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에 의해 역사는 반복된다II – 역사를 리셋하기

나는 레지던시의 두번째 체재기간에도, ‘민주주의에 의해 역사는 반복된다’는 테마를 이어나갔다. 왜냐하면 r:ead의 최종 발표일이 2013년 3월11일이었기 때문이다. 2011년의 그날, 일본의 일부 역사가 리셋되고, 많은 것들이 3월12일부터 새롭게 계획되고 평가되었다. 그리고 2012년 선거에서 아베씨가 두번째로 일본의 총리가 되었다. 5년전에, 즉 그가 총리였던 2007년 3월11일은 평범한 날이었다.

그래서 나는 2007년 3월11일자의 아사히신문, 마이니치신문, 요미우리신문, 니혼경제신문을 찾아 보았다. 그리고 그 신문들을 전시하고, 발표를 들으러 온 사람들이 낭독하도록 하는 두 파트로 나누어 발표를 진행했다. 이를 통해 2007년 3월11일이 반복되어 강조되고, 시대에 따른 차이가 하나둘씩 드러나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당시의 국제정치에서는 미국이 아직 부시정권이었고, 휴대전화는 지금과 비교해서 구식이었으며, 건설회사의 광고에는 아직 희망이 넘치고 있었다. 그리고, 종군위안부 문제의 결의안이 어떻다든가, 중국의 태도가 어떻다든가…

낭독을 듣고 있으면 일종의 향수를 느끼게 될 뿐만 아니라, 자신이 얼마나 많은 것들을 잊어버리고 있는가에 대해서 놀라게 된다. 우리들은 현재의 상황들을 판단할 때 자신의 기억이 완벽하다고 느끼기 십상이지만, 그것은 전혀 얼토당토 않은 것이다. 누구도 5년전의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기억하지 못할테니까.

2011년 3월11일, 일본의 어느 부분의 역사는 리셋되었지만, 이러한 종류의 리셋은 바로 예술을 하는 창작자들이 작품 안에서 시도하는 것이기도 하다. 작품을 통해 관람자를 새로운 계획과 평가가 이루어지는 상태로 이끌어가고, 창작자 자신도 매번 리셋되어 새로운 자료를 수집하고 다음 작업에 임하게 되는 것이다. 이번 레지던시를 통해 아티스트와 큐레이터는 어느 정도 리셋 되었다. 따라서 나는 각자의 다음 작품을 통해 야기될 대화들을 기대하고 있다.

민주주의에 의해 역사는 반복된다.

도쿄에서의 단기 체제중에, 국회의사당과 야스쿠니 신사, 왕궁 등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타이밍 좋게도 일본의 선거를 볼 수 있었다. 이하의 내용은 각 정당의 당선인수와, 선거 당시에 사용한 캐치프레이즈이다. 각 정당의 공통점은, 자신들이야말로 일본의 각종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다고 소리치는 것이다.

294 자유민주당 – 일본을, 되찾는다!
57 민주당 – 움직이는 것은, 결단
54 일본유신회 – 지금이야말로, 유신을
31 공명당 – 일본재건
18 모두의 당 – 싸우는 개혁
9 일본미래의 당 – 누구든지 희망을 가질 수 있는 미래를
8 일본공산당 – 제안하고, 행동한다
2 사회민주당 – 생활재건
1 국민신당 – 일본재기동
1 신당 대지 – 신당대지의 맹세
0 신당 개혁 – 세계에 자랑할 수 있는 일본으로!
0 신당 일본 – 아마가사키(*도시 이름)를 위하여. 일본을 위하여

민주주의를 믿는 것과 민주주의 제도에 기대하는 것은, 가장 일반적인 가치관으로 간주되고 있다. 또한, 진보의 상징과도 같다. 즉, 어떤 나라가 민주주의 제도를 택하고 있지 않다면, 그 나라는 뒤쳐져 있다고 보여진다. 그러나, ‘민주’라는 것은, 정말로 그렇게 ‘전위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일까?

현대미술의 창작자들은 제국주의시대의 건축가들을 부러워하고 있을까? 예를 들면, 모리야마 마츠노스케(森山松之助 Moriyama Matsunosuke 1869-1949)와 조르주 외젠 오스만(Georges-Eugène Haussmann 1809-1891)이 있다. 모리야마는 타이완의 건축과 도시계획에 관여하였고, 오스만은 파리를 개조했다. 이 두 사람은 강력한 정치적 힘을 빌려, 자신들의 이상적인 창작을 실현시켰다. 그리고 그들은 당시 사회에 큰 변화를 불러 일으켰다. 이처럼 구체적인 성과를 내면 분명히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겠지만, 현대미술의 가치는 문제의 해결방법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다. 만약 해결방법을 제공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많은 정당들 처럼 캐치프레이즈를 공개적으로 발표하고, 국가의 문제를 간단히 해결가능한 것으로 생각해 버리게 될 것이다. 그러나 현대미술은 권력에 의존하지 않더라도 작용한다. 제국주의 시대의 건축은 결코 제국주의를 비판하고 있지 않으며, 국회의사당 꼭대기의 피라미드형태는 권력을 찬양하는 것이 모티브가 되어 있다.

현대미술의 가치는 비판성이 있어야 하며, 아트가 마주하고 있는 것은 제국주의가 아니라, 제국붕괴 이후의 민주적 개념이다. 제2차세계대전의 종결 후, ‘민주주의’는 아시아 제국에 침투했지만, 실제로는 ‘자유’의 이름을 빌린 자본주의가 구축되었다. 또한, ‘민주’가 제국을 붕괴시키고 개인의 가치관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집단의식을 중시하고 있다. 투표에 의해서만 실천되기 때문에, 다수에 의한 폭력이 발생하거나, 쌍방의 이익을 서로 쟁탈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이러한 시스템 안에서 현대미술의 ‘의외성’은 대단히 중요하다. 왜냐하면, 개인의 비판을 숫자로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를 돌아볼 수 있게 하는 증거를 남기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사를 돌아볼 수 있는 예가 많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선거결과가 우리들에게 말해주는 것은, 민주주의에 의해 역사가 반복되고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