의 역사와 민주주의에 대한 고찰을 통해, 그는 일종의 비선형적이기도 한 상호간의 연결과 대화의 방식으로, 프로젝트의 참가자들이 던진 물음에 마주했다. (3월11일의 최종 프리젠테이션에서 그는 참가자들에게 5년전 3월11일의 신문기사 중 하나를 선택해서 낭독하도록 함으로써, 그들의 역사관과 체험을 드러냈다.) 또한 이 방법을 통해 일본국적이 아닌 다른 참가자들도, 자신들의 민주주의에 관한 체험, 혹은 아시아의 다른 지역과의 관계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장이 만들어졌다. 라오가 행한 프로젝트의 테마는, 2012년의 총선거결과 및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사고 이후에 변화된 일본사회의 내재적 인식을 고찰함으로써 ‘민주’와 ‘역사의 반복’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었는데, 그러나 실제로 그것은 일본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더 폭넓게 현대사회가 직면하는 공동의 문제와 위기를 반영하는 것이었다. 즉, 우리들의 관계 또한 끊임없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볼 수 있었고, 과거의 역사 뿐 아니라, 오늘날 자본경제에 의해 우리들이 얼마나 상호의존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었다.

라오는 이번 작업에서 시각화된 소재(과거의 신문기사)를 늘어놓고 확장성을 동반하는 시간들을 구성하여 질문들을 자세히 풀어놓는 방식을 택했다. ‘민주주의에 의해 역사는 반복된다’가 고찰에 대한 하나의 결론이 됨과 동시에, 라오가 우리들에게 던진 질문, 즉, 다시 생각하도록 만드는 테마에 의해 참가자 각각이 그와 함께 고민하게 함으로써, 더 깊이 있는 사고와 반응을 이끌어냈다. 이 프리젠테이션에서 참가자들은 처음에 왜 과거의 신문을 보게 하는지 몰랐을 것이다. 그러나 순서대로 이루어진 낭독과 사고의 교환을 통해, 라오가 의도했던 다시 생각하는 공간이 인식되고 느껴졌을 것이다.

라오의 프로젝트는 ‘프롤로그’같은 것이기도 하다. 나는2주간 도쿄에서 벌인 토론과 교류를 통해, 동일본 대지진 이후 사회가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가를 잠재적으로 의식하면서 사고하게 되었다. 체류 중에 오사카와 교토, 요코하마를 짧게 다녀오면서도, ‘사회에 대한 적극적인 사고’가 일본에서 큰 폭으로 늘어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예를 들면, 고이즈미 메이로의 작업 또한 그렇다. 그리고 더 많은 젊은이들이 문화예술의 창조와 관련된 많은 사회적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이번 참가와 고찰을 통한 최대의 수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리드라는 이 레지던시 프로그램은 새로운 예술생산의 모델이 가지는 의의와 그것이 실천될 가능성을 나에게 제시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