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기념비적 수법에 따른 기념비 만드는 방법

본 사업 타이틀 r:ead(=residency, east, asia, dialogue)에서도 명확하게 알 수 있듯이, 이 프로그램은 동아시아라고 묶이는 한국、중국、대만、일본을 출자로 한 멤버의 「대화」와 「사고」를 위한 자리였다. 이 전제조건인 프레임을 얼마나 포지티브하게 받아들여, 거기에다 탈구축 할 수 있게 확장할 수 있는가에 대해, 일본팀으로 초청받은 시타미치 모토유키와 나는 강하게 의식하며 작업을 하였다. 다시말해, 최종적인 아웃 풋으로서의 큰 글자의 작품을 이 레지던스에서 만들어 내는 것을 목표로 하지 않고, 그 몇 발자국 앞에 있는 하나의 방향으로 사정을 정하기까지의 프로세스를 어떻게 연결 할 것인가를 의식하고, 사람들과 대화의 장에서 적극적으로 즐기며, 불완전하고 단편적인 것을 억지로 눈에 띄이게 하는 것에 주목하였다. 모뉴멘털(=상징적)인 「작품」이라는 형태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논의와 사고의 과정을 투명화하여 공개해 나가는 것을 바람직스럽게 여기는 것은 굉장히 드문 현장이다. 그것으로 인해, 직접「동아시아」라는 것이 주제가 안되더라도, 이러한 장소 그 자체가 r:ead라는 프로그램을 지지하는 골격이 되고 있다고 말 할 수 있다.
단지, 일주일간의 참가였었기에 결과적으로는 프레젠테이션이라는 아웃 풋을 향해 집중해야하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반드시 충분한 시간이었다고는 말 할 수 없으나, 대화와 사고를 위한 장소를 준비해주었기에, 거기에 응하는 방법으로서 새로운 방향으로의 키를 정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는 몇가지의 반모뉴멘털(=비기념비적) 적인 단편을 발견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우리들은 최종적으로 『「부재」의 형태─모뉴멘트 재고(再考)』라는 타이틀로, 얼터너티브적인 모뉴멘트(=기념비적 존재)라고 정의 할 수 있는 물건들을 수집한 아이디어 스크랩북을 제작하였다. 누구라도 한 눈에 인식 할 수 있는 모든 모뉴멘트에서는 벗어나지만, 다른 지점에서 그 존재를 바라보면 상징성이나 기념비적 성격을 볼 수 있는 것이나, 혹은 어떤 대상자에게 있어서는 기억을 건드릴 수 있는 것 등, 한번 보면 명확한 윤곽선을 가지고 있지 않은 측면에서는 기념비성을 가진 존재를 광의로 「모뉴멘트」로 받아들이고, 조금 벗어난 관점을 제시한 것이다.

여기에서, 「모뉴멘트」나 「모뉴멘털」이라는 말에 대해서 조금 설명하고 싶다.
모뉴멘트는,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인 사건이나 인물을 공공적, 영구적으로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진 공작물 혹은 건조물. 또한 문화재 관계의 용어로서는 유적지에 대해, 지상에 세워진 모든 건조물, 기념물을 포함한 모뉴멘트이다.」
(브리타니카국제백과사전)이라고 한다. 조금 더 간략하게 말하자면「기념건조물. 기념비・기념상 등. 유적, 불공의 업적, 금자탑」(일본국어사전)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원천적인 의미를 조금 확대 해석해서, 기념비성이나 상징성을 만들어내는 우리들 인간의 행위에 착목하여, 형태를 가지지 않는 「행위」등을 기억으로 새긴 기념비(=모뉴멘트)로서 정의하려고 하는 시도이다. 강고한 물질으로서의 모뉴멘트가 아니라, 부드러운 행위나 기억을 남기는 조그마한, 근처에 있을 법한 당연한 존재. 바꾸어 말하자면, 어떤 특정한 관점을 부여함으로서 기념비성을 획득하는 반모뉴멘털(=비기념비적)인 모뉴멘트의 탐구를 시도한 것이다. 작품이란 것은 원래 기념비적(혹은 상징적)인 존재이지만, 그 기념비까지 이어지는 프로세스에 따라 자각적으로 된다는 것이다.

이번 우리들이 탐구한 것은 비기념비적(=반모뉴멘털)인 기념비(=모뉴멘트)
라는 언뜻 보면 모순된 것이다. 작품을 제작발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작품이라는 기념비로까지 이어지는 과정을 현재화(現在化)하는 것, 그리고 불특정다수의, 말하자면 「모두」를 향한 것이 아니라, 조금 더 특정한, 명확한 대상에게 울려퍼지는 모뉴멘트의 형태를 탐구하는 것이다. 그러한 모뉴멘트를「상온의」「부드러운」「형태가 없는」이라고 하는 대강의 모뉴멘트와는 떨어진 이미지를 부여하는 말로 변용하는 것으로, 형태가 아니라 상태나 행위에 중점을 두어, 별도의 각도에서 기념비성이나 상징성을 고찰하였다. 강고한 물질성이나 절대적인 존재감이라는 모뉴멘트의 기존의 이미지를 표상으로하는 특징과는 장반대인 「부재」가 가지는 상징성을 탐구한다고 말해도 좋을 것 같다. 절대적인 형태나 존재가 아닌, 생성변화하는 「부재의 재(在)」 혹은 「부재의 형태」를 추구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시타미치가 지금까지 만들어 온 작품군을 돌이켜보고자 한다. 제2차세계대전까지 일본 안에서 만들어진 전쟁을 위한 건조물인 토치카나 엄폐호, 포대터 등 수년간 후의 현재의 모습을 풍경으로 찍은 사진시리즈《전쟁의 형태》(fig.1), 그리고 현재 일본의 국경선 밖에 남겨진 토리이의 모습을 찍은 《torii》(fig.2)의 시리즈 등이 있다. 예를들어, 《전쟁의 형태》에 등장하는 기능을 박탈당한 전쟁유구가 매몰되어 있는 현재의 풍경은, 시간의 경과와 함께 전쟁을 경험 한 세대가 떠나, 많은 사람의 의식에서 지워지려고 하는 전쟁의 기억을 불러들이고, 《torii》는 토리이가 있었던 장소에는 이전 일본인의 생활이 있었던 것을 말한다. 어느 쪽도 본래의 의미나 형태의 일부가 소실 됨으로 인해, 그 당시의 것을 상기시키는 소프트적인 기념비(=모뉴멘트)로서 기능하는 것을 찍은 풍경이다. 또한 시타미치로 인해 잊혀져간 존재를 사진이란 단면을 통해 모뉴멘트화 되는 행위이기도 하다. 어떤 목적을 위해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세월이 흐름과 동시에 그 기능을 소실하고, 존재 이유를 보류해 둔 형태로 풍경 안에 남겨졌다. 이것들은 보존이라는 명목에 의해 울타리로 둘러쳐지면, 전형적인 모뉴멘트로 변모한다. 시타미치는 그러한 획일적인 사고정지에 빠지게 하는 모뉴멘트화에 대해서 의문을 가지고, 반대로 그대로의 현재의 풍경을 부감적으로 취해, 사진으로서 수집하는 행위로 인해, 소프트한 모뉴멘트화를 계획했다.

fig.1《戦争のかたち》
fig1_戦争のかたち
Courtesy of Motoyuki Shitamichi

fig.2《torii》
fig2_torii_NewTaichungTaiwan
Courtesy of Motoyuki Shitamichi

또한, 포대터에서 불꽃을 쏘거나, 토치카를 일시적으로 불법거주하는 방법으로 전쟁유구의 재이용계획을 만들어 낸《Re-Fort Project》(fig.3)는, 누구도 그 존재에 눈길을 두지 않는 조용히 배회하는 유구에, 유희적인 방법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끌어, 이전에 있었던 전쟁에 대한 기억을 두루 생각하게 하는 장소로 만들어낸다. 어떤 행위를 함에 있어서 유구의 기능을 일시적으로 선명하게 변환시키고, 동시에 그 유구군을 사람에게 메시지나 역사를 전하는 모뉴멘트로 소프트하게 변환시킨다.
또 한편으로, 지진으로 생긴 재해 후, 바이크를 타고 일본 전국을 일주하는 여행에서 찍은 논두렁길에 있는 한 장의 나무판이나, 단차를 해소하기 위해 쌓아 올린 콘크리트 블록 등, 어디에도 존재하는 주변의 최소한의 요소에 의해, 필요에 따라 만들어진 여기저기를 연결시키는 극소한 것이 「다리」라고 규정하고, 그것을 스냅으로 수집한《bridge》(fig.4) 시리즈가 있다. 이것들은 많은 사람이 그냥 지나쳐 버리는 당연한 것으로, 동시에 우연히 만들어진 것이기에, 다음날이면 없어져 버릴 수 있는 덧없는, 이거야 말로 이른바 모뉴멘트와는 정반대적인 존재이다. 어떤 시대, 어떤 장소에도 존재하는 어떤 종류의 보편성을 가지고 있는 덧없음이나, 그것들을 생성한 누군가가 가지는 무의식의 창조성이나 미의식을 가지고 정착시키는 것으로, 역시 소프트한 방법으로 모뉴멘트화 시켰다.

fig.3《Re-Fort Proje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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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3-2_Re-Fort5
Courtesy of Motoyuki Shitamichi

fig.4《bridge》
fig4_bridge1103161751
Courtesy of Motoyuki Shitamichi

이 외에도 설국의 길 이 안보이는 장소를 사람들이 걸어가면서 남긴 발자국으로 인해 새로이 만들어진 길을 찍은 《crossover》등도, 눈에 찍힌 발자국이라는 수시간 후에 없어지고 마는 「형태」를 정착시키는 행위로, 이것도 시타미치 다운 모뉴멘트화라고 말 할 수 있다. 다시말해, 시타미치는 본질적인 반모뉴멘털(=비기념비적인)적인 존재로 망각되어 진 것이나, 형태가 지워져가고 마는 부재에 형태를 부여하는 것처럼, 소프트한 모뉴멘트를 작품화에 따라 계속해서 생성해 내고 있는 것이다.
이 연장 선상에서, 「부재」그 자체의 본연의 자세를 탐구하는, 보다 의식적인 반모뉴멘털적인 모뉴멘트를 생성하는 과정을 r:ead라는 대화의 테이블에 가지고 옴으로 인해, 공유나 단절을 통해, 새로운 방법론을 획득하는 것을 시도한 것이, 본 프로젝트의 프레임에 대한 하나의 해답이라고 말 할 수 있다.
최종 프레젠테이션에 게스트로서 참가한 미디어 비평가인 카츠라 에시시(桂英史)
씨는 「모뉴멘트는 반드시 장소 특수성(Site-specific)이다」라고 간략하게 말했다. 원래 시타미치와 내가 지금까지 관계해 온 것은, 각자 직업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장소 특수성/모뉴멘트와는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것으로, 카츠라씨의 발언은 사후적으로 우리들의 활동에 한가지 보조선을 부여해 주었다.

다음으로 본인의 지금까지의 활동에 대해 조금 언급하고자 한다. 나의 거점은 아티스트.인.레지던스를 주 사업으로 하고 있는 작은 기관으로, 그 성질(性質)적으로도 많은 사람보다는, 필요성을 느끼는 사람을 향한 것을 탐구해 왔다. 레지던스에서는 최종적인 전람회나 완성된 작품을 기념비(모뉴멘트)로서 생성하기 보다는, 거기까지 이르는 과정을 얼마나 경험하는 가를 중시하고 있다고 믿기 때문에, 그 경로의 보다 좋은 설계를 계속해서 생각해 왔다. 커다란 규모로 하나의 명해한 것을 생성해 내는 것 뿐인 것에는 왠지모르게 위화감이나 회의를 가지고 있었던 것 뿐 만 아니라, 제한 된 조건 안에서 별도의 길이나 방법을 만들어내는 것, 다시말해, 제약 안에서「얼터너티브」한 길을 모색하는 방향으로 계속해서 관심을 가지고 있었기에, 필연적으로 소위 기념비적인 것인 아닌 방법으로, 형태를 부여하는 것을 실천해 오고 있다.
또한, 지금까지 약 10년가까이 야마쿠치나 아오모리라는 작은 지방도시를 거점으로 활동해 왔지만, 왜 그런 선택을 해 왔는가에 대해 이번 r:ead를 통해 자신 안에서 조금 클리어 되는 부분이 있어, 여기에서 그것에 관해 조금 이야기 하고자 한다. 원래, 지금에 이르기까지의 계기는 건축을 전공한 대학원시절에 바르셀로나에서 1년간 생활 한 것에 있다. 거기에서 가장 인상에 남았던 것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가치관이었다. 역사있는 도시이지만, 현재의 지정학상은 유럽 주변의 토지라고 밖에 말 할 수 없는 도시에서 「주변」이기에 가질 수 있는 평온한 모습과 다양성을 알게 되었다. 신자유주의적 사고와는 확실하게 거리를 두고, 경제활동이나 편리성이 아닌, 그 장소다운 생활을 영위해 가는 것에 대한 사람들의 강한 의식이 굉장히 신선했다. 시간에 대한 감각도, 어딘가 주관적이며 시계의 시간에 얽매이지 않는 감각이 매우 흥미로웠다. 확실하게 다른 가치관이었다. 이 경험을 계기로, 일본에 있어서 전후의 자본주의경제를 기초로 하는 체계 안에서는, 주변과 서열을 정하게 되는 지방도시의 존재나 가능성을 의식하게 되었다. 그 결과, 본주(本州)의 양극 토지에서 10년간 자신의 신체와 생활의 거점을 두고, 예술을 기점으로 지방이라는 문제와 가능성을 탐구하게 되었다. 그것은, 큰 이야기가 아니라, 작은 수맥을 발견하고 연결하려고 하는 시도였다. 그리고 약하지만, 여러가지것에 대해 다양성과 복잡성이라는 가치로 판단하고 싶다고 생각해왔다.

이 배경에는 「비판적 지역주의(=Critical regionalism)」 라는 생각의 영향이 있다. 이 표현은 1980년대 건축이론가인 알렉산더 초니스와 리안느 루페부루가 처음으로 표제하고, 그들과는 조금 다른 용법으로 건축사가(史家)인 케네스 프램톤이 사용한 건축론을 전개한 것으로 널리 퍼져, 근년에는 가야트리 스피박과 구디스 버틀러가 문화연구나 정치이론에도 채용하고 있다. 프램톤은 현대문명을 긍정하고 모더니즘 건축이 가지는 보편적・진보적 특질을 비판적인 시점을 가진 상태에서 받아들이고, 동시에 그 건축의 지리적 문맥에 가치를 두어야 한다고 했다. 건축에 있어서의 무특정 장소나 장소의 아이덴티티의 결여를, 시각만이 아니라 촉각이나 청각등 신체감각에 종합적으로 호소하는 것으로 지역적 특색을 부여, 저항의 건축으로서 독자적 존재가 성립한다고 제창한다. 물론 현재의 사회에 프램톤의 이 사고는 단순하게 적용하는 것은 너무나도 안이 할 수 있지만, 글로버리제이션의 진행과 다양한 격차 문제가 분출하고 있는 현재에 있어서, 그러한 커다란 흐름에 부주의하게 휩쓸리지 않기 위한 「저항」의 수단으로서 개별로 이 사고법을 적용하는 것은 유효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신화적인 하나의 큰 이야기를 그리는 것으로 가치를 끄집어 낼 수 없게 된 현상에 있어서, 먼저 자신의 발 밑부터 수정하여, 각각의 토지가 가지고 있는 작은 가능성을 끄집어 내어, 정보 환경의 발전과 함께 어떤 장소나 사람과도 비교적 용이하게 다이렉트로 연결되는 것을 인식하는 것으로, 적절한 장소로의 그 가능성을 접속해가는 것이 될 것이다. 다시말해, 별도의 장소, 별도의 가능성으로의 접속법을 만들어 내는 것으로, 단순하게 현상을 한탄하며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저항의 수단으로서 얼터너티브를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것을 큰 기념비적인 구제와 같은 것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작아도 여러가지 방향성을 가진 자발적인 내발(内発)적인 활동으로서 탐구해가고 싶다고 생각한다.

여기에서, 작년 큐레이터로 관계한 토와다오이라세(十和田奥入瀬)예술제 를 조금 소개하고 싶다. 이 예술제는, 예술제라고 부르기에는 아주 작은 규모와 예산으로, 인구 6만명 정도의 작은 지방 소도시인 토와다시에서 개최한 것이다. 장소는 크게 두군데로 나뉘어, 한군데가 토와다시 중심가에 위치한 토와다시 현대미술관, 그리고 또 한군데는 중심가에서 차로 30분정도의 거리에 있는 토와다시 주변의 오이라세・토와다호(湖) 지역이다. 토와다시 중심가에서는 현대미술관이 오픈해 방문자 수가 매년 증가하고 있지만, 한편, 80년대 관광지로서 번영했던 오이라세나 토와다호 주변은 관광산업이 크게 쇠퇴하여, 취업인구도 줄어들고 있는 심각한 상황이었다. 토와다시 내에서도 중심과 주변은 큰 격차를 보이고 있는 현상이다. 예술제에서는 쇠퇴하고만 시 주변부에 활기를 불어넣으려는 의도도 있어, 미술관 뿐 만아니라, 오이라세 지역 일체를 개최장소로 했다. 오이라세나 토와다호에는 아주 아름다운 풍경이 있고, 그것은 관광산업이 얼마나 쇠퇴하던지 상관없는 재산이다. 그리고 이 자연도 실은 인간이 관계하는 것으로 유지되고 있는 풍경이며, 자연이란 어떠한 상태를 말하는가에 대해서도 생각하게끔 한다. 단, 어떤 자원을 가지고 있던, 결국 그것을 누구를 향해 어떻게 어필 할 것인가가 어느정도 해결되지 않으면, 그 가치는 전달되지 않는다. 버블 붕괴 후에, 기업의 위안여행이나 여행대리점이 만든 단체패키지여행의 유행이 사라지자, 현재와 같은 보다 적은 단위(개인이나 가족, 친구)로 여행이 주류가 된 상황에 대해서도, 결국 단체여행에 대응했던 관광지의 모습 밖에 제시하지 못했던 이 지역이 쇠퇴한 것은 필연이라고 말 할 수 있다. 존재하지 못하게 된 대상을 향해서 발신해도, 그것은 전달되지 않는다.
그러한 배경을 고려하며 수단도 없이 넓은 이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보인 것은 몇가지의 모뉴멘트였다. 토와다호반에 세워진 타카무라 코우타로우(高村光太郎)에 의한 《처녀의 상(像)》, 오이라세지역에 다수 존재하는 오오마치 케이게츠(大町桂
月)에 의한 시비(句碑)등의 기념비군, 혹은 토와다신사 등의 건조물이나, 《궁중의 폭포》와 같은 이름을 부여받은 오이라세 계류를 따라서 폭포나 강, 바위 등의 명소가 그것이다. 이것들이 토와다오이라세의 겉쪽의 아름다운 역사를 나타내는 정(正)의 모뉴멘트라고 한다면, 그 뒷면에는 폐업한 무수의 여관이나 호텔군 등의 부(負)의 모뉴멘트가 존재한다. 통상의 관광여행에서는 정의 모뉴멘트 만이 사람 눈에 담기고, 부의 모뉴멘트는 덮어 숨긴다. 그러나, 이 부의 모뉴멘트야 말로, 지방도시가 더듬어 온 역사나, 왜 현재의 상황에 빠지고 말았는가를 나타내는 여러가지 힌트가 숨어 있음에 틀림없다. 그라운드 제로나 아우슈비츠, 혹은 체르노빌 등 재해 피해 적지(跡地)나 전쟁 적지 등을 돌아보는, 인류의 죽음이나 슬픔을 대상으로 한 투어를「다크 투어리즘」이라고 하는데, 이러한 역사적인 비극이나 부의 역사를 경험하는 것으로 인해, 이해되는 것은 다수 있다고 생각한다. 최근에는 아즈마 히로키(東浩紀) 등에 의해 후쿠시마 제일 원자력발전소 관광지화 계획 등에 대한 비판도 있지만, 다크 투어리즘에 의한 후쿠시마라는 부의 유산으로서 라벨이 붙는 장소를 부흥시켜 가는 하나의 가능성과 비평성을 갖춘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예술제에 참가한 PortB를 주군하고 있는 타카야마 아키라(高山明)는 Port관광리서치센터라는 단체를 실제로 일반사단법인으로 설립하고, 그 리서치활동의 일환으로서 토와다오이라세에서 관광에 얽힌 언론 이벤트를 개최, 다음 날에는 그 다큐멘트 영상을 이벤트를 실시하고 있는 같은 장소, 같은시간에 전시작품으로 상영했다.
오이라세 지역과 같이 단체여행의 감소와 함께 쇠퇴하게 된 관광지는 일본전국에 많이 있을 것이다. 그러한 토지에 아트작품이라는 새로운 모뉴멘트를 다수 설치해서, 그것을 순례하는 여행의 형태는 에치고츠마리(越後妻有)나 세토우치(瀬戸内)등에서 이미 시도하여 많은 관광객을 획득해, 예술로 인한 지역이나 관광의 재흥(再興)이라는 일종의 성공모델로서 이야기 되고 있다. 그러나 토와다오이라세에 있어서는, 거기에 있는 역사나 부(負)의 경험을 새로운 모뉴멘트로 뒤엎는, 위에서 언급한 방법이 아니라, 현상을 긍정하는 것 부터 시작하고 싶었다. 이미 있는 부의 모뉴멘트를 어떠한 형태로 재생하고, 정(正)의 모뉴멘트와 함께 공개하는 것으로, 그 토지의 보기 좋은 표면만이 아니라 뒷면에 있는 현재의 곤란도 포함해서 보여주려는 방법을 모색해, 이른바 순례 기념비로서의 아트작품의 설치를 배제한 것이, 토와다오이라세예술제이었다. 물론 그 이념과는 정반대로, 실현되지 못했던 것이 많이 있다. 그러나, 그 토지나 건물 등의 역사에서 눈을 돌리는 일 없이, 그것들이 발하는 조그마한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으로, 보여지는 지역의 미래라는 것도 있지 않는가라고 생각하고 있다.
사운드 아티스트 우메다 테츠야(梅田哲也), 퍼포먼스유니트 콘탁트곤조(コンタクトゴンゾ), 그리고 사진가 시가리에코(志賀理江子), 3명의 아티스트가 6개월 동안 협동하여 만들어 낸, 수년 전에 휴업한 호텔 건물 자체를 작품화 한《수산보양소》
(fig.5)는, 이러한 예술제의 태도를 상징하는 반모뉴멘털(비기념비적)인 모뉴멘트였다. 이 작품은 반폐허가 된 호텔을 아티스트가 철저하게 청소하고, 불필요한 것을 없애는 것을 기본으로 하였다. 「뺄셈의 방법으로 만들다」라고 표현하고 있지만, 작품스러운거나 오브젝트와 같은 것을 첨가하는 것을 피하고, 물의 흐름을 바꾸거나, 빛을 유도하는 정도의 방법으로 기능을 잃은 건축을 조금씩 주변 환경에 가깝게 하는 작업을 실시했다. 극단적으로 요소를 빼앗겨버린 호텔 내부를 돌아보면, 조용히 떨어지는 물소리가 들리고, 날씨가 좋은 날은 여러가지의 빛이 들어오고, 불온한 공기를 느끼기도 하지만, 상쾌한 바람을 맞이하기도 한다. 인공과 자연의 중간에 있는 듯한 불가사이한 상태에서, 폐허나 유적처럼 느끼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버블기 호텔의 모습도 울타리의 틈으로 보이는, 불가사이한 장소의 경험이다. 무대의 클라이막스와 같이 상징적이며, 누구라도 부풀어오르는 상황은 떨어지지 않고, 조금씩 사소한 변화만이 연속된다. 거대한 스펙타클을 철저하게 배제한 공간은, 어떤 종류의 패럴렐 월즈를 경험하는 감각과도 가깝다. 일체 아무것도 없는 것 같지만, 거기에는 신경을 예민하게 하면 보이는, 들리는, 냄새나는, 사소하면서 풍부한 경험이 있다. 스펙타클한 모뉴멘트가 아니라, 비스펙타클하며 사소한 경험을 생성한다. 명확하며 거대한 형태는 아니지만, 눈을 돌리려는, 귀를 기울이려는 사람에게는 풍부하게 울리고, 그 경험을 기억에 새기는 얼터너티브하며 반모뉴멘털적인 모뉴멘트이다. 특가품이 되는 옥외조각과 같은 이른바 기념비적인 모뉴멘트를 설치하는 것이 아니라, 오이라세라는 지역에 흐르는 시간이나 펼쳐진 공간을 반모뉴멘털적인 작품군을 통해서 경험하는 것이, 지방도시에서의 이 예술제의 시도이었다.

fig.5 수산보양소》

Courtesy of the artists, Taketoshi Watanabe and Towada Art Center

이러한 경험 위에, 나와는 다른 각도에서 「모뉴멘트」의 모습을 창작활동을 통해 탐구해 온 시타미치 모토유키와 같이, 대화와 사고를 위한 r:ead라는 장소에서, 기념비적인 작품만들기가 아닌, 현상을 철저하게 공유하는 것으로 새로운 전개의 가능성을 모색했다. 서로가 35세라는 연령에 달해, 지금까지의 약10년을 돌이켜보면서, 앞으로 향해 가기 위한 충분한 자극을 주는 이웃 사람들과의 시간은 정말로 귀중했다. 시타미치의 말을 빌리면 「미래에 개봉되어야 하는」 새로운 모뉴멘트의 모습을 탐구해 왔다. 무언가 커다란 결과를 이 자리에서 만들어내기 보다는, 그 사고 과정을 일단 쏟아내는 것에 집중했다. 아직 확신을 가지지 못한 부화 한지 얼마 안된 여린 아이디어를, 감히 프로페셔널한 이웃사람들에게 좌우간 주저하지 않고 개시하는 것으로, 헤매거나 위화감, 이상함 마저도 공유하면서, 새로운 길을 계속해서 찾았다. 작품이나 전람회와 같이 고결하게 결정화된 것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그렇지 않은 「확실하지 않은」것이나 모뉴멘트적인 상태에 다다르지 않은 것을 개시하는 것에 대해 논의하는 것을 요구받는 것은 굉장히 자극적인 경험이었다. 안이하게 이해될 수 있다고 생각되어지는 결과 만이 요구되어지는 현재 사회에 있어서, 그렇지 않은 시행착오나 불가능한 것, 실패까지도 긍정적일 수 있는 작은 저항의 장소를 더욱 공(公)이 만들어야만 한다. 분쟁 등은 서로가 향하고 있는 것이 조금 다른 것이나, 사소한 사항의 불이해가 계기가 되어 일어난다. r:ead와 같은 자리에서 큰 총의나 신화적 감동을 생성하는 것이 아니기에, 언뜻 봐서 불모라고 생각 할 수 도 있지만, 이러한 작은 저항의 현장이야 말로, 각 문제에 대한 다른 해결법을 제시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려있을 수 있다. 아티스트・인・레지던스라는 것은 원래 그러한 창작 프로세스에 의식적으로 되기 위한 반모뉴멘털적인 장소이다. 그 프로세스에 최대한의 가치를 두는 이러한 자리가, 제일 순화된 얼터너티브적인 아티스트・인・레지던스의 방법으로서 여러군데에서 각각의 방법으로 구축하여 발전해 가기를 간절히 바란다.

얽힌 실을 조금 풀어보려고 한다

r:ead는 기본적으로 전시회장이 아니기에, 완성된 작품을 타인에게 보여 줄 필요도 없다. 이것은 작가에게 있어서 「체제기간 중, 억지로 작품을 만들어 보여 줄」필요가 없이, 각자가 실험하는 것에 있어서는 굉장히 흥미로운 기획이었다.(반대로, 억지로 제작하는 과정에 있어서 생겨나는 것도 있지만)
통상 레지던스 체재제작의 경우, 어떤 테마가 정해져 있고 수년 혹은 수개월 에 걸쳐, 그 장소에서 리서치나 필드워크를 통해 토지나 장소의 특성을 이해하면서, 그곳에서 전시하는 경우가 많다. 단기간에 작품의 완성을 요구하면서, 언제나 자신이 해오던 수법과 연결지어 제작하는 경우를 말한다. 이 기획의 경우, 공유할 수 있는 테마를 발견하기 위해 투어가 이루어지거나, 자신들이 여행을 기획 할 수도 있다. 단, 4주간이라는 짧은 시간이다. 대화를 하는 곳은 교실 같은 곳. 공유하는 많은 시간은 여기에서 보내도록 설정되어 있다. 좋든 싫든, 교실안에 있을때에는, 여기가 일본의 동경이라고 의식하는 경우가 별로 없다. 대화는 교실안에서 책상을 원형으로 셋팅하고, 한, 중, 일, 대만의 작은서미트와 같은 분위기.
처음에는 나 자신도, 눈앞에 있는 그들도, 각국의 대표자로서 모여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천천히 한사람 한사람 마음 속에 각자가 복잡하게 뒤얽힌 세계를, 다른 방법으로 배우거나 느끼고 자라 온 동시대의 개인 개인이 그곳에 있는 것 뿐이다, 라고 느껴지게 된다. 한, 중, 일, 대만은 4면이 아니라, 언제나 다면체(多面体).
마지막날 다 같이 식사를 하러간 이케부쿠로의 중화「연변」요리는, 북한의 국경 근처에 있는 중국북동부의 조선족이 많이 살고 있는 지역. 중화요리집 이지만, 매운 양고기에 “가벼운 안주”로 김치나 땅콩이 나오는, 중국, 한국 어디든지 혹은 그렇지 않은 부분을 가지고 있다. 맛도 그렇지만, 사람도 다면(多面)적으로 깊이가 있는 그러데이션 안에 있다.

이 기획의 특별한 포인트로서는, 한, 중, 일, 대만 사람이 모여 있지만, 각 집단에서 조금 떨어진 장소에서, 한사람 한사람의 작가가 마주보고 이야기하고 생각하는 장소, 일 수 도 있다.
예를들자면, 여행지에서 우연히 만난 사람들이 국경을 넘어서 성장이나 일,가족에 대해 이야기하고, 각자의 생활이나 놓여있는 상황의 다른 점에 대해 느끼면서 한때 시간을 공유하고 헤어지는, 그런 경험. 얼마 전, 우연히 비행기 안에서 영화「로스트인트렌스레이션」을 보고 생각난게 있다. 어떤 만남이, 각각의 생활권이 아닌, 서로에게 있어서「어디도 아닌 장소」에서 일어나는 해프닝성(性). 이 r:ead는, 그런 장소일 수 도 있다. 그리고 그런 장소이기에 입장을 넘어서서 만나고, 한사람의 인간으로서 각자의 차이점을 받아들이면서 접근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이번에 나는 작가들과 될 수 있는 한 같이 먹고, 술을 마시며 여러가지 이야기를 했다. 물론 그것은 의무감이 아니고 그냥 좋아서이다. 언제나 그렇듯이 갑작이 자신의 제작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작품을 요구하지 않는 이러한 기회이기에, 만남에서 무언가가 생성하는 타이밍을 기다리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특히, 슌순(孫遜/중국인작가)과는 밤마다 미팅이라는 빌미로 빈번히 술을 마셨다. 마치 자취하는 대학생처럼 서로 웃으며 아주 재밌는 시간이었다.
마지막날 우리들의 프레젠테이션이 끝난 후, 슌순은 그 감상으로서 오래된 중국의 시를 우리들에게 읽어주었다. 그것은 진자앙《등유주태가(登幽州台歌)》라는 것으로, 「하늘과 땅을 눈앞에 두고, 사람은 자신이 가지고있는 존재나 시간의 작음을 느낀다」라는 슬픈 시. 중국 당나라때 만들어진 시로, 이번 r:ead에서의 한달간의 교류를 생각하게 한 멋진 시였다. 최종 공개프레젠테이션 장소에서 일어난 갑작스러운 시낭독으로, 그 장소가 조금 떠들석 해졌다. 다음 날, 나는 그가 읽어준 시에 대한 답으로 동물사진가인 호시노미치오(星野道夫)씨의 엣세이「또 다른 시간」을, 교실에서 모두 앞에서 읽어주었다.「대자연을 앞에 두고 감동받았을때 사람이 남기는 것은, 자신이 바뀌는 것이다」라는 문장. 낭독은 첫 경험.

이번에 같이 페어를 한 큐레이터 핫토리(服部)씨는, 아티스트인레지던스에서 10년정도 일을하고 더욱이 스스로가 작은 공간도 운영하며, 작가와 공동작업이나 체제제작의 노하우와 의문을 하지고 있는 사람으로서, 이번 r:ead에 추천을 한것은 적임이었다. 그와는 둘이서 몇군데의 장소를 방문하며, 자신들의 과거뿐만 아니라, 각자의 미래에 대해서도 이야기 할 수 있었다.
나는, 작년말에 6년에 걸쳐서 해오던 시리즈가 막 끝난 상태로, 자신이 제작해 오던 소재나 수법, 테마에 대해 의심을 품으며, 새로운 도전을 해보고 싶다고 생각하던 찰나였다. 여기에서 내가 얻은 것은, 우연히 누군가와의 대화 안에서나, 지금부터 시작하는 몇개의 프로젝트 기획회의, 여기저기에서 시작되고 있지만, 얻은 것을 눈에 보이는 형태로 만들고, 의심없는 말로 발신하기 위해서 조금 더 시간이 걸리것 같다.
이 기획에 의해, 가장 성과가 나타나는 장소는 아마도 참가자 각자의 내면의 변화이지 싶다. 그것을 외부의 사람이 볼 수 있는 장소/때는 조금 미래의 것일 수 도 있다. 그리고 여기서 말하는 참가자라는 것은 작가 그리고 큐레이터 뿐만아니라, 통역가, 스탭, 디렉터, 이 기획(대화)의 모든 장소에 있던 사람들이다.

어떤 기획이라도 기획자나 지원자(국가나 지역, 기업)등의 제한 혹은 컨트롤은 발생하고, 그것을 인지하고 참가하지 않으면 스스로가 그 일부로 휩쓸리고 만다. r:ead는 “제작환경”으로서의 레지던스임에 틀림없다. 단, 모든 말은 우선 일본어로 통역되는 시스템이나, 이 “동아시아”라는 말처럼 대동아내제국주의적(서구중심으로의 반사로서의 제국주의)인가 라거, 처음부터 스스로가 몇번이나 의문을 품은 것은 사실이다. 단, 이r:ead는 어디에도 없는 떠다니는 배와 같은 장소로, 존재하는 가능성을 많이 가지고 있다. 조타수를 참가자 전원의 대화에서 정하는 것도 재밌다. 아직 시작한지 얼마안되기는 하지만.
이러한 기획이 계속 진행되는 것, 더욱 발전된 형태로 변화해 가는 것, 예를들어 이러한 기획이 이웃나라에서 같이 개최되어 일본인이 참가하는 것, 그러한 것이 계속 축적되어 가는 것으로, 이웃나라 사람들과의 관계성이 부정이나 배제가 아니라 존중을 베이스로 한 관계가 축적되어 갈 수 있을 것이다. 이 교류의 형태를 발전시키기 위한 하나의 과정으로서 내가 여기에 참가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라고도 느낀다.

오늘에는 복잡한 국가 간의 상황이 있다. 정부나 미디어에 의해 국민의 감정은 오셀로처럼 하얀과 검정으로 바뀐다. 얽힌 실을 의도적으로 다시 뒤얽히게 만드는 자들도 있다. 단, r:ead와 같은 기회로 인해 생성된 개개인의 안에서의 밸런스감각은 이후에도 자극해가면서 어떠한 폭풍이 부는 시대가 와도, 조금씩 모국에 뿌리를 두고 행하는 것이 아닌가.
나 개인으로서는 손때가 묻은 스스로의 수법에 대한 의문의 시작, 그리고 이웃나라의 작가들과의 교류, 그것은 뒤얽힌 실을 조금 풀어보는 시간이었다.
가까운 시일내에 재회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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滞在時東京に降った記録的大雪を固めた雪碑(冷凍庫に保存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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服部さんと制作した冊子[不在のかたちーモニュメント再考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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服部さんと制作した冊子[不在のかたちーモニュメント再考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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服部さんと制作した冊子[不在のかたちーモニュメント再考ー]

세계관의 재구축 아라카와센 이야기

요즘 시대에서는 신자유주의 하에 국가관리, 언어정치, 자본주의가 섬세하게 발전해 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아시아지역은 얼마나 국가민족, 이데올로기, 소비모델을 넘어서서 세계관을 구축한 위에, 현대 아트에 연결할 수 있는가, 끊임없는 모델 사막을 극복하는 것이야 말로 지역의 잠재능력을 끄집어 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최근의 예로, 2014년 3월 8일, 갤러리 도쿄 원더 사이트의 「아시아・아나키・얼라이언스」전시가 시부야, 홍고의 전시장에서 공개되었다. 이 시점은 대만 폐핵데모와 동일본대재해 후쿠시마원자력사고 삼주년과 겹친다. 전람회에서 유엔곽민(袁廣鳴)이 공개한 신작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그의 작품은 높은 각도에서 가랑비(鵝鑾鼻)의 원자력발전소 및 랑쇼(蘭嶼)의 방사성 폐물처리장
을 찍은 것이다. 작품안에서는 용두암의 언덕에 조용히 바다를 향해 있는 산양들과 모랫사장에 있는 사람들이 찍혀있다. 이러한 경치를 보고 산양들과 우리들은, 원자력발전소와 방사성 폐물처리장하고 이렇게 가까이 가까웠나 라고 나는 생각했다. 한편으로는 랑따오(朗島)초등학교, 바다와 파도, 녹색의 언덕이 사람없는 조정실을 에워싸고 있다. 마치 유령의 집처럼, 소름이 돋는다.

이 작품은 원자력 반대의 많은 목소리와는 달리 굉장히 조용하다고 말 할 수 있다. 이러한 순수한 목소리는 지금 동경의 한쪽에서 원자력 반대에 대해 커다란 움직임이 보여지고 있다.

쳉제렌(陳界仁)의 『로경도』에서는 대만 고웅 하바의 스트라키 노동자가 「세계의 노동자들은 우리들의 동료다」라는 것을 주장하고 있다. 이번에 쳉씨의 작품도 바다를 건너 일본에 와서, 전시장에서 주목을 받았다. 작품에서 아시아・아나키・얼라이언스의 구체적인 이미지가 느껴졌다. 개념상으로는 세계관의 예술성을 재구축하고, 대만이 최근 수십년간에 현대 아트에 있어서 세계관 재구축의 대처방법과 연관된다. 그 반면, 행동상에서는 아시아민족의 벽을 부수고, 대만에서 한발 나아가고 있다. 이번 이벤트는 우다쿠엔(吳達坤)씨가 큐레이터를 담당하고, 2년간에 걸쳐 드디어 현대아시아와의 연계를 지었다.

나아가, 중년세대의 야오주이청(姚瑞中) 및 젊은 세대의 창리엔(張立人), 쳉징얀(陳敬元), 쳉찡야오(陳擎耀), 투페이신(투페이신), 예쳉유(葉振宇)라고 하는 아티스트도 각광을 받았다. 그 중에서 창리엔씨의 『전쟁의 성』은 도시시스템을 그리는 세세한 양상을 사용해, 세계의 경찰인 미국에 콘트롤되고 있는 대만제국을 비판했다. 이러한 세계관에 대한 생각은 정말이지 「애니메 세대」의 대만에 있어서 그레이드 업된 버젼이다. 더욱이, 갤러리 도쿄 원더 사이트의 홍고 전시장에서는 투페이신씨의 신작 『세계의 박람회』(World Expositions)은1970년의 오오사카, 1975년의 오키나와, 1985년의 츠쿠바, 1990년의 오오사카, 2005년의 아이치에서 사용한 일본만국박람회의 선전 포스터를 원고로 한 것이다. 인터넷에서 모은 세꼐의 대사건의 문장과 사진을 프린트아웃해서, 배경을 투명화하게 해서, A4의 원고에 붙혀서 만든 작품이다.

신작에 대해서, 투페이신씨의 전작 『옥산미로』애니메시리즈는 과거의 박람회사진을 축소해서, 세계의 정보를 모아 플랫폼으로 한다. 여기에서는 카세르에서 개최된 13번째의 『다큐멘터』에 있어서, Geoffrey Farmer가 1935년부터 1985년까지의 잡지 『Life』에 실은 『잡초의 잎』(Leaves of Grass)의 사진을 도려내는 것과 같은 수법을 사용했다. 새로운 조합으로 인해, 원래의 미국 라이프 스타일이 뒤집혀, 일본이 만든 동아시아를 기본으로 한 세계관이 이루어졌다. 미국에 있는 신전위나 팝아트 대신에, 대만과 동아시아에서의 세계관의 에피소드가 대신했다. 물론 냉전의 역사에서는 미국의 요소도 번번히 등장했다.

투페이신씨의 박람회시리즈 작품이 3월 12일「r:ead:동아시아와의 대화」에서 발표되었다. 「도상의 표상」에 뛰어났으며, 색의 배치도 산뜻한 작품이었다. 일본 종래의 소박한 미학을 바탕으로, 새로운 현대의 요소가 들어가 있다. 페이신씨의 이 작품은 Anselm Kiefer의 독일 낭만주의에 넘쳐나, 차가움과 허무함에 넘쳐난 2차세계대전에의 반성을 그린 회화와의 사이에 큰 아시아식의 콘트라스트가 생성되었다.

이번 기획에 참가한 덕분에, 투페이신씨를 비롯해 일・한・중의 아티스트, 큐레이터와 동경에서 이야기 할 수 있었다. 이것을 계기로, 비평가로서 어떻게 아티스트의 기존 작품에 영향받지 않고, 자신만의 세계관을 재구축 할 수 있는가 하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세계관의 재구축은 특정 예술문화를 바탕으로 해서, 세계사의 관점에서 새로운 인스필레이션을 끌어낼 필요가 있다.

대만에서의 종래의 예술문화에대해서, 이러한 아드바이스를 했다. 1980년대의 대만영화는 아시아 및 사구의 평론가에게 주목받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가운데, 이 시대의 대만영화를 세계관 재구축의 양식으로 생각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동경에 오기 전에, 인터넷에서 허우샤오시엔(蕭菊貞)감독이 만든 다큐멘터리
「백합기획-대만 신영화 20주년」(2002)을 보았다. 그것을 계기로 대만의 신영화세계에 들어섰다. 그 시대를 돌아보면 그 시절의 시대감, 그 시대의 제작공정, 정치 심사와 문화 투쟁이 상세하게 남아 있다. 450만 TWD보조금으로 만든 「광음의 이야기」(1982)를 시작으로 1987년 대만 신영화 감독선언 발표까지, 오념진(吳念真), 소야(小野),호우샤오센(侯孝賢), 에드워드양(楊德昌),
증상상(曾狀祥), 쵸유키(張毅), 테첸타오(陶德辰), 가일정(柯一正), 주톈원(朱天文)은 훌륭한 문화를 만들어 내었다. 그들은 제한된 환경안에서, 당시 국민당의 노동조합시스템과 등급평가시스템에 직면하여, 그리고 명기(明驥)(당시 대만중앙영화회사의 제너럴매니저, 대만신영화의 아버지)의 노력에 의해 그들을 통합니켜, 이러한 문화의 기적을 일으켰다. 그래도, 아시아나나 세계의 시점에서 한번 더 대만 신영화를 검증해보면, 또 새로운 평가가 나올 것이다.

대만 신영화가 시작되고 30년후, 다큐멘터리 감독 왕경유(王耿瑜)는 한번 더 신영화를 검증해보았다. 다른 대만 신예 아티스트처럼 그녀가 편집중인 필름을 보면, 거리를 두지 않으면 새로운 관점으로 사물을 볼 수 없다는 것을 나는 새삼스럽게 발견한다. 신영화에 관련된 논쟁을 20년후에 한번 더 검증해 보면, 『OUR TIME OUR STORY – 20 YEARS’ NEW TAIWAN CINEMA 』이라는 다큐멘터리와 같이, 굉장히 우리들을 다른 결론으로 안내한다. 그러나 혹시 이 시간은 30년이 지나면, 신영화의 미학가치는 객관시점의 변화 혹은 신영화 안에서 나타난 아시아 의식과 세계의식의 특이점이 될 것이다.

왕경유가 편집한 최초 버젼의 영상 중에, 일본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是枝裕
和), 프랑스감독 올리비에・아사야스, 중국감독 왕샤오빙(王小兵)과 지아장커
(賈樟柯), 이탈리아 큐레이터 뮬라, 일본영화대학학장 사토우타다오(佐藤忠
男), 홍콩감독 슈치(舒琪), 아티스트 아이웨이웨이(艾未未), 그리고 아르헨티
나의 영화 관계자까지, 모든 사람들은 이 대만 신영화가 시작된지 30년 후, 신영화가 그들과 아시아에 대해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인정, 신영화 안에서 의 세계의식에 대해 긍정적으로 인정했다. 이 세계 중, 어떤 한 세대의 문화인은 대만 신영화를 접촉하고 영향을 받아, 당대 화인의 생명을 보였다.

대만영화 조성금 시스템, 비지니스 가치, 혹은 비지니스 밸런스 등의 외부 인자의 시점에서 보면, 대만신영화의 내부가치를 읽을 수 가 있다. 이것은 내가 아시아와 세계의 시점에서 대만신영화를 검증 할 때 발견 한 것이다. 과거, 우리들은 그러한 외부인자를 둘러싼 논쟁 중에, 마켓 동향에 대한 주목은 결코 결여되지 않았다. 우리들이 결여되어 있는 것은 세계관 일 것이다. 그 결과, 아시아 역사, 혹은 세계사의 시점에서 한번 더 1980년대의 대만신영화를 검증하는 것이, 최근 나에게 있어 재미있는 과제였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왕경유와의 대화 중에, 자신의 어린시절에 대해 이야기를 하였다. 당시, 가족전원이 바나나나 파인애플을 먹을 때, 그의 아버지는 언제나 「역시 대만 것이 더 달구나」라고 말씀했다고 한다. 그때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아버지의 기분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어른이 된 어느 날, 우연한 기회로 허우 샤오시엔 감독의 작품 『A Time To Live, A Time To Die』를 보고, 그는 드디어 이해했다고 했다. 그의 아버지의 말씀 중에는, 자신이 태어나서 청년시대까지 대만에서 살았던 기억, 행복, 그리고 대만이라는 고향에 대해 그리워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아버지는 태평양전쟁 중에, 중국 동북으로 가서 일본에 돌아 온 경력에 대해,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이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이야기를 따르면, 아시아성이라는 것은 영화 안에 나타난 패션 프루트에도 잠재되어 있을 수 도 있다고 한다.

인터뷰 중에, 지아장커는 이렇게 말했다. 「신영화는 확실하게 끝이다. 그리워하며 떠올리는 것은 아무 것도 남기지 않았다. 그러나, 어떤 영화에 속해 있는 생활 스타일까지도 신영화와 함께 없어져버리는 것은 아쉽다.」 이 이야기는 「신영화는 이제 죽었다, 신영화는 이제 끝이다」라고 중얼거리고 있는 우리들에게, 한번 더 생각해 볼 수 있는 찬스를 제공한다. 도대체, 「영화에 속해 있는 생활 스타일」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영화 생산방식의 갱신, 허우 샤우시엔(侯孝賢) 감독이 영화를 위해 땅을 팔고, 에드워드 양 감독이 차륜 소리를 위해 심야 양명산에 가서, 롱테이크로 온몸으로 연기하지 않으면 안되는 특이한 상황 등 이다. 또, 에드워드 양감독이 『Boys from Fengkuei』라는 허우 샤우시엔감독 영화를 보고, BGM을 재제작을 결심한 것도 그 생활 스타일의 한 가지이다. 당시 도시와 시골의 현실상황을 충실하게 재현, 촬영 주변의 환경소리를 충실하게 수록, 일본어, 대만어, 그리고 객가어(대만방언의 한가지)를 대사로 사용하는 등. 이러한 것 중, 「현재를 주목하면서 현실에서 벗어나, 영상시점에서 세계를 보다」는 것을 할 수 있다 라는 영화적인 생활스타일이 보였다. 말을 바꾸면, 이 생활스타일은 일종의 강렬한, 개인적인, 창조적인 세계를 만드는 스타일이다.

고레에다 히로카즈감독은, 허우 샤우시엔감독과 오즈 야스지로우감독의 사이에 있던 미학 대화를 계승하고 있다. 프랑스감독 올리비에・아사야스는 에드워드 양 작품 중에, 런던, 파리, 혹은 뉴욕등에서, 인간세계에서의 공통의 것을 읽을 수 있다. 이러한 깊고 창조적인 대화와 현대인간이 공진하는 것은, 진실한 새로운 아시아관과 세계관일 것이다. 밤에 나는 아라카와센(荒川線) 안에서, 이러한 것을 생각했다. 그와 동시에, 나 또한 허우 샤우시엔감독이 2003년 오즈 야스지로우 백년명복을 기념하기 위해 만든 영화『Café Lumière』의 내용을 생각했다. 영화 안에서, 히토토 요우(一青窈)가 연기한 이오누에 요우코(井上陽子)는, 이름도 모르는 대만인의 아이를 임신하였다. 그녀는 전철 안에서 도대체 어떤 고독을 느끼고 있는가.

만국박람회

이번r:ead 레지던스・동아시아・다이얼로그 프로그램에 있어서, 나는 「세계박람회」를 원점으로 콜라쥬작품을 제작했다. 먼저, 일본이 1851년 이후, 주최했던 세계박람회의 선전 포스터를 모았다.「인류의 진보와 조화」를 테마로 한 1970년 오오사카만국박람회, 「바다-그 바람직한 미래」를 주제로 한 1975년 오키나와국제 해양박람회, 「인간・이주・환경과 과학기술」을 테마로 한 츠쿠바국제과학기술박람회, 「인간과 자연」을 테마로 한 1990년 오오사카국제꽃과식물박람회, 「자연의 예지」 를 주제로 한 2005년 아이치만국박람회를 포함했다. 그리고 포스터를 A4사이즈의 영상으로 표현했다. 그 위에, 각 박람회의 해당년도에 일어났던 사건의 영상을 붙였다. 영상에서 넘쳐나오는 여러가지의 메세지를 같은 시각평면에 겹치게 하였다. 이하는 박람회와 일부 사건의 대조 리스트이다.

1970년-「인류의 진보와 조화」/비틀즈 해산/PFLP 여객기 동시 납치사건/켄트주립대학 총살사건/베트남전쟁 반대운동/플로피 디스크 개발/소련 우주조사기 베네라7호 금성 도착/ 중화인민공화국 최초 인공위성 동방홍 1호 발사성공

1975년-「바다-그 바람직한 미래」/레바논 내전/마이크로소프트사 설립/초기 베트남난민 홍콩입국/국제부인의 해/아폴로 테스트계획 집행 개시/베트남전쟁 종전/폴 포트 캄보디아 수상 취임

1985년-「인간・이주・환경과 과학기술」-타이타닉의 잔골 발견/네바드 델루이즈화산폭발, 알메로 비극/남극상공 오존홀 발견/고르바쵸프 소비예트공산당서기장 취임/새로운 맛의 코카콜라 발매/디스커버리 채널 방송 개시/AIDS혈액 검사 인정

1990년-「꽃과 식물, 인간 생활의 관계에 대해 21세기를 향해 윤택한 사회의 창조를 꿈꾼다」-3월학운(三月学運)/독일 통일/넬슨・만델라 석방/허블우주망원경 발사/레흐 바웽사 폴란드 대통령 취임/예맨 통일/고흐 「의사 가세의 초상」 사상 최고의 가격으로 낙찰

2005년-「자연의 예지」-허리케인 카트리나 뉴올리언즈 강타/런던 77 동시폭발 사건/인도 절에서의 사상(死傷)사건/미군 레드 윙 작전 실패/이탈리아 여성기자 스그레나씨 구조/고이즈미 준이치 내각총리대신 주임/캐나다 세계 최초 동성결혼 합법화

일본이 주최한 국제박람회의 포스터를 통해서, 세계로의 상상을 표현했다. 그것이 현실세계의 사건과 호응하기도 했지만, 비꼼과 대조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번 작품 안에는, 상상의 뒤에 숨겨진 시대의식과 분위기에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또한, 이번 창작을 통해 동아시아를 기반으로 세계관을 구축한 일본을 관찰했다.

아시아관점의 출현은 서양중심론과 큰 관계가 있다. 아시아개념은 기독교문명과 산업혁명을 배경으로 한 서구개념과 다른 다원성・비통일성 이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번 레지던스에서, 예술영역에 있어서의 아시아 문제에 대해 두가지의 생각이 있다. 그 하나는, 현대예술에 있어서 아시아의 관심은 왜 필요한가. 지역문제가50~60년에 많이 언급되었는데, 지금의 논의는 새로운 방향을 찾을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예술가인 나는「예술」을 순수한 개념중심으로서 아시아를 생각해야한다고 느낀다. 다른 한가지는, 현재 우리들이 다른 제국의 형태를 만들 필요가 있는가 하는 것이다. 90년대부터 시작된 비엔날레 풍조에 의해, 아시아관념을 구축, 유럽관점에서의 탈출, 새로운 언어권리를 획득한 의도가 확실해 질것이다. 이러한 아시아화상(画像)통합의 필요성의 유무, 혹은 차이가 존재하도록 놔두는 것이, 혁신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에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동아시아, 동시대, 우리가 해야할 행동은 무엇인가

2013년 12월, 2014년 2월에 있었던 r:ead는 중요한 시기에 중요한 사람들이 함께 했던 중요한 자리임에 틀림이 없었다. 4개국으로 부터 참석한 4명의 젊은 아티스트와 4명의 젊은 큐레이터, 레지던시 디렉터Chiaki Soma, 그리고 눈부신 활약을 해준 스텝들은 오랜 기간동안 머리를 맞대고 동시대의 예술적, 사회적 쟁점들에 대해서 이야기 했다. 과거의 예술적, 사회적 시스템을 수용하면서도 정반합 적으로 반발하고자 하는 적당히 젊은 이들의 발언과 텍스트 들에서 강한 동지의식을 느꼈다.

오늘은 2차 세계대전이 공식적으로 끝난날로, 내가 있는 네델란드 암스테르담 및 유럽 국가들에서는 조촐한 기념 행사들이 열리고 있다. 2차 세계대전 이후로 세계는 평화로운 세월을 보내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 인류가 해결해야할 문제들은 산재해 있어 보인다. 그 사이 한국에서는 세월호가 침몰하고,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어린 생명들이 덧 없이 목숨을 잃었다. 너무도 애통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유구한 시간의 흐름속에 잠깐 세상에 머물다 가는 한 인간의 존재에 불과한 나로서 원대하게 이 세상을 바꾸고 싶다기 보다는, 내 삶을 살아가는 동안 어떻게 무엇을 하며 살아야가야 하는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을 다시 한 번 상기시켜주는 사건이었다. 즉, 가치 있는 일을 하다 죽고 싶은 것이다.

만약 특정인이 진정한 가치를 고민하고 추구한다면, 그것이 예술적 가치이든, 사회적 가치이든, 정치적 가치이든, 그 행위와 노력은 박수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내가r:ead에서 이야기 하고자 했던것(지금도 계속 되고 있지만)도 결국은 같은 맥락에서 시작되는 것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다.

나는 개인적으로 스스로의 가치를 “긍정적인 변화”라고 정의하고자 한다. 이 세상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고, 개인과 집단의 에너지도 변화에서 발생된다고 생각된다. 정체는 곧 죽음을 의미한다. 인간의 삶은 변화하는 에너지로 존재한다. 이는 열 역학 제 1법칙의 그것과도 일맥 상통한다. 인류와 사회의 집단들도 이러한 변화의 단계에 엔돌핀을 발산해왔다. 무엇인가 변화하고, 일어나고, 희망을 품을수 있을때 사회의 구성원들은 행복을 느낀다. 인간의 물질문명은 이제 변화의 단계에 왔다고 판단되어 진다. 처절한 고민에 의해 그 변화가 긍정적인 방향으로 흐를수 있게 방향성을 제시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내가r:ead에서 하고자 했던 리서치는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나와 동일한 생각을 가지고 학술적, 행동적, 예술적 행위를 하는 사람들을 만나서 앞으로 인생의 방향성을 잡아보는 것이었다.(이를 작업의 방법론을 정립하는 행위로도 이야기 할 수 있을것 같다.) 이번 달 초부터는 같은 리서치를 한국에서 진행하고 있다. 리서치는 스스로의 아카이브로 존재할 뿐만아니라, 적극적인 활용과 배포를 통해 공유할 예정에 있다. 아울러 리서치를 하는 행위가 다층적인 문화 예술의 교류로서 존재한다는 기대감도 갖고 있다. 아직은 미완성인 리서치를 계속하며, 리서치가 어떻게 긍정적인 Platform으로 변형 될것인가 함께 고민해본다.마치며r:ead의 디렉터, 스텝들, 무한한 영감을 준 참가자들에게 다시한번 고개숙여 감사드리는 바이다.

네델란드 암스테르담에서

r:ead를 통한 생각 인생은 언제나 다른 곳에 있다

자신이 대체로 트러블을 겪을 때, 이 곤란을 잘 극복한 사람에게 방법을 배우고자 한다. 이러한 생각은 개혁의 근원으로서의 타산지석을 원하고, 그것에서 이상적인 유토피아를 구축하는 것에서 비롯된다. 오늘날에도 우리들에게는 하나의 굉장한 아름다운 유토피아가 있다. 반대로, 인간자신이 꾸며놓은 지나온 선명한 과거에 몰두하고 있을 때, 자신보다 나쁜 경쟁상대을 선택적으로 공상하고, 단지 선명한 빛에 의해 만들어진 그림자만 볼 뿐, 현실을 바라보지 못하고 자신을 마취시키는 것은, 마치 아편전쟁 직전의 중국 청나라가 영국에 대해 무지했던 것과 같다.

이상화된 타자와, 타인의 제도는 반드시 지리적 혹은 공간적인 거리 뿐 만아니라, 시간적인 거리의 경우도 있다. 따라서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무언가를 원할 때는 비판적인 힘도 있다. 찰스1세의 경우, 영국사람은 이 폭군의 통제를 빨리 무너뜨리려고 했으나, 그의 목이 잘린 후, 그가 살아있었던 시대를 반대로 그리워하는 경우도 생겼다. 프랑스대혁명에서 죽임을 당한 루이 16세와 황후의 경우도 같다. 황후가 사형집행인의 다리를 밟은 후 말한, 미안합니다 일부러 밟은 것이 아닙니다, 라는 말은 몇년 후 반대로 사람들의 인상에 남았다. 그 말에서 암시된 수양(修養)은 대혁명이 일어난 모든 것과 비교대조되고 있다.

인간과 동물이 구별되는 것 중 하나를 말하자면, 언제나 불만을 느끼는 것이다. 따라서, 다른 것 혹은 다른 시대가 지금보다 좋았다고 사람들은 때때로 생각한다. 또한, 그러한 것은 역사 안에서 순환적으로 반복되고 있는 것 같다. 그렇기에, 혁명이라는 말이 영어로 순환이라는 의미도 가지고 있다는 것에 이해를 더한다.

왜, 언제나 과거 혹은 먼 곳에서 타산지석을 찾는가. 당연한 것이지만 그 원인의 하나로서, 일체의 사물에 대해 비판하는 것에는 어떤 단차가 필요하며, 이 단차는 크면 클수록 현실을 뒤집어 업는 힘이 있다. 따라서, 사람들은 어떤 흑백의 대립을 구축하고, 완벽하게 가까운 사람과 아무것도 아닌 현실에 대항하는 경우를 만드는 때도 있다. 사람들은 언제나 자신의 나라를 열렬하게 비판하면서, 무지인 타국의 것에 대해 너무나도 찬미하는 경향이 있다.

예를들어, 현재 동양의 나라들이 서양이라는 것 자체가 아니라, 서양에 대한 어떤 이상(理想)에 더욱 의지하고 있다. 때로는 사람들이 타인에 대한 찬미라는 것은 그냥 수단의 하나인 것임을 잊어버리며, 모르는 사이에 진지하게 되고, 수단을 목적으로 착각하고, 따라서 냉정하게 현실과 자기자신을 바로 바라보는 것도 잊어버리게 된다. 실은, 우리들의 진실된 의도라는 것은 서양을 찬미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통한하는 것이다. 피에르 부르디외가 주장한 것처럼, 도시와 시골도 항상 같은 도리이다. “하나의 긍정할 수 있는 것이 있고, 그것은 농민의 입장에서 혹은 농민을 위해 농민을 생각한다. 농민의 미덕과 농촌을 찬미하는 말은 그냥 도시의 노동자의 악습과 도시의 악죄를 비판하기 위한 에두름의 표현에 지나지 않는다. ”

이것은 모든 인생이 다른 곳에 있기 때문이다. 원래 인간은현실과 떨어진 다른 곳에서 만족감을 용이하게 얻을 수 있기에, 그 다른 곳이 유토피아가 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현실을 들추어내어 이 유토피아가 사실이 아닌, 건설성도 부족함을 지적하면, 문제점도 나타난다. 그러한 구축을 반대하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 비평가들은 그들이 사실을 정정하고 있다고는 생각치 않고, 반대로 그들이 현실을 바꾸려고도 하지 않고, 사람마음을 얻지 못하는 기존의 질서를 변명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비평가에게 있어서 원래의 의도는, 어떤 현실을 넘어서 있는 질서의 힘을 빌려 현실을 반성, 비판하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 안에서 조류에 휩쓸리지 않고, 세상의 큰 힘에 죄지우지되지 않고 독립성을 가진 생각을 하는 것은 아주 고마운 일이다.

미국에 가본 적도 없는 사람은 고정된 이미지를 통해 미국을 상상 할 수 밖에 없다. 미국사람이 일하는 모습에 대해, 우리들은 이미 선입관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에, 미국을 생각할 때(미국사람이나 그 과거), 실제로는 이러한 이미지로‘미국사정’구성한다.
마찬가지로, 우리들은 이러한 심리로 자신의 인식 안에 생각 할 수 있는‘세계의 모양’을 만들어 낸다.이것은 이성의 한계이지만, 고대와 전통에 대해 분명한 자기인식에 따른 것이다.

고대의 것을 돌이켜 생각해보면, 마치 별이 총총한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듯 하다. 수 많은 별은 전혀 다른 거리와 크기이지만. 우리들의 눈에는 마치 같은 빛이다. 또한, 그 ‘넓은 곡면’은 ‘하늘이 둥글고, 땅이 네모’와 같은 당연한 것으로, 인류의 본능에서 온 반응 같은 것이다. 이런 배경아래, 별하늘의 무한한 거리감이나 층별감을 느끼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현대 중국인의 고대에 대한 상상은 명조중기의 이미지를 기본으로 형성된 보편적인 인식이며, 그 중에 새로운 일들이 생성되었다. 다시말해, 이 단계의 발전은 중국사람의 고대인식이 만들어 낸것으로, 전통문화에까지 영향을 끼치고 있다. 그리고, 현시대에 가까운 이미지를 도구로서 옛날의 상상을 만든다. 특히, 전통분열의 시대에는 우리들에게 필요한 “심볼”을 발견하지 못해, 고대를 “재편성” 하거나 만들었다. “문화공작”이라는 것은 실제로 여기에 포함된다. 대체로 현대인은“전통문화”로의 이해는, 그 시기의 역사인식에 따른다. 그 이전의 시대였다면, 인조적인“신문화”라고도 했을 것이다. “고대”라는 말과 같이, 보편적인 전통도 어떻게 보면 변화나 깊이가 덜 한 단일한 것이지만. 실제로는 복수이다.

더욱이, “고대”와“전통”의 내부에서도 상호모순과 경쟁이 있다. 이 가려진 관점은“전통”이 전체적으로 부정되고, 또한“고대”의 보편적인 낭만인식에 원인이 있다. 그러나, 주의해야 할 것이 있다. 우리들이 상상한 그 “고대”는 옛날부터 쭉 변화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특히 현재의 이“조각시대”안에서.

지도의 은유

우리들은 긴 시간, 지도라는 존재에는 익숙해져, 지도는 단지 세계를 추상적으로 재현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잊어버리기 쉽다. 우리들은 주위의 세계에 대해 숙지하고 있을 수 도 있다. 하지만 그 숙지라는 것은 단지 추상과 이미지만을 잘 알고 있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인식이라는 것은 사전에 가상(仮想)한 표상도 포함한다고 생각한다. 전자(前者)는 표면적이지만 살아있다. 한편, 후자는 심각하지만 개념적이다.

단, 리얼한 경치를 감지하고 있는 사람과 비교해, 지도를 볼 수 있는 사람은 보다 높은 레벨의 사고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사람은 추상적인 점 혹은 선, 면으로 전자라는 사람이 상상 할 수 없는 공간의 결구(結構)관계를 감지할 수 있다. 지도라는 것은 일련의 기호의 응축이기 때문이다. 하나의 점으로 하나의 마을 혹은 동네를 표시하고, 하나의 선으로 하나의 도(道) 혹은 강을 표시하고, 하나의 파란색의 면은 바다를 표시한다. 지도를 만드는 지속적인 노력자체는 일종의 충동이라고 생각한다. 이 세계를 그대로 표시하고, 추상적인 기호를 통해서 세계를 인지・파악・콘트롤 한다. 그렇지만, 아티스트에 대해 이러한 준비를 겸하기를 요구한다. 이것은 다빈치의 훌륭한 점이기도 하다.

하지만 “세계”라는 것은 변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다른 시대, 다른 사람에게 있어, 그 범위와 의미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많은 사람이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사람들은 자신이 알고 있는 혹은 보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는 세계를 지도로 표현하고, 이것은 인지능력의 제약이며, 추상과 이해의 제약이기도 하다. 중세기의 사람은 미국대륙을 그릴 수 없었고, 예루살렘이라는 성역을 세계의 중심에 두고 있다. 그것은 그들이 그렇게 세계를 구상하고 이해하고 있기때문이다. 그 시대에 있어서, 지도는 신이 모이는 곳이다. 고대 지도를 돌이켜보면, 비례와 척도가 조금 비뚤어져 있고, 어딘가 부족하게 느껴지지만, 그것이 그 시대의 사람이 보고 있는 공간일 수 있다. 지도의 지리에 관한 상상은 언제나 있는 관념과 사상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실은 이 미묘한 심리는 현대에 있어서도 같다고 생각한다. 중국이 출판하고 있는 세계지도에 있어서도, 중국은 세계의 중앙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또한 유럽을 중심으로 하고 있는 지도를 보면, 중국대륙・대만・조선반도・일본열도는 우측의 구석자리에 위치하고 있고, 그리고 형태가 비뚤어져있으며, 세계의 끝에 부들부들 떨면서 서로가 의지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고대에 있어서 지도를 보는 것은 아직 소수의 사람만이 가지고 있는 권리이었을 수 있다. 그러나, 인쇄술이 보급되면서 그것은 모든 사람의 경험이 되었다. 이 새로운 시대에서, 세계는 세로로 세워져 있어 위로 늘어나거나 아래로 추락하거나 하는 다층적인 공간이 아니라는 것이 알려진다. 천국도 지옥도, 평평한, 눈 앞에 전개해 가는 넓은 면(面)이다. 지도를 만드는 기술의 발전에는 두 가지의 흐름이 있다. 한 가지는, 지도의 측량을“최대한 커다란 다양성으로부터 어떤 종류의 이성적이며 조작가능한 구조”로 하고, 측량하는 측과 측량되는 측의 사이에 주관적인, 혹은 객관적인 양극화된 개념을 형성한다. 그래서, 세계는 “고향”이 아니고, “거처”가 된다. 세계도 국가도 독립된 실태화한 이미지가 된다.
한편, 또 다른 흐름은 더욱 알기 어렵게 된다. 측량기술의 발달에 따라, 지도가 표현하고 있는 세계는 진짜 세계라고 사람들에게 인식시켜주기 위해 만들어진다.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유명한 꿈이 있다.

그것은 지도를 진짜 세계와 같은 크기의 비례로 만드는 꿈이다. 지도는 리얼한 것이 아니고, 가상의 것이다. 그러나, 이 꿈이 실현되기 전에 세계에 대한 과학적・정확적・완전적・진실적・보편적인 표현이 되었기에, 세계자체가 어떤 거대한 지도로 상상되어 왔다. 그리고 지금, 세계는 지도가 표현하고 있는 것처럼 존재하고 있다고 사람들은 깊이 믿고 있다.

이러한 것은 우리들의 수단, 예를들어 가위나 쇠망치에 대한 인식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주 적절한 인식은 사용하는 것을 통해서 얻은 경험에서 생성되는 것으로, 수단 그것이 형태와는 관계가 없는 것이다. 그렇기에, 카프카는 “자신의 무지와, 영원히 손에 넣을 수 없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것을 인식시켜주는 것은 여행 밖에 없다”고 말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것으로 리얼과 가상과의 경계선이 애매하게 되어버려, 이 둘의 관계는 반대로 되고 말았다. 지도는 진짜의 세계처럼 만들어야 하는것이 아니라, 진짜의 세계는 지도가 나타내고 있는 것처럼 존재해야 한다는 것으로 되고 말았다. “종이에 적혀져 있는 힌트에 많이 의지하여 물건을 찾는”것처럼, 모든 리얼과 재현의 사이에는 틈과 차이가 있을 수 밖에 없다. 리얼한 사람이나 경치가 사진처럼 아름답지 않으면, 우리들은 이렇게 현실 세계에 대해 실망하거나 한다. 그렇기에, 지도에 의지하며 세계를 알려고 하는 사람도 물론 그렇게 생각 할 것이다. 지도는 기호가 농축되어 생긴 추상적인 평면도로, 틀린 거리감과 공간의식을 만들어내는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정학(地政学)”이라는 것은 “지도학”으로 부르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거기에 모든 “애국주의”라는 것은 “나라”를 사랑하고 있는 것 보다는, “형태”를 사랑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이탈리아 사람이 사랑하는 것은 한 켤레의 부츠이고, 중국사람이 사랑하는 것은 한 마리의 닭이다. 그렇지만, 이렇게 확실한 형태에 비해, 진짜 현실은 반대로 추상적인 것이 되고 만다.

지도가 나타내고 있는 것은 현실이라기 보다 사람들의 생각이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현실이라고 인식되어 사람들을 틀린 방향으로 인도하는 경향이 있다. 예를들어 지도에서 둥그런 기호로 표시하고 있는 마을은, 현실에서도 같은 상황에 있을 거라고 착각을 하게 한다. 이것은 정치지도를 만들 때, 제일 알기 쉽다. 현대인이 그린 역사 지도 위에, 언제나 확실한 경계선이 있다. 마치, 그것은 역사상에 정말 존재하는 것처럼 보인다. 현대에 있어서 국경선과 정치구역의 표시방법에 관해, 우리들은 이러한 착각을 잘한다. 국경선의 양측에는 눈과 먹과 같은 차이가 있거나, 각기 내부는 균질한 실체가 존재하고 있어, 이것들의 실체는“국가”라는 것이 형성 된, 아주 오래 전에 존재하고 있던 것이 아닌가 라고. 실은, 예를들어 소말리아와 같은 국가는 어느 시점에서 보더라도 국가로서는 이미 존재하고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아프리카대륙의 정치 지도위에는 등장하고 있다. 마치, 그 토지에는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한편, 네덜란드는 현대인이 복원한 고대로마의 지도에서 로마의 경계가 두개로 갈라져 있다. 하지만, 지금의 지도에서 보자면, 로마라는 나라 자체가 지도에 존재하고 있지 않고, 거기에 있는 것은 네덜란드 뿐 이다.

사람이 경험한 세계와 세계의 실체 사이에는 본질의 차이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짜의 세계는 우리들이 체험하고 있는 세계와 같은 것일 거라고 생각되어진다. 아무리 좌절을 겪더라도 그 생각을 단념하려고 하지 않는다. 사람은 세계에 대해서도 이렇게 취급하고 있기에, 서로가 만날때는 더욱이 같은 취급을한다. 이것은 선천적인 “문명의 오만”이라고 생각한다. 가끔씩은 운이 좋아, 지리의 거리를 틀리게 계산하여, 콜롬버스는 생각지도 못한 신대륙을 발견했다. 가끔씩은, 웃으면서 가볍게 이야기 하기도 한다. 19세기 초기, 누군가가 북아메리카대륙의 지도 서남부에 “미국대사막”을 그린 이유로, 당시의 개척자는 자신이 지금부터 비옥한 대평원을 넘으려고 하는 사실을 모르고, 사막을 건너기 위한 준비로 낙타까지 미리 준비한 일이 있다.

근대가 되면, 지도는 단지 재현의 수단 만이 아니라, 개조하기 위한 수단도 된다. 프랑스는 1789년 후에, 역사 지리에 대해 하나도 생각치 않고, 나라를 하나의 블록으로 분리하여 관리한 것처럼, 열강한 아프리카대륙, 아메리카대륙을 제패 할 때, 지도 위에 그대로 선을 끗고 경계선을 만드는 경향이 있다. 더욱이, 계획설계도를 만들 때도, 현지의 사정을 참고하지 않고 도지(図地)로 선을 끗는 경우가 있다. 이것은 실은 권력의 요구이기도 하다. 현실은 지도처럼 존재하고 있고, 우리들은 지도 위에서 그 토지를 변화시키거나, 완전하게 할 수 있다. 그 때문에, L.A는 도시계획에 실패한 전형적인 예가 된다. 루이스 마운트배튼의 방침은 인도・파키스탄 분리독립과 그 후의 전쟁에 직접 연결되어, 간접적으로 방글라데시라는 새로운 국가도 만들어내었다.

그 때문에, “동아시아”라는 개념이 생겨났다. 이것은 지도 뿐 만이 아니라, 모른 사이에 사람들의 “소원”으로서 받아들여졌다. 그리고, “권력”을 가지고 있는자에 있어서는 더욱이. 마지막으로 보충하고 싶은 것은 “동아시아”라는 곳은 또 하나의 이름이 있다. 그것은“극동”이라는…
2014년 3월 10일 동경

r:ead, 내셔널리즘, 국가, 동아시아, 순슌 그리고 다시 r:ead

아시아정세가 긴박한 가운데, 그 긴장의 소용돌이 안에 있는 나라의 사람들이 모인 이 레지던스는 자극적이었으며, 또한 여러가지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영토문제, 차별문제, 외국인 배제운동, 소수민족의 탄압, 내전, 이것들은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영토문제에 관해서는 중국, 한국, 일본이 근래 수년간 큰 문제로 여겨지고 있다. 만약, 그 밑에 굉장한 자원이나 유전이 있다고 해도, 일반시민이 그 은혜를 먼저 받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방이 돌 뿐인 몇백미터의 섬을 둘러싸고 싸우고 있는 모습이 바보처럼 느껴진다. r:ead에 참가했던 우리들은 아트커뮤니티라는, 내셔널리즘보다는 더욱 친밀한 작은 커뮤니티에 소속되어 있었기에, 그러한 험학한 분위기는 전혀 없었다. 재미있는 시간을 공유하고, 개인적인 것부터 큰 화제까지 논의를 했다.
나는 홍콩에 살고 있기에, 아시아 나라의 시선으로 일본을 볼 때에 자랑스러운 것도 있지만 부끄러운 것도 많다. 우리나라의 수상이, 선거표 획득을 위해 하고 있는 야스쿠니신사 참배는, 내정과 미국만 신경쓰면 되었던 전후부터의 관습으로써, 일본정부의 나쁜 일면을 드러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그만 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나 스스로 이미 자국에 대한 애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애국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일본은 단일민족이라는 신화*1나, 국가나 기업을 가족의 연장이라고 보는 “가족”적인 생각이 수백년이나 계속되고 있기에 특히 강한 것일까? 하지만, 영토문제에서 분신자살까지 하는 사람이 타국에도 있고, 올림픽이나 월드컵등 자국을 응원하는 기분등은 어느 나라에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느 정도의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애국심이나 내셔널리즘은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을 것이다.
처음 발표했던 내용으로 돌아가는 이야기지만, 국가는 힘이 있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지키기위해 만든 것이다, 라는 의견이 있다. 근대국가의 시작은
평화적인 것이 아니라, “전쟁이 국가를 만들어내고, 국가가 모든 전쟁을 만들어냈다. War made the state, and the state made war.”*2 는 것이다.
그리고 그 국가의 구성원인 국민은, 나라를 자랑스럽게 여기고 사랑해야하는 한다. 마을과 같이, 얼굴이 보이는 공동체의 단위라면, 외부로부터 자신들을 지키기위해 어느정도의 규율도 필요하기에, 수장이 어느정도 권력을 가지는 것이 옛날부터 있었다. 하지만, 나라의 단위가 되면 만나지도 못한 사람들이, 같은 나라이면서도 민족이나 문화, 종교가 다른 사람들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것은 어렵다. 나라 단위의 커뮤니티라는 것은 실은 성립하기 어렵지만, 국가를 어떤 형태이든 유지하기 위해서는 사람들의 애국심이 필요하다. 그것은 전체주의국가(Totalitalianism), 공산주의국가(Communism), 사회주의국가(Socialism), 민주주의국가(Democracy),독재주의국가(Dictatorship), 권위주의국가(Authoritalianism), 어느것도 똑같다. 하지만 그 형태에 따라서는애국심/내셔널리즘의 통치를 위한 필요도가 다르다. 독재제, 권위주의에서는 더욱 중요한 것이다. 그렇기에 독재자는 정보통제나 검열을 한다.(중국, 북한, 싱가폴등)*3국가는 법적, 경제적, 지세 (地勢) 적, 정치적으로 하나의 단위이다. 만약 국민의 동의가 없으면 구테타나 혁명, 암살이 일어난다. 그렇기에 상상속의 커뮤니티로서 국가라는 이름의 공동체를 필요로한다.
그 차이를 줄이기 위한 것이 매스미디어이다. 먼저 언어(문화)적인 통일에 의해, 신문(당시) 등으로, 멀리 떨어져 살고있는 국민의 에피소드 등을 알려주면서 국가라는 단위로의 일체감을 만든다. 중국에서는 광동어로 말하고 있는 지역의 사람들도 지금은 북경말로 말을 한다. 소수파의 언어나 종교는 말살되지만, 언어나 종교가 문화에 끼치는 중요한 역할을 생각했을때, 그것들의 통일이 얼마나 난폭한 것인가를 알게된다. 그 단계를 거쳐, 신문이나 텔레비젼 등에서, 먼 곳에 살고 있는 국민이 소개되고, 커뮤니티로써 환상의 국가가 만들어져 간다. 그리고 그것은 개인의 아이덴티티에도 영향을 끼친다. 근대국가가 형성 된 후 수세기를 거치기도 전에, 국가는 이미 우리들 개인의 마음 속에 벌써 박혀있다.
앤더슨에 따르면, 국가의 개념은 매우 의심스러운 것*4 으로 그 정통성은 지금까지 증명되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네이션네스라는 것은 오늘의 우리들의 정치적인 측면에서 가장 보편적인 정통이라고 불려지고 있는 가치이다
(Nation-ness is the most universally legitimate value in the political life of our time.” *5)
“평등하며 훌륭한 공동체, 국가라는 미명(美名)아래, 지금까지 셀 수 없는
부정, 불평등, 착취가 이루어져 왔다. 수세기에 걸쳐 국가를 위해 수백만명의
사람들이 생명을 잃고, 혹은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이러한 상상 속의 커뮤니티를 위해 행해진 것이다.
Regardless of the actual inequality and exploitation that many prevail in each, the nation is always conceived as a deep, horizontal comradeship. Over the past centuries, for so many millions of people killed and willingly to die for such limited imaginings. (Anderson 1983) ”*6
그렇다고 하더라고, 우리들의 나라, 그리고 역사는 틀림없이 존재하고 있고, 힘을 발휘하고 있다. 여러가지 응어리나 문제, 그러한 것을 어떻게, 분열이 아니라 조화, 싸움이 아니라 의논할 것인가. 거기다 의논하는 사람들은 더 이상 당시의 사람들과는 다르다. 어떻게 해서든 좋은 방향으로 가길 바란다. 아시아의 나라들은 여러가지를 공유할 수 있는 형제와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의 이야기는 레지던스 중에 발표 했던 것이기도 하다. 그런데, 지금까지 아트에 관해서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레지던스에 참가해서 큐레이터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했는가?
전람회는 없었지만, 나는 슌순과 페어로 여기에 불려 왔다. 순슌에게는 지난 보고서에 적은 자유의 여신상의 이야기 등, 몇 가지 제안을 하였다. 물론, 그 제안대로 작품을 만들 필요도 없었지만, 그는 칸다(神田)에서 구입한 오래된 전쟁 당시의 지도 위에다 먹으로 그림을 그리고, 지명을 남겨 성좌로 보이게 하였다.아름답고 정치적으로 훌륭한 작품을 제작해 주었다.
이 작품은 r:ead의 논의나 발표의 시간, 그리고 술집에서, 나를 포함한 다른 r:ead멤버와 순슌이 많은 이야기를 나눈 것, 그 내용이 예술가인 그의 머릿 속에서 배양되고, 수개월의 시간을 거쳐 제작에 이른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되어진다. 너무나도 바쁜 순슌이 동경에서 사람들과 곰곰이 이야기를 나누거나, 제작하거나 집중한 결과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는 “제작은 안한다”는 레지던스이긴 하지만, 아티스트에게는 충분한 인풋의 기간이지 않았나 생각되어 진다.
나에게 있어서도 마찬가지로, 육아나 대학, 일에 쫒기는 일상에서 벗어나 동아시아라는 거대한 큰 테마를, 실제 관련 나라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고, 문헌을 읽고, 생각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이런 찬스를 만들어 준 순슌과 관계자 여러분들, 홍콩에서 기다려 준 아이들과 가족에게 마음으로부터 감사의 뜻을 전한다.

  1. 小熊英二 単一民族神話の起源—日本人の自画像の系譜、新曜社、1995
  2. Charles Tilly, Bringing the State Back In, edited by Peter Evans, Dietrich Rueschemeyer, and Theda Skocpol,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85
  3. Benedict Anderson, Imagined Communities: Reflections on the Origin and Spread of Nationalism, Verso, 1983
  4. Hugh Seton-Watson ‘その現象は存在する。しかし国家についてのいかなる科学的定義も確認することはできないという結論に至った。Thus I am driven to the conclusion that no “Scientific definition” of the nation can be devised; yet the phenomenon exists’ Nation and States: An Enquiry Into the Origins of Nations and the Politics of Nationalism, Methuen, 1977
    Tom Narin ‘国家についての理論は、マルクスの偉大な歴史的過ちだ。The theory of nationalism represents Marxism’s great historical failure’ The Modern Janus: Nationalism in the Modern World, Random House, 1981
  5. Benedict Anderson, Imagined Communities: Reflections on the Origin and Spread of Nationalism, Verso, 1983.
  6. ibi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