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를 초월한 역사의 실천을 향하여

나는 당초, 이 프로젝트가 목적으로 하는 ‘동아시아에서의 예술과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의 공유’가, 참가자들이 모국의 구체적인 상황과 대치함에 있어 어떠한 새로운 시점을 만들어내는지에 대해 흥미를 갖고 있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상호간에 복잡한 관계성을 갖는 동아시아의 역사와 정치가, 대화의 플랫폼에 어떠한 영향을 줄지에 대해서 약간의 염려도 있었다. ‘국가’라는 틀이 이 프로젝트가 의도하는 플랫폼 구축의 동기와 관계되어 있는 이상, 참가자들은 자신의 국적과 국가와의 관계에 대해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한 상황에서 개인의 주관이 ‘국가’의 그것과 동일시되면, 개인과 개인의 대화는 곧 국가간의 이해관계와 맞물리게 되거나 답이 없는 정의끼리의 부딪힘이 되어버릴 것이다. 그러나 참가자들은 지금 바로 그러한 충돌이 이곳저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가운데, 정치적인 역학관계에 휘말리지 않고 한사람의 문화생산자로서 무엇이 가능할 것인가를 신중하게 모색했다고 생각한다.

두 번으로 나누어진 체재에서는, 우선 자신들의 활동에 있어서 축이 되는 관심사와 문제들을 이야기했고, 다음으로 각자가 도쿄에서 실시한 리서치 내용을 영상과 프리젠테이션, 또는 식사 와 이동중의 대화 등 여러 방법과 상황을 통해 공유했다. 이 과정에서 흥미로웠던 것은, 짦은 체재기간을 통해 각자가 얻은 경험을 공유함으로써스스로의 일본에 대한 해석과 내적 반응을 상대화하고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장이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물론 일본에 거주하는 고이즈미와 나도 마찬가지였다. 그것에는 마지막 날의 프리젠테이션에서 김진주가 이야기 한 것처럼,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상대를 ‘얼마나 모르고 있는지’ 에 대한 인식을, 서로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경험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부연하자면, 내면화되어 있는 일본에 대한 언설과 감정을 스스로의 주관성으로부터 일단 떨쳐내고, 그것들이 자신의 정체성과 깊이 결부되어 있는 국가의 언설-역사와 애국심, 민주주의, 그 모든 것이 겹쳐져 만들어지는 배타성-과 얼마나 연결되어 있는가를 인식하는 계기가 된 것이 아닐까.

고이즈미는 리서치 기간에 영상을 이용해 한 가지 실험을 했다. 그것은 도쿄의 다양한 장소에서 일본의 전쟁의 역사에 대해 사람들을 인터뷰하고, 그것을 말하는 사람들의 입만을 촬영해서 모으는 작업이었다. 익명성을 유지함으로써, 각각의 기억에 있는 ‘역사’의 형태-이야기, 정보, 신조, 감정, 혹은 무관심과 무지와 같은 부재-가 있는 그대로 구술되는 모습이 포착되었다. 랜덤하게 말하는 입을 줄곧 바라보고 있는 중에, 역사란 무엇일까 라는 물음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국가간에는 영토문제로부터 교과서 문제에 이르기까지 역사를 둘러싼 치열한 부딪힘이 있고, 그것은 분명히 역사가 이 글로벌 시대에 있어서 국가라는 상상의 공동체를 유지하는데 필요한 중요한 도구가 되어 왔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개인의 시장주의적인 생활에 있어서 역사라는 과거와 대치해야 할 필연성은 거의 없다고 말해도 이상하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미디어를 통해 역사에 관계된 여러 언설이 만들어지고, 그중 일부는 직접적인 경험 없이도 개인에게서 타자에 대한 강한 증오와 배타성을 이끌어 내는 힘을 발휘하고 있다는 것도 간과할 수 없다.

고이즈미의 실험은, 이 레지던시 프로젝트가 앞으로 생각해 나가야 할 중요한 문제 한가지를 제시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동아시아에서의 예술과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의 공유’가, 앞으로 이 지역에 있어서의 연결고리를 만들어나가기 위해서, 예를 들어 국가간의 정치라는 영역을 넘어선 새로운 지성의 실천으로서의 역사를 위해, 타자와 자신의 언설과 주관성을 함께 검증할 수 있는 공간을 구축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동아시아 뿐만 아니라 세계가 더 유동적으로 변해갈 미래를 생각할 때, 타자와 자신의 내적인 교섭을 가능하게 하는 공간의 창조는, 이 프로젝트 뿐만 아니라 문화생산에 관계하는 이들이 생각해야만 하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이후

어떤 것에 대해 명확히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위험할 수 있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렇다. 장 뤽 고다르 감독의 영화 ‘필름 소셜리즘’에는 be동사를 쓰는 사람과는 말하지 않겠다고 have 동사를 선호하는 아이들이 등장하는데, 나 또한 레지던시 프로그램 동안 여러 가지 키워드를 두고 그것들에 대해, 혹은 일본에 대해 be동사의 언어로 단정짓지 않고 새로운 조합의 가능성으로 남겨 두기 위해 노력했다.

단어들
가장 큰 공간을 차지하고 있던 생각은 민주주의, 가상성, 익명, 마음의 코스프레, 오타쿠와 잉여, 파국(破局) 등이었다. 그 이유는 전에도 언급했듯이 대통령 선거와 마야력 멸망 이벤트 같은 작년 말의 상황들을 거치며 시스템에 대한 심각한 불신과 재고, 묘한 상상력이 있었던 한편, 남아도는 에너지 등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연구
처음엔 키워드를 염두하며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리서치를 진행했는데 인터뷰이로는 마쓰모토 하지메(松本哉), 오자와 야수오(小沢康夫), 아즈마 히로키(東浩紀), 안천(安天)씨가 있었다. 그 밖에도 겐론카페 이벤트에 참가하거나 공연을 보고, 도쿄 여기 저기를 어슬렁거리며 리서치를 했는데 진행을 하면 할수록 원래 가지고 있던 키워드들이 모두 분해되어 큰 쓸모가 없게 되었다(고 당시엔 생각했다.).

발표
작업을 하는 초기단계에 있었고 나조차 정리가 안 된 것을 과정 중에 공개함에 있어 어떠한 형식으로 풀어나가야 할 지 고민이 많았다. 심지어 프로그램을 위해 사전조사 했던 것들도 현지에 와서 상당 부분 와해된 상태였다. 궁여지책으로 일전에 겐론카페에 갔을 때 흥미롭게 보았던 이벤트에 착안해 퀴즈쇼의 형식으로 나의 질문들을 콜라쥬같이 늘어놓긴 했는데 그것이 어떠한 의미가 있었는진 솔직히 모르겠다.

이후
각각 1주와 3주의 레지던시 기간 동안 했던 것들이 이후 무엇이 될 수 있을지 당시엔 조금 모호해 보였으나 한국에 돌아온 후 몇몇 계기로 말미암아 따로따로 섬처럼 존재하던 아이디어들이 이제야 말이 되는 무언가가 되었다. 이를 바탕으로 현재 움직이지 않고 유목하는 여행사의 사업과 더불어 새로운 프로젝트를 함께 진행 중에 있다. r:ead 프로그램을 통해 나온 새 프로젝트에 대해선 따로 설명하지 않겠다. 언어보단 이미지를 제시하고 싶다. 퀴즈………?

만남을 통한 이해와 생각

2013년 3월, 2주간에 걸쳐 r:ead에 참가할 수 있었던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 평소 전시준비로 바쁜 나로서는 이번 레지던시가 대단히 얻기 힘든 기회였다. 소규모이지만 치밀하고 계획성 있는 이 레지던시 프로그램은, 그동안의 레지던시보다 훨씬 더 인상적인 ‘만남’의 기회와 실질적인 교류를 만들어냈다. 분명히 나는 현대미술 큐레이터라는 내 일의 특성과 지난 10년간의 경력때문에 아티스트나 다른 큐레이터와 만날 기회는 많지만, 장기간에 걸쳐 양질의 교류가 가능한 장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특히 일이 한 가지 방식으로 정형화되면 되기 시작하면 더욱 그렇다.

일반적으로 말해서, 큐레이터와 아티스트의 만남은 주로 작품에서 시작된다. 그러나 이번 레지던시 프로그램은, 그러한 ‘큐레이터 – 예술가 – 예술생산과정’이라는 모델을 의도적이고 계획적으로 반전시켰다. 그것은 내 자신에게 특별한 의의가 있었을 뿐만 아니라, 내가 지금 운영하는 대안공간(더 큐브 프로젝트 스페이스)의 실험과 발전의 방향과도 분명히 일치했다. 그것은 다시 말하자면, ‘어떻게 아티스트와 장기적으로 협력관계를 발전시킬 수 있을까’라는 모색이라고도 할 수 있다.

나와 라오 치아엔은, 이러한 기회를 제공해준 r:ead에 참가했다. 한국, 일본, 중국, 그리고 대만이라는 아시아 4개 지역의 ‘대화’가 이루어졌고, 기존의 지리적인 이해 및 근린 지역의 역사와 문화에 관한 지식의 교류 이외에도, 유일무이한 사람과 사람 간의 교류가 이루어진다는 느낌을 실감했다. 첫 대면을 거쳐 서서히 이해해 가는 과정에서는 대화와 토론을 통해 문화적 관점을 발전시킬 수 있었다. 이러한 관점들은 평소에 당연하게 생각하던 인식과 행위들에 대한 사고를 ‘활성화’ 시켜 주었다.

이러한 ‘대화’는, 현재 우리들의 일과 창작과정에서 가장 결여되어 있는 ‘실제 체험’을 상당히 보충해 주는 것이었다. 우리들은 2주간에 걸쳐 제2차 세계대전과 아시아의 냉전의 역사, 그리고 지역경제가 글로벌화되는 작금의 현실에 대해 다양한 관점에서 생각했다. 그 안에는 무수한 역사적 기억들이 포함되어 있기에, 우리들은 한 사람의 현대인 또는 생존하는 하나의 개체로서 바라보는 다양한 각도에서, 각각의 경험을 공유했다. 또한 이 특별한 기회를 통해, 소위 글로벌화시대에 ‘지구는 정말 국경을 초월해 평탄해졌는가’를 생각함으로써, 또 다른 세계관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었다.

라오가 도쿄에서 한 작업은 앞에서 언급한 경험과 사고에 대한 구체적인 반응으로도 느껴졌다. 일본의 역사와 민주주의에 대한 고찰을 통해, 그는 일종의 비선형적이기도 한 상호간의 연결과 대화의 방식으로, 프로젝트의 참가자들이 던진 물음에 마주했다. (3월11일의 최종 프리젠테이션에서 그는 참가자들에게 5년전 3월11일의 신문기사 중 하나를 선택해서 낭독하도록 함으로써, 그들의 역사관과 체험을 드러냈다.) 또한 이 방법을 통해 일본국적이 아닌 다른 참가자들도, 자신들의 민주주의에 관한 체험, 혹은 아시아의 다른 지역과의 관계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장이 만들어졌다. 라오가 행한 프로젝트의 테마는, 2012년의 총선거결과 및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사고 이후에 변화된 일본사회의 내재적 인식을 고찰함으로써 ‘민주’와 ‘역사의 반복’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었는데, 그러나 실제로 그것은 일본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더 폭넓게 현대사회가 직면하는 공동의 문제와 위기를 반영하는 것이었다. 즉, 우리들의 관계 또한 끊임없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볼 수 있었고, 과거의 역사 뿐 아니라, 오늘날 자본경제에 의해 우리들이 얼마나 상호의존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었다.

라오는 이번 작업에서 시각화된 소재(과거의 신문기사)를 늘어놓고 확장성을 동반하는 시간들을 구성하여 질문들을 자세히 풀어놓는 방식을 택했다. ‘민주주의에 의해 역사는 반복된다’가 고찰에 대한 하나의 결론이 됨과 동시에, 라오가 우리들에게 던진 질문, 즉, 다시 생각하도록 만드는 테마에 의해 참가자 각각이 그와 함께 고민하게 함으로써, 더 깊이 있는 사고와 반응을 이끌어냈다. 이 프리젠테이션에서 참가자들은 처음에 왜 과거의 신문을 보게 하는지 몰랐을 것이다. 그러나 순서대로 이루어진 낭독과 사고의 교환을 통해, 라오가 의도했던 다시 생각하는 공간이 인식되고 느껴졌을 것이다.

라오의 프로젝트는 ‘프롤로그’같은 것이기도 하다. 나는2주간 도쿄에서 벌인 토론과 교류를 통해, 동일본 대지진 이후 사회가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가를 잠재적으로 의식하면서 사고하게 되었다. 체류 중에 오사카와 교토, 요코하마를 짧게 다녀오면서도, ‘사회에 대한 적극적인 사고’가 일본에서 큰 폭으로 늘어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예를 들면, 고이즈미 메이로의 작업 또한 그렇다. 그리고 더 많은 젊은이들이 문화예술의 창조와 관련된 많은 사회적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이번 참가와 고찰을 통한 최대의 수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리드라는 이 레지던시 프로그램은 새로운 예술생산의 모델이 가지는 의의와 그것이 실천될 가능성을 나에게 제시해 주었다.

리포트: 도쿄에서의 첫 번째 체재기간

일본에 머물던 12월 16일에 일본에서는 중의원 선거가 있었고 이는 ‘r-ead(Residency East Asia Dialogue)’에 모인 사람들에게도 연신 화제의 중심이 되었다. 결과는 전문가들의 예상대로 자민당이 의석 과반이 넘는 294석을 차지해 정권을 잡고 아베 신조가 일본의 총리가 되었다.
r-ead 프로그램을 끝나고 돌아온 바로 다음날, 한국에선 대통령 선거가 있었다. 결과는 75.8%라는 이전 대비 높은 투표율의 절반이 넘는 51.6%의 득표로 박근혜가 차기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그로부터 이틀 뒤, 진지하게 믿지는 않아도 전세계인들에게 실로 묘한 기대감을 안겨준 마야력의그 날도 별 일 없이 지나가고 내가 알고 있던 세계는 그대로 찝찝한 의문이 되었다.

일본의 사상가 아즈마 히로키는 2011년 저작 ‘일반의지 2.0’에서 루소의 말을 빌어 소통을 통해 다양성을 감소시킨 대의 민주주의가 아닌 다양성이 그대로 드러나는 직접민주주의로서 ‘소통 없는 민주주의’를 제안하며 민주주의 개념의 업데이트 가능성을 논한다. 루소의 일반의지와 웹 2.0이 합쳐진 일반의지 2.0은 시민 각 개인들이 인터넷에서 벌이는 검색 패턴이나 트윗 등의 생활이력들이 데이터베이스화 되면 집합적 무의식이 되고 이것이 일반의지로서 정치에 이용될 수 있다고 말한다.
“의사소통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다양한 의견을 몇 가지 대립축으로 환원해버리기 때문에 오히려 다양성을 억압하고 만다. 소통 없는 의견의 집약이 가능해지면 원래의 다양성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인민의 일반의지를 파악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이는 ‘집단지성’의 원리에 비추어 볼 때, 의사소통을 경유해서 단순화를 거친 판단에 비해 보다 정확한 판단을 이끌어낼 것이다”(일반의지 2.0)
하지만 한국 최대 포털사이트인 ‘네이버’의 경우만 보더라도 검색어 순위 조작이나 어뷰징 등의 개입을 통해 대중들의 미디어 소비와 여론에 큰 영향을 미치고 그 자체로서 막강한 권력체가 된 것처럼, 집합적 무의식이라는 통계치를 산출해내는 인터넷의 플랫폼이 시장 논리에 의해 구성된 것이고 이미 특정한 정치성향이 반영돼 있는 것이기 때문에 물론 이 통계치 자체는 간접 반영된다 하더라도 그 위험성이 존재하는 건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즈마 히로키가 주장한 합의를 향한 의사소통이 아닌 개인의 의사표현이 데이터베이스를 이루고 그 값이 정치에 반영되는 회로를 구성하는 것, 민주주의와 정치의 재구성은 여러모로 흥미로워 보인다.
r-ead의 두번째 기간 동안에는 동아시아의 문제와 관련해 아즈마 히로키의 방법론을 적극 활용해보고자 한다. 구상중인 내용의 골자는 접선의 방식, 의사표현의 방식과 도구의 재설정으로 인한 새로운 관계 설정을 토대로 아즈마 히로키가 말한 집단 무의식=일반의지의 발현과 그 새로운 플랫폼의 탐구이다.

덧붙여, 일주일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행해졌던 r-ead의 첫 만남에서 우리는 East Asia라는 지점의 사실관계로써만 문제를 다소 경직되게 다루지 않았나 싶다. 우리가 만약 Dialogue와 공유의 패러다임 자체를 전환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전쟁의 발소리가 들리는 “예술의 집”

4개국의 아티스트가 모여, 그 안에서 상호작용이 발생한다. r:ead프로젝트는 대단히 흥미롭고 기분을 들뜨게 한다. 예를 들어 타이완에서 참가한 라오 치아엔과 나는 같은 중국인이기 때문에, 선조, 문화, 과거의 국공내전, 현재 양쪽의 민주화 과정에 이르기까지 공통의 화제가 많다. 우리들은 서로의 환경, 그리고 개인과 사회에 의해 야기된 현재의 괴로운 상황들을 이해하려 하고 있다. 한국의 아티스트 김지선의 작품에는 굉장히 끌리는 부분이 있는데, 그녀의 진정한 동기가 무엇인지 알고 싶어졌다. 보다 좋은 사회를 위해서? 아니면, 국가라는 거대한 조직에 대해, 쥐가 코끼리를 쓰러뜨리는 것과 같은 힘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일본의 아티스트 고이즈미 메이로는, 공통의 인식과 곤혹스러움을 가지고 있는 것이 느껴져서 친근감을 느꼈다. 그의 작품으로부터는 자극과 영감을 얻을 수 있었다.

레지던시의 제2단계에서는, 한층 더 깊이있는 교류와 토론이 이루어졌으면 한다. 그리고 교류의 과정에서는 다양한 문제들이 제기될 필요가 있다. 중요한 시기와 눈앞에 닥친 환경앞에서 인간에게는 어떤 인격이 나타날 것인가. 나는 전쟁에서 사람을 죽일 수 있을 것인가, 지진이 발생해도 모두가 신사적인 태도를 취할 수 있을 것인가, 등등. 공허한 ‘정의’와 ‘인간성’ 보다는, 나는 ‘생생히 살아있는 존재’를 선택할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예술이란, 살아있는 생명체험과 같은 것이며, 타자와 나의 이성이 전쟁에 대하여 얼마나 나쁜 것이고 인간성을 말살하는 것이라고 나에게 말할지라도, 나는 참전할 것이다. 물론 나는, 자신들이 평화와 정의를 지키고 있다고 믿고 있는 듯한 미국인들처럼, 타국에 전쟁을 일으키는 짓은 하지 않을 것이다.

일본과 중국 양국 정부의 대립이 심화되고 있는 민감한 시기에, 우리들과 같은 순수한 아티스트들은, 마치 학생들처럼 예술이 전쟁을 저지할 수 있는가에 대해 진지하게 토론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우리들 자신이 모두 개인이며, 국가의 대표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우리들에게는 ‘예술’이라는 하나의 ‘국가’ 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이제 우리들은 예술의 법칙과 규율만을 의존하면서, 개인과 개인이 성의있게 교류하는 것이다.

12월의 귀국후, 내 자신이 느낀 것을 기록한 단편을 편집했다. 그리고, r:ead에 대한 다큐멘터리 필름을 제작하려고 생각중이다.

민주주의에 의해 역사는 반복된다.

도쿄에서의 단기 체제중에, 국회의사당과 야스쿠니 신사, 왕궁 등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타이밍 좋게도 일본의 선거를 볼 수 있었다. 이하의 내용은 각 정당의 당선인수와, 선거 당시에 사용한 캐치프레이즈이다. 각 정당의 공통점은, 자신들이야말로 일본의 각종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다고 소리치는 것이다.

294 자유민주당 – 일본을, 되찾는다!
57 민주당 – 움직이는 것은, 결단
54 일본유신회 – 지금이야말로, 유신을
31 공명당 – 일본재건
18 모두의 당 – 싸우는 개혁
9 일본미래의 당 – 누구든지 희망을 가질 수 있는 미래를
8 일본공산당 – 제안하고, 행동한다
2 사회민주당 – 생활재건
1 국민신당 – 일본재기동
1 신당 대지 – 신당대지의 맹세
0 신당 개혁 – 세계에 자랑할 수 있는 일본으로!
0 신당 일본 – 아마가사키(*도시 이름)를 위하여. 일본을 위하여

민주주의를 믿는 것과 민주주의 제도에 기대하는 것은, 가장 일반적인 가치관으로 간주되고 있다. 또한, 진보의 상징과도 같다. 즉, 어떤 나라가 민주주의 제도를 택하고 있지 않다면, 그 나라는 뒤쳐져 있다고 보여진다. 그러나, ‘민주’라는 것은, 정말로 그렇게 ‘전위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일까?

현대미술의 창작자들은 제국주의시대의 건축가들을 부러워하고 있을까? 예를 들면, 모리야마 마츠노스케(森山松之助 Moriyama Matsunosuke 1869-1949)와 조르주 외젠 오스만(Georges-Eugène Haussmann 1809-1891)이 있다. 모리야마는 타이완의 건축과 도시계획에 관여하였고, 오스만은 파리를 개조했다. 이 두 사람은 강력한 정치적 힘을 빌려, 자신들의 이상적인 창작을 실현시켰다. 그리고 그들은 당시 사회에 큰 변화를 불러 일으켰다. 이처럼 구체적인 성과를 내면 분명히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겠지만, 현대미술의 가치는 문제의 해결방법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다. 만약 해결방법을 제공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많은 정당들 처럼 캐치프레이즈를 공개적으로 발표하고, 국가의 문제를 간단히 해결가능한 것으로 생각해 버리게 될 것이다. 그러나 현대미술은 권력에 의존하지 않더라도 작용한다. 제국주의 시대의 건축은 결코 제국주의를 비판하고 있지 않으며, 국회의사당 꼭대기의 피라미드형태는 권력을 찬양하는 것이 모티브가 되어 있다.

현대미술의 가치는 비판성이 있어야 하며, 아트가 마주하고 있는 것은 제국주의가 아니라, 제국붕괴 이후의 민주적 개념이다. 제2차세계대전의 종결 후, ‘민주주의’는 아시아 제국에 침투했지만, 실제로는 ‘자유’의 이름을 빌린 자본주의가 구축되었다. 또한, ‘민주’가 제국을 붕괴시키고 개인의 가치관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집단의식을 중시하고 있다. 투표에 의해서만 실천되기 때문에, 다수에 의한 폭력이 발생하거나, 쌍방의 이익을 서로 쟁탈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이러한 시스템 안에서 현대미술의 ‘의외성’은 대단히 중요하다. 왜냐하면, 개인의 비판을 숫자로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를 돌아볼 수 있게 하는 증거를 남기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사를 돌아볼 수 있는 예가 많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선거결과가 우리들에게 말해주는 것은, 민주주의에 의해 역사가 반복되고 있다는 것이다.

Start of 2nd period of stay(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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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formation on the participating curators & artist’s reports updated!

One of r:ead’s special features is, that the participating artists come to Tokyo twice. After the so-called dialogue and research period of one week the artists return to their countries once and have time, to consider their objectives for the 2nd period of stay in Tokyo, the creation period. During the 2nd period of stay, they will be accompanied by curators/dramaturges of their own choice, who serve as the intellectual partners for research and involvement with the topics set by the artists.
On the occasion of the start of the 2nd period of stay on Feb 22, we have updated the reports, the artists have written after their first stay in Tokyo in December 2012. Please also check the profiles of the curators/dramaturges, who will gather in Tokyo together with the artists and share their ideas on East Asia’s past, present and future.

새로운 프레임을 향하여

12월에 있었던 r:ead의 1차 기간을 통해, 참가 아티스트 김지선, 라오 치아엔, 리 닝, 그리고 소마 치아키 디렉터를 포함한 스탭들의 여러 의견과 작품을 접하고, 예술과 정치의 관계에 대한 뜨거운 토론의 시간을 가졌다. 이 어려운 문제에 대해 다양한 각도에서 도전한 각각의 작품들을 보면서, 큰 자극과 용기를 얻음과 동시에, 그 다음 단계로 무엇이 가능할까 하는 과제도 내 안에서 세워졌다. 우리들이 갖고 있는 창조력을 통해, 정말로 무엇인가를 구체적으로 바꾸려고 할 때, 우리 앞에 있는 기존의 예술활동의 프레임이 불충분한 것은 분명하다. ‘돈과 권력이 움직이는’ 실전 정치 세계에 들어가지 않고서는 사회를 구체적이고 실질적으로 바꿀 수 없다, 라는 생각이 과격한 의견이라는 사실은 물론 이해하고 있다. 그러나 사회를 바꿔야 한다고 진지하게 생각한다면, 예술가로서는 가장 마음 편하게 할 수 있는 개인적인 미시정치 수준에서의 저항이 결국은 한계를 갖는다는 사실을 인식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사회를 정말 실질적으로 바꾸고 싶다는 의사가 있고, 이를 위해 필요한 창조력과 상상력을 발휘하고자 한다면, 새로운 프레임의 창조가 요구된다.

그 첫걸음으로, 미시마 유키오가 세운 ‘문학(예술)=무책임, 비윤리, 생(삶)’, ‘행동(정치)=책임, 도덕, 사(죽음)’이라는 명제를 재구성하여, 예술에 책임을 지도록 해 보는 것은 어떨까? ‘정치=책임’, ‘예술=무책임’이라는 명제를 버리고, ‘예술=책임’, ‘정치=무책임’이라는 가정을 세워 보는 것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은 가능할까? 예술의 정치성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정치의 예술성에 초점을 맞추어 보는, 그러한 프레임과 관점은 가능한 것일까?

하나의 출발점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예술을 표현으로 다루는 것이 아닌, 테크놀로지로서 취급하는 것일지 모른다. 과학적이고 기계공학적인 테크놀로지는 분명히 인간과 사회를 (또는 인간과 사회라는 개념 자체를) 바꾸는 힘이 있다. 그와 같이 예술을, 창조력을 통해 사회를 바꾸는 테크놀로지로서 취급하는 것은 가능할까? 그리고 그 연구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지식을 예술가의 표현을 통해 결과물을 만드는 대신에, 또한 기존의 프레임안에서 작품이라는 상징적인 형태로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실천적으로 일상에 침투하여 이용해 나가는 공간을 만드는 것은 불가능할까. 즉, 감상용/비평용 예술을 버리고, 도구주의를 철저하게 실천해 보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실천의 결과물이 ‘작품’으로서 평가되는 것이 아니라, 실제의 ‘사회적 변화’로서 평가되어야 한다는 점에 있다. ‘비평적이다’, ‘흥미롭다’라는 평가기준은 더이상 없으며, 보다 실질적으로 ‘효과가 있다/효과가 없다’라는 평가만이 존재할 뿐이다. 또한, ‘보다 효과적’이기 위해서는, 장르의 울타리는 처음부터 집어 치우지 않으면 안 된다. 오피니언을 움직이는 노하우를 이미 보유하고 연구하는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광고회사/ 정치가/ 사업가/ 방송제작자/ 이론가/ 건축가/ 디자이너/ 출판업자 등)과 함께, 고찰하고 실천하며 협동하는 공간을 구축해 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지금 가정한 새로운 프레임을 어떻게 확립하는 것이 가능할지, 그에 대한 고찰과 케이스 스터디를 2~3월의 레지던시 기간 동안 실행하려고 생각하고 있다.