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를 통한 생각 인생은 언제나 다른 곳에 있다

자신이 대체로 트러블을 겪을 때, 이 곤란을 잘 극복한 사람에게 방법을 배우고자 한다. 이러한 생각은 개혁의 근원으로서의 타산지석을 원하고, 그것에서 이상적인 유토피아를 구축하는 것에서 비롯된다. 오늘날에도 우리들에게는 하나의 굉장한 아름다운 유토피아가 있다. 반대로, 인간자신이 꾸며놓은 지나온 선명한 과거에 몰두하고 있을 때, 자신보다 나쁜 경쟁상대을 선택적으로 공상하고, 단지 선명한 빛에 의해 만들어진 그림자만 볼 뿐, 현실을 바라보지 못하고 자신을 마취시키는 것은, 마치 아편전쟁 직전의 중국 청나라가 영국에 대해 무지했던 것과 같다.

이상화된 타자와, 타인의 제도는 반드시 지리적 혹은 공간적인 거리 뿐 만아니라, 시간적인 거리의 경우도 있다. 따라서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무언가를 원할 때는 비판적인 힘도 있다. 찰스1세의 경우, 영국사람은 이 폭군의 통제를 빨리 무너뜨리려고 했으나, 그의 목이 잘린 후, 그가 살아있었던 시대를 반대로 그리워하는 경우도 생겼다. 프랑스대혁명에서 죽임을 당한 루이 16세와 황후의 경우도 같다. 황후가 사형집행인의 다리를 밟은 후 말한, 미안합니다 일부러 밟은 것이 아닙니다, 라는 말은 몇년 후 반대로 사람들의 인상에 남았다. 그 말에서 암시된 수양(修養)은 대혁명이 일어난 모든 것과 비교대조되고 있다.

인간과 동물이 구별되는 것 중 하나를 말하자면, 언제나 불만을 느끼는 것이다. 따라서, 다른 것 혹은 다른 시대가 지금보다 좋았다고 사람들은 때때로 생각한다. 또한, 그러한 것은 역사 안에서 순환적으로 반복되고 있는 것 같다. 그렇기에, 혁명이라는 말이 영어로 순환이라는 의미도 가지고 있다는 것에 이해를 더한다.

왜, 언제나 과거 혹은 먼 곳에서 타산지석을 찾는가. 당연한 것이지만 그 원인의 하나로서, 일체의 사물에 대해 비판하는 것에는 어떤 단차가 필요하며, 이 단차는 크면 클수록 현실을 뒤집어 업는 힘이 있다. 따라서, 사람들은 어떤 흑백의 대립을 구축하고, 완벽하게 가까운 사람과 아무것도 아닌 현실에 대항하는 경우를 만드는 때도 있다. 사람들은 언제나 자신의 나라를 열렬하게 비판하면서, 무지인 타국의 것에 대해 너무나도 찬미하는 경향이 있다.

예를들어, 현재 동양의 나라들이 서양이라는 것 자체가 아니라, 서양에 대한 어떤 이상(理想)에 더욱 의지하고 있다. 때로는 사람들이 타인에 대한 찬미라는 것은 그냥 수단의 하나인 것임을 잊어버리며, 모르는 사이에 진지하게 되고, 수단을 목적으로 착각하고, 따라서 냉정하게 현실과 자기자신을 바로 바라보는 것도 잊어버리게 된다. 실은, 우리들의 진실된 의도라는 것은 서양을 찬미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통한하는 것이다. 피에르 부르디외가 주장한 것처럼, 도시와 시골도 항상 같은 도리이다. “하나의 긍정할 수 있는 것이 있고, 그것은 농민의 입장에서 혹은 농민을 위해 농민을 생각한다. 농민의 미덕과 농촌을 찬미하는 말은 그냥 도시의 노동자의 악습과 도시의 악죄를 비판하기 위한 에두름의 표현에 지나지 않는다. ”

이것은 모든 인생이 다른 곳에 있기 때문이다. 원래 인간은현실과 떨어진 다른 곳에서 만족감을 용이하게 얻을 수 있기에, 그 다른 곳이 유토피아가 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현실을 들추어내어 이 유토피아가 사실이 아닌, 건설성도 부족함을 지적하면, 문제점도 나타난다. 그러한 구축을 반대하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 비평가들은 그들이 사실을 정정하고 있다고는 생각치 않고, 반대로 그들이 현실을 바꾸려고도 하지 않고, 사람마음을 얻지 못하는 기존의 질서를 변명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비평가에게 있어서 원래의 의도는, 어떤 현실을 넘어서 있는 질서의 힘을 빌려 현실을 반성, 비판하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 안에서 조류에 휩쓸리지 않고, 세상의 큰 힘에 죄지우지되지 않고 독립성을 가진 생각을 하는 것은 아주 고마운 일이다.

미국에 가본 적도 없는 사람은 고정된 이미지를 통해 미국을 상상 할 수 밖에 없다. 미국사람이 일하는 모습에 대해, 우리들은 이미 선입관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에, 미국을 생각할 때(미국사람이나 그 과거), 실제로는 이러한 이미지로‘미국사정’구성한다.
마찬가지로, 우리들은 이러한 심리로 자신의 인식 안에 생각 할 수 있는‘세계의 모양’을 만들어 낸다.이것은 이성의 한계이지만, 고대와 전통에 대해 분명한 자기인식에 따른 것이다.

고대의 것을 돌이켜 생각해보면, 마치 별이 총총한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듯 하다. 수 많은 별은 전혀 다른 거리와 크기이지만. 우리들의 눈에는 마치 같은 빛이다. 또한, 그 ‘넓은 곡면’은 ‘하늘이 둥글고, 땅이 네모’와 같은 당연한 것으로, 인류의 본능에서 온 반응 같은 것이다. 이런 배경아래, 별하늘의 무한한 거리감이나 층별감을 느끼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현대 중국인의 고대에 대한 상상은 명조중기의 이미지를 기본으로 형성된 보편적인 인식이며, 그 중에 새로운 일들이 생성되었다. 다시말해, 이 단계의 발전은 중국사람의 고대인식이 만들어 낸것으로, 전통문화에까지 영향을 끼치고 있다. 그리고, 현시대에 가까운 이미지를 도구로서 옛날의 상상을 만든다. 특히, 전통분열의 시대에는 우리들에게 필요한 “심볼”을 발견하지 못해, 고대를 “재편성” 하거나 만들었다. “문화공작”이라는 것은 실제로 여기에 포함된다. 대체로 현대인은“전통문화”로의 이해는, 그 시기의 역사인식에 따른다. 그 이전의 시대였다면, 인조적인“신문화”라고도 했을 것이다. “고대”라는 말과 같이, 보편적인 전통도 어떻게 보면 변화나 깊이가 덜 한 단일한 것이지만. 실제로는 복수이다.

더욱이, “고대”와“전통”의 내부에서도 상호모순과 경쟁이 있다. 이 가려진 관점은“전통”이 전체적으로 부정되고, 또한“고대”의 보편적인 낭만인식에 원인이 있다. 그러나, 주의해야 할 것이 있다. 우리들이 상상한 그 “고대”는 옛날부터 쭉 변화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특히 현재의 이“조각시대”안에서.

지도의 은유

우리들은 긴 시간, 지도라는 존재에는 익숙해져, 지도는 단지 세계를 추상적으로 재현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잊어버리기 쉽다. 우리들은 주위의 세계에 대해 숙지하고 있을 수 도 있다. 하지만 그 숙지라는 것은 단지 추상과 이미지만을 잘 알고 있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인식이라는 것은 사전에 가상(仮想)한 표상도 포함한다고 생각한다. 전자(前者)는 표면적이지만 살아있다. 한편, 후자는 심각하지만 개념적이다.

단, 리얼한 경치를 감지하고 있는 사람과 비교해, 지도를 볼 수 있는 사람은 보다 높은 레벨의 사고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사람은 추상적인 점 혹은 선, 면으로 전자라는 사람이 상상 할 수 없는 공간의 결구(結構)관계를 감지할 수 있다. 지도라는 것은 일련의 기호의 응축이기 때문이다. 하나의 점으로 하나의 마을 혹은 동네를 표시하고, 하나의 선으로 하나의 도(道) 혹은 강을 표시하고, 하나의 파란색의 면은 바다를 표시한다. 지도를 만드는 지속적인 노력자체는 일종의 충동이라고 생각한다. 이 세계를 그대로 표시하고, 추상적인 기호를 통해서 세계를 인지・파악・콘트롤 한다. 그렇지만, 아티스트에 대해 이러한 준비를 겸하기를 요구한다. 이것은 다빈치의 훌륭한 점이기도 하다.

하지만 “세계”라는 것은 변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다른 시대, 다른 사람에게 있어, 그 범위와 의미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많은 사람이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사람들은 자신이 알고 있는 혹은 보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는 세계를 지도로 표현하고, 이것은 인지능력의 제약이며, 추상과 이해의 제약이기도 하다. 중세기의 사람은 미국대륙을 그릴 수 없었고, 예루살렘이라는 성역을 세계의 중심에 두고 있다. 그것은 그들이 그렇게 세계를 구상하고 이해하고 있기때문이다. 그 시대에 있어서, 지도는 신이 모이는 곳이다. 고대 지도를 돌이켜보면, 비례와 척도가 조금 비뚤어져 있고, 어딘가 부족하게 느껴지지만, 그것이 그 시대의 사람이 보고 있는 공간일 수 있다. 지도의 지리에 관한 상상은 언제나 있는 관념과 사상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실은 이 미묘한 심리는 현대에 있어서도 같다고 생각한다. 중국이 출판하고 있는 세계지도에 있어서도, 중국은 세계의 중앙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또한 유럽을 중심으로 하고 있는 지도를 보면, 중국대륙・대만・조선반도・일본열도는 우측의 구석자리에 위치하고 있고, 그리고 형태가 비뚤어져있으며, 세계의 끝에 부들부들 떨면서 서로가 의지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고대에 있어서 지도를 보는 것은 아직 소수의 사람만이 가지고 있는 권리이었을 수 있다. 그러나, 인쇄술이 보급되면서 그것은 모든 사람의 경험이 되었다. 이 새로운 시대에서, 세계는 세로로 세워져 있어 위로 늘어나거나 아래로 추락하거나 하는 다층적인 공간이 아니라는 것이 알려진다. 천국도 지옥도, 평평한, 눈 앞에 전개해 가는 넓은 면(面)이다. 지도를 만드는 기술의 발전에는 두 가지의 흐름이 있다. 한 가지는, 지도의 측량을“최대한 커다란 다양성으로부터 어떤 종류의 이성적이며 조작가능한 구조”로 하고, 측량하는 측과 측량되는 측의 사이에 주관적인, 혹은 객관적인 양극화된 개념을 형성한다. 그래서, 세계는 “고향”이 아니고, “거처”가 된다. 세계도 국가도 독립된 실태화한 이미지가 된다.
한편, 또 다른 흐름은 더욱 알기 어렵게 된다. 측량기술의 발달에 따라, 지도가 표현하고 있는 세계는 진짜 세계라고 사람들에게 인식시켜주기 위해 만들어진다.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유명한 꿈이 있다.

그것은 지도를 진짜 세계와 같은 크기의 비례로 만드는 꿈이다. 지도는 리얼한 것이 아니고, 가상의 것이다. 그러나, 이 꿈이 실현되기 전에 세계에 대한 과학적・정확적・완전적・진실적・보편적인 표현이 되었기에, 세계자체가 어떤 거대한 지도로 상상되어 왔다. 그리고 지금, 세계는 지도가 표현하고 있는 것처럼 존재하고 있다고 사람들은 깊이 믿고 있다.

이러한 것은 우리들의 수단, 예를들어 가위나 쇠망치에 대한 인식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주 적절한 인식은 사용하는 것을 통해서 얻은 경험에서 생성되는 것으로, 수단 그것이 형태와는 관계가 없는 것이다. 그렇기에, 카프카는 “자신의 무지와, 영원히 손에 넣을 수 없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것을 인식시켜주는 것은 여행 밖에 없다”고 말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것으로 리얼과 가상과의 경계선이 애매하게 되어버려, 이 둘의 관계는 반대로 되고 말았다. 지도는 진짜의 세계처럼 만들어야 하는것이 아니라, 진짜의 세계는 지도가 나타내고 있는 것처럼 존재해야 한다는 것으로 되고 말았다. “종이에 적혀져 있는 힌트에 많이 의지하여 물건을 찾는”것처럼, 모든 리얼과 재현의 사이에는 틈과 차이가 있을 수 밖에 없다. 리얼한 사람이나 경치가 사진처럼 아름답지 않으면, 우리들은 이렇게 현실 세계에 대해 실망하거나 한다. 그렇기에, 지도에 의지하며 세계를 알려고 하는 사람도 물론 그렇게 생각 할 것이다. 지도는 기호가 농축되어 생긴 추상적인 평면도로, 틀린 거리감과 공간의식을 만들어내는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정학(地政学)”이라는 것은 “지도학”으로 부르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거기에 모든 “애국주의”라는 것은 “나라”를 사랑하고 있는 것 보다는, “형태”를 사랑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이탈리아 사람이 사랑하는 것은 한 켤레의 부츠이고, 중국사람이 사랑하는 것은 한 마리의 닭이다. 그렇지만, 이렇게 확실한 형태에 비해, 진짜 현실은 반대로 추상적인 것이 되고 만다.

지도가 나타내고 있는 것은 현실이라기 보다 사람들의 생각이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현실이라고 인식되어 사람들을 틀린 방향으로 인도하는 경향이 있다. 예를들어 지도에서 둥그런 기호로 표시하고 있는 마을은, 현실에서도 같은 상황에 있을 거라고 착각을 하게 한다. 이것은 정치지도를 만들 때, 제일 알기 쉽다. 현대인이 그린 역사 지도 위에, 언제나 확실한 경계선이 있다. 마치, 그것은 역사상에 정말 존재하는 것처럼 보인다. 현대에 있어서 국경선과 정치구역의 표시방법에 관해, 우리들은 이러한 착각을 잘한다. 국경선의 양측에는 눈과 먹과 같은 차이가 있거나, 각기 내부는 균질한 실체가 존재하고 있어, 이것들의 실체는“국가”라는 것이 형성 된, 아주 오래 전에 존재하고 있던 것이 아닌가 라고. 실은, 예를들어 소말리아와 같은 국가는 어느 시점에서 보더라도 국가로서는 이미 존재하고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아프리카대륙의 정치 지도위에는 등장하고 있다. 마치, 그 토지에는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한편, 네덜란드는 현대인이 복원한 고대로마의 지도에서 로마의 경계가 두개로 갈라져 있다. 하지만, 지금의 지도에서 보자면, 로마라는 나라 자체가 지도에 존재하고 있지 않고, 거기에 있는 것은 네덜란드 뿐 이다.

사람이 경험한 세계와 세계의 실체 사이에는 본질의 차이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짜의 세계는 우리들이 체험하고 있는 세계와 같은 것일 거라고 생각되어진다. 아무리 좌절을 겪더라도 그 생각을 단념하려고 하지 않는다. 사람은 세계에 대해서도 이렇게 취급하고 있기에, 서로가 만날때는 더욱이 같은 취급을한다. 이것은 선천적인 “문명의 오만”이라고 생각한다. 가끔씩은 운이 좋아, 지리의 거리를 틀리게 계산하여, 콜롬버스는 생각지도 못한 신대륙을 발견했다. 가끔씩은, 웃으면서 가볍게 이야기 하기도 한다. 19세기 초기, 누군가가 북아메리카대륙의 지도 서남부에 “미국대사막”을 그린 이유로, 당시의 개척자는 자신이 지금부터 비옥한 대평원을 넘으려고 하는 사실을 모르고, 사막을 건너기 위한 준비로 낙타까지 미리 준비한 일이 있다.

근대가 되면, 지도는 단지 재현의 수단 만이 아니라, 개조하기 위한 수단도 된다. 프랑스는 1789년 후에, 역사 지리에 대해 하나도 생각치 않고, 나라를 하나의 블록으로 분리하여 관리한 것처럼, 열강한 아프리카대륙, 아메리카대륙을 제패 할 때, 지도 위에 그대로 선을 끗고 경계선을 만드는 경향이 있다. 더욱이, 계획설계도를 만들 때도, 현지의 사정을 참고하지 않고 도지(図地)로 선을 끗는 경우가 있다. 이것은 실은 권력의 요구이기도 하다. 현실은 지도처럼 존재하고 있고, 우리들은 지도 위에서 그 토지를 변화시키거나, 완전하게 할 수 있다. 그 때문에, L.A는 도시계획에 실패한 전형적인 예가 된다. 루이스 마운트배튼의 방침은 인도・파키스탄 분리독립과 그 후의 전쟁에 직접 연결되어, 간접적으로 방글라데시라는 새로운 국가도 만들어내었다.

그 때문에, “동아시아”라는 개념이 생겨났다. 이것은 지도 뿐 만이 아니라, 모른 사이에 사람들의 “소원”으로서 받아들여졌다. 그리고, “권력”을 가지고 있는자에 있어서는 더욱이. 마지막으로 보충하고 싶은 것은 “동아시아”라는 곳은 또 하나의 이름이 있다. 그것은“극동”이라는…
2014년 3월 10일 동경

동아시아는 비어있다.

지금의 「동아시아」는 미국의 시점에서의 동아시아인가, 아베씨와 시진핑씨와의 사이에 있어서의 동아시아인가, 보편적가치로부터의 동아시아인가, 아니면 중국인 일본인 혹은 한국인에게 있어서의 동아시아인가.
어떠한 입장에서 생각하는 경우라도, 이른바「동아시아」에 포함되는 지역과 문화를, 자신이 걸어본 적도 경험해본 적도 없는 사람은, 진실과는 거리가 먼 무지와 편견으로 스스로도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 모르는 논점을, 사람에게 피로(披露)하려고 한다. 그리고 그 논점을 위해 논거를 찾고, 때로는 스스로가 논거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그렇게되면 사람은 사물의 표면 밖에 보이지 않게 되어, 자신의 머리로 생각하는 힘이나 지혜를 잃어버리게 된다. 진짜의 세계를 보아도 보이지 않고,서커스의 개(犬)와 같이, 어떠한 훈련도 받아들인다.
지금의 세계는 글로벌화되어 있다는 것을 잊지 말기 바란다! 글로벌화가 문화에 가져다 준 큰 리스크 중의 하나는 우리들이 「노예」와 같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아직 인식하지 못한 채, 그 위에 독선적이 되어 있다는 것이다. 「정확성」의 가치는 조금씩 작아지고 있는데, 대다수의 사람은 그것에 대해 의문을 가지지 않는다. 그것은 자각도 하지 않는, 나른해져 있는 개구리와 같다.
동아시아와 관계없는 것을 기술(記述)하고 있을수도있다. 하지만, 먼저 이것에 대해 논의하지 않으면 진실의 문제에 도달할 수 없다. 다시말해, 혹시 우리들의 논의가 앞서 말한 것과 같은 상황이라면, 그 논의는 「학술」이라는 것으로 그럴싸하게 꾸민 가짜의 논의가 된다.
나는 한 사람의 「진심」을 가진 아티스트로서, 이러한 「학술논의」는 술안주 밖에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혹시 우리들의 논의를 형태만이 아닌 것으로 만들고 싶다면, 처음부터 계산 된 틀에 모든 문제를 집어넣어서는 안된다. 이것은 대다수의 사람에게 있어서는 어려운 것 일 수 도 있다. 왜냐하면 많은 사람이 요구하고 있는 것은 「안심감」으로, 진리를 추구하는 것은 결국 위험한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들이 정말 논의를 통해서 해야만 하는 것은 「동물원에서의 사냥」 이나 「공원에서의 탐험」이 아니다.

그럼 이제, 「동아시아」에 대해 이야기 해보자. 먼저, 고전주의와 정치는 시대에 뒤떨어진다. 지금의 세계는 아주 오랫 옛날에 그 게임을 끝냈다. 옛날에는 영토를 개척하고, 제국을 만들었지만, 지금은 전혀 룰이 다르다. 그렇기때문에, 좁은 도량의 민족주의와 애국주의는 시시하게 여겨지고 있고, 자신을 마취시키는 이외엔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 물론, 정치가들에게 있어서는 아직 사용되고 있지만, 그것은 「바보」같은 국민의 투표, 혹은 지지를 받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동아시아는 미국과 같이 자연스럽게 민족주의를 배척하고 있는 것이 아니며, 유럽과 같이 아픈 경험을 통한 교훈을 가지고도 있지 않다. 때문에, 민족주의는 아직 받아들이고 있다. 우리들이 「사랑스러운 동아시아」에 대해 논의한다면, 지금의 민족주의를 정리해 명확하게 하지 않으면 안된다. 지금의 민족주의는 내 입장에서 본다면, 어리석은 생각의 산물이며, 어제까지의 역사가 아니고 내일도 반드시 틀린다.
이 「민족주의」는 일/중/한을 죄다 없애버리고, 더욱이 대만까지 영향을 미쳐, 근대의 역사발전과 정치변국(変局)에 깊게 관계하고 있다. 그것을 위해, 사람들은 모르는 사이에 역사와 정치의 꼭두각시가 되어 있다. 하지만 그들은 아무도 자각하지 않고, 자신이 깊은 견식과 사상을 가지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다.
실은 우리들은 어떤 강대한, 그것에 대항하는 사람이 없을 것 같은 체계에 맹목적으로 종속되어 있다. 이 체계가 서양적인 것인가, 동양적인 것인가 혹은 고대 그리스 문명적인 것인가, 미국 문명적인 것인가 라는 판단은 할 수 없지만, 그것은 점점 흡수되어, 변화하고 있다. 단, 우리들이 지금 보고 있는 것은 서양의(명확하게 말하자면, 미국의) 문화를 중심으로 하고 있는 문명체계이다. 한가지 예로 들 수 있는 것은, 1달러 지폐의 뒷면에 있는 「new order」는 이제 아득한 옛날 이야기다. 미국사람이 세계에 대해 구상하기 시작한 것은「얄타협정」 보다 훨씬 빨랐다. 「얄타협정」의 정치흥정을 위해, 동아시아에서 「혼란」이 일어나도록 예전부터 절차를 밟고 있었다. 그리고 새로운 「나라」 마저 만들었다. 그 덕분에 동아시아의 몇 나라는 서로 얕보거나 증오하거나 한다. (정말이지 서커스단의 사육된 원숭이와 같지 않은가! 때문에 「민족주의」와 「애국주의」는 더없이 어리석은 것이다.) 동아시아의 「혼란」은 때마침 「세계의 질서」의 둘도 없는 부분이 된다. 중국의 공산주의와 혁명수출, 그 후의 냉전질서와 문명분단은 그칠 줄 모르는 폐해를 가져 왔다. 중국은 동아시아 문명의 근원, 동아시아 문명의 중심이었다. 일본은 청나라 시대때 부터 중국을 앞질러, 동아시아의 리더가 되었다. 이것은 실제로 서양문명이 동양문명을 이겨낸 것이다. 그리고 그때 우리들은 어쩔 수 없이 서양문명이 세계의 중심에 있다고 인정했다.
중국과 일본은 기본적으로 서로 배우고 있다. 옛날에는 일본은 중국으로부터 배운게 많았지만, 근대에 들어서는 중국이 일본으로부터 배우는 것이 많아졌다. 이 두 나라는 보통은 사이가 좋고, 때로는 의리가 굳다. 하지만, 일정의 균형이 잡히면 반드시 싸우게 된다. 당나라때 한번, 원나라때 두번(두번의 간격이 짧았기에 한번으로 계산해도 좋다. 물론 이것은 몽골인에 의해 세워진 당시의 원나라가 중국으로 계산되어지는 경우의 이야기이긴하지만), 명나라때 한번, 청나라때 한번 (제2차세계대전은 어떤 의미로는 이 싸움의 연장이라고 생각된다). 이렇게 정기적으로 일어나는 싸움은, 부부싸움과도 같다.(덩샤오핑시대의 일본과 중국은 아직 사랑스러운 연애기간으로, 일본은 당시 거의 전 재산을 다 써버렸다고 말해도 좋을 만큼, 힘을 다하여 중국을 원조했다. 중국도 일본에 대해 놀라울 정도로 시장개방을 했지만,) 지금은 이별이야기로 시끄럽다. 고집을 부리고 있지만, 실은 마음 속으로 아직 서로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 이것에 대해서는 매일 신문을 읽는다면 알 수 있다. 실제로 일/중의 수뇌(首脳)는 바보가 아니고, 불쌍할 뿐 이다. 「민주」가 화를 초래한다. 민주에 의해 모든 것을 정하면 안된다. 다수의 사람에 의해, 어떤 하나의 사건에 대한 판단은 간단하게 개념화 된다. 그것은 윌 스트릿의 금융에 관한 이야기를 아티스트와 논의하는 것을 상상할 수 없는 것과 같은 것이다.
한국은 쓰라린 기억을 가지고 있다. 일본과 중국이 전쟁을 시작할 때 마다, 항상 먼저 피해를 입고 마는 것이 조선반도이다. 냉전시대때도, 조선반도를 분리하여 전쟁의 최전선으로 이용했다. 지금도 이 상황은 아직 변하지 않았다. 때문에, 한국의 민족주의는 굉장히 강하고, 이해하기가 어렵다. 그리고 많은 고난을 가졌던 국가가 지금과 같이 성숙되어 있는 것에 경복(敬服)할 만하다고 생각한다. 한국사람에게 있어서 중국과 일본은, 두 사람의 「이 빌어먹을 자식」이라고 생각되고 있는 지도 모른다. 그 위에, 세계의 몇몇 큰 세력을 가지고 있는 나라도 모두「이 빌어먹을 자식」이라고 생각되고 있는 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언제나 한국사람 집에서 싸움을 하고, 조선반도는 거기에 대해 참혹한 대가를 취뤄야만 했다. 실은 나도 그것에 대해 분노를 느끼고 있다. 그 때문에 한국은 문자도 바꿔, 독자의 세계를 만들었다. 단, 객관적으로 보자면 이 부분은 한국 문화 안에서도 애매한 부분이 있다. 정치와 문화는 관계가 없기 때문이다. 짧은 역사관으로 보자면 분명히 관계가 있는 것 같지만, 길게 보면 실은 관계가 없다. 이것은 어느쪽이냐면, 역사에 대한 정서적인 반응으로, 백년 후의 것은 아무도 알지 못하지 않는가.

대만사람은 중국사람이지만, 일본사람에게 감사하고 있다. 청정부가 대만에서 건전한 통화시스템을 세우지 못하고 있을 동안, 일본사람이 대만사람에게 근대문명의 발전을 가져다 주었다. 청정부가 대만을 일본에게 넘겨준 것 (당시 「바칸조약(馬関条約)(시모노세키조약(下関条約))」에서, 일본
의 산동반도의 일부 점령을 인정하고 대만을 할여하였다)과, 대만민주공화국 성립 후에 국민당이 대만에 들어온 것은, 대만의 민중에게 「중국문화가 최고다라는 생각을 잊자」라는 감정을 심어주었다. 그들의 반응을 보아도 이것은 확실하다.
이들 문제는, 모두 역사와 정치 분야에 속해, 역사와 정치는 쌍둥이 형제와 같이 분리하여 취급할 수 없다. 정치는 눈 앞의 역사와 같은 것이다. 하지만, 역사는 이전의 정치에 속해 있다. 그것들은 두개의 거대한 좌표축과 같은 것으로, 모든 것을 정의 한다. 세계의 모든 것이 그 좌표축에 종속되어 있다. 예를들어 부모형제, 국가성립기념일, 사전(辞書)등 한개만이 아니다. 이 좌표계통 안에서 우리들은 「내가 누구인가?」라는 것을 확실히 이해할 수 있다. 이것도 이번 프로젝트의 궁극적 목적이라고 생각되어진다.
어떠한 전쟁변혁이나 역사변천이 있던지, 우리들은 역사의 긴 흐름 속에 있는, 이상한 일관성을 본다. 예를들어 유럽의 히틀러와 나폴레옹 두사람은 유럽의 대륙을 주도한 후에 두가지의 같은 것을 했다. 한가지는 영국에 진격한 것, 다른 한가지는 러시아에 패한 것. 이것이 근대의 구주(欧州)문명의 구성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고 누가 말할 수 있었는가. (영국은 유로권에 참가하지 않는다.) 그들은 기독교의 문명체계에 속한다.
서로 닮은 데가 있는 역사적 관계를 확대해 보면, 우리들의 과거는 전부 기독교 문명, 이슬람 문명, (실은 기독교 문명에서 갈라져 만들어진)그리스 문명 및 동아시아의 유학 문명, 유대 문명의 사이를 둘러싸고 있다. 이들 문명의 발전은 「문명」과 「전국(戦国)」의 관계와 같다. 때로는 연합하며, 때로는 저항하며, 비틀거리면서 오늘날에 이른다. 그것은 지금도 변하지 않고 세계 문제의 열쇠가 되고 있다. 어떤 사정(事情)의 발생과 발전은, 다시말해 문명의 충돌이다. 가장 핵심에 있는 원인을 구명하는 것은 어렵다.
그렇기에 문명은 역사와 정치에 버금가는 세번째의 죄표축이 된다. 각각의 문명 배경은 세계에 대해 다른 인식과 판단을 가져다 준다. 이 세번째의 좌표축은 서로 주요한 것과 부차적인 것을 담당한다. 대부분의 경우, 정치와 역사는 실용적이다. 예를들어, 일/중의 댜오위 다오(釣魚島) (센카쿠쇼토우(尖閣諸島)),일/한의 타케시마(독도)의 분쟁, 그리고 일본의 북방사도(北方四島)의 분쟁, 모든게 이 두 좌표축의 중간에 속한다. 하지만 문명은 현실의 실용성을 준비하고 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 길게 보면 그것은 제일 중요한 것임에 틀림없다. 때문에 정치, 역사와 문명, 세개의 척도로, 세계의 「존재」라는 좌표계통을 정의하고, 동시에 서로 견제하며 만난다. 그러니만큼 우리들의 세계는 붕괴하지 않는다. 이것은 우리들이 예술과 예술가를 필요로 하는 요인일 수 도 있다. 물론 음악이나 철학, 시도 마찬가지다.
이상의 것에 입각하여, 우리들은 「동아시아라는 것은 도대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가까워 질 수 있다. 문명에는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힘과, 무지를 줄이는 힘이 있다. 우리들의 문명은 후자의 경향이 강하다. 혁신적인 창조는 여러가지 문제를 해결하지만, 동시에 많은 새로운 문제를 초래한다. 한개의 체계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혁신을 가속화시키는 것만으로, 일정 정도까지 가속하면 새로이 본질적인 문제가 발생한다. 그리고 거기에서 새로운 가능성이 태어나는 것은 무지가 없어질 때이다. 이것은 바로 우리들 동방 문명의 특별한 매력 중 하나이다.
컵의 가치는 재질이나 모양이 아니라, 비어 있는 것에 있다. 물 혹은 와인이 가득 부어지고 나면 컵은 가치를 잃는다. 단, 컵의 내용이 끊기지 않고 갱신되는 것에, 컵은 영원의 가치를 가지게 된다. 하지만 「갱신」과 「혁신」은 다르다. 둘 다 성장과 발전이지만, 다른 부분이 있다.
「동아시아」의 문제에 대해, 우리들이 문명의 관점에서 검토한다면 적극적인 사건을 촉진하는 의의가 있다. 정치와 편협된 역사는 유한(有限)이며 불완전함에 틀림없다. 문명의 관점에서 중요한 것은 우리들의 철학문화관과 세계관이 「텅 빈」것과「가능성의 무한」에 놓여 있다는 것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